과학연구

고대조선의 잔줄무늬거울

 2017.12.11.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력사유적유물들은 우리 선조들이 투쟁과 창조적활동을 통하여 이룩한 귀중한 유산이며 후세에 길이 전해갈 민족의 재부입니다.》

력사유적과 유물들은 우리 나라의 유구한 력사와 문화의 발전상을 실물로 보여주는 귀중한 증거물이며 여기에는 우리 민족의 창조적지혜와 고유한 생활풍습이 반영되여있다.

우리 민족의 창조적지혜와 재능, 슬기를 보여주는 유물들가운데는 고대조선의 잔줄무늬거울도 있다.

잔줄무늬거울은 뒤면에 가늘고 섬세한 무늬선들이 배좁게 배렬되여있는 우리 나라 고대시기의 독특한 청동거울로서 고조선인민들에 의하여 처음으로 창안되여 널리 보급되였다.

잔줄무늬거울은 형태가 둥근데 앞면이 반들반들하여 잘 비치고 뒤면은 독특한 무늬로 장식되였다. 거울 뒤면을 보면 변두리에 단면이 반원형인 테를 두르고 그안에 가는 선으로 된 정교한 잔줄무늬를 새겼다. 무늬는 삼각형, 원형 등 기하학적무늬인데 수많은 원둘레와 직선들이 하나도 찌그러지거나 맞붙은것이 없다. 잔줄무늬거울의 무늬는 청동제련기술의 발전과 함께 변천되고 완성되였다.


잔줄무늬거울(직경 13.8㎝)

잔줄무늬거울(직경 13.8㎝)

잔줄무늬거울 복원도

잔줄무늬거울 복원도

황해북도 봉산군 송산리 솔뫼골무덤


거울 뒤면의 중심에서 약간 벗어나 끈을 꿰는 고리가 2~3개 있는데 그 평면생김새는 장방형이다.

잔줄무늬거울은 평양부근과 황해북도 봉산군 송산리 솔뫼골무덤, 남포시 천리마구역 대보산리의 반천리무덤, 전라남도 화순시 대곡리무덤, 강원도(남) 원주유적과 강림리유적, 양양의 토성리유적, 전라남도 령암 1유적과 령암 2유적, 경주 입실리무덤 등 여러 유적들에서 알려졌다.


잔줄무늬거울(직경 10.6㎝)

잔줄무늬거울(직경 10.6㎝)

잔줄무늬거울 (직경 13.5㎝)

잔줄무늬거울 (직경 13.5㎝)

평안남도 대동군 반천리 움무덤


잔줄무늬거울들은 무늬결합에 따라 여러가지 형식으로 세분화할수 있는데 대체로 무늬선들사이에 다른 무늬를 새길수 없을 정도로 가늘고 섬세한 무늬들이 배좁게 장식되여있는데서 공통적이다.

잔줄무늬거울은 고조선전기문화에 속하는 비파형단검관계유적들에서 나온 청동거울들에 연원을 두고있다. 고조선전기(B.C. 30세기초~B.C. 2000년기 말엽)의 비파형단검관계유적들에서 알려지기 시작하는 청동거울들은 성근무늬거울들이며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거울뒤면의 무늬는 변화발전하였다.

성근무늬거울은 거울뒤면의 무늬선들이 상대적으로 굵고 선과 선사이가 성글게 배렬되여있는 거울로서 무늬도안의 특징에 따라 번개무늬거울, 삼각무늬거울, 그물무늬거울, 전나무잎무늬거울, 거미줄무늬거울 등으로 구분된다.

성근무늬거울의 무늬변천과정을 보면 번개무늬로부터 삼각무늬로 이행하였다. 그리고 삼각무늬는 한개 구획으로 된 삼각무늬로부터 두개 구획으로 된 삼각무늬로 이행하면서 삼각도형이 톱날무늬띠모양으로 변천되여갔다. 두개 구획으로 된 삼각무늬는 다시 세개 구획으로 된 삼각무늬로 이행하면서 삼각도형이톱날무늬띠로 바뀌고 톱날무늬띠의 삼각형수가 늘어나는것으로 변천되였다.

삼각무늬의 변천과정을 보여주는 성근무늬거울들에는 중화읍에서 나왔다고전하는 거울, 맹산군에서 나온 거울거푸집의 무늬면, 전라북도에서 나왔다고 전하는 거울, 고흥군 소록도유적의 거울, 부여군 련화리무덤의 거울, 완주군 여의리무덤의 거울, 대전시 괴정동무덤의 거울, 례산군 동서리무덤의 거울, 부여군 구봉리무덤의 거울, 아산군 남성리무덤의 거울, 길림시 화전현 횡도하자 서황산둔무덤의 거울 등이 속한다.


잔줄무늬거울(직경 8㎝)

잔줄무늬거울(직경 8㎝)

잔줄무늬거울(직경 11.3㎝)

잔줄무늬거울(직경 11.3㎝)

충청남도 대전시 괴정동 돌곽유적


잔줄무늬거울은 바로 성근무늬거울인 세개구획으로 된 삼각무늬거울의 변천과정에 생겨났다.

그것은 세개 구획으로 된 삼각무늬거울과 잔줄무늬거울의 무늬에서 공통성이 있기때문이다.

잔줄무늬거울들인 솔뫼골돌돌림무덤의 거울과 반천리무덤의 1호거울, 원주유적의 1호거울은 다 무늬면의 바깥구에 톱날무늬띠가, 중간구에 여러줄의 장식무늬띠가 돌려져있고 안쪽구에 장방형무늬가 채워져있는데 무늬면의 바깥구와 안쪽구의 무늬상태는 세개 구획으로 된 삼각무늬거울과 대체로 비슷하다. 그리고 중간구에 있는 장식무늬띠들가운데는 톱날무늬띠가 포함되여있다.

솔뫼골돌돌림무덤의 거울중간구에는 1줄의 톱날무늬띠가 1줄의 장식띠, 1줄의 그물무늬띠와 결합되여있고 반천리무덤의 1호거울에는 1줄의 톱날무늬띠가 6줄의 장방형무늬띠, 1줄의 그물무늬띠와 결합되여있으며 원주유적 1호거울에는 2줄의 톱날무늬띠가 1줄의 줄묶음띠와 결합되여있다.

이것은 잔줄무늬거울의 중간구무늬장식이 세개 구획으로 된 삼각무늬거울의 중간구무늬장식과 공통성을 가지며 동시에 세개 구획으로 된 삼각무늬거울로부터 잔줄무늬거울에로 변천되였고 이 과정에 무늬형식은 보다 세련되였다는것을 보여주는것이다.

좁은놋단검과 함께 후조선시기(B.C. 2000년기말~B.C. 108년)의 특징적인 유물의 하나인 잔줄무늬거울은 당시로서는 발전된 합금기술에 기초하여 훌륭하게 만들어졌다. 고조선인민들은 잔줄무늬거울을 만들 때 청동무기들과는 달리 주석의 비률을 26.7%로 높임으로써 거울면을 매끈하게 하여 잘 반사되게 하였다. 뿐만아니라 주석의 비률을 통하여 주조성을 높여 거울뒤면의 섬세한 무늬를 명확히 나타내였고 한점의 티도 없이 정교하게 주조하였다.

잔줄무늬거울은 당시 주변나라들에서 쓰인 청동거울들과 뚜렷이 구별된다.


잔줄무늬거울(직경 8㎝)

잔줄무늬거울(직경 8㎝)

함경남도 함흥시 회상구역 리화동움무덤

중국 전국시대 사냥무늬거울

중국 전국시대 사냥무늬거울

중국 전국시대 사냥무늬거울


거울이 만들어져 쓰인 시기와 거울뒤면에 새긴 무늬의 양상이 서로 다르며 거울의 고리도 잔줄무늬거울은 중심에서 얼마간 치우쳐 2~3개이거나 일부 그 이상 되지만 중국의 전국시대(B.C. 5세기초~B.C. 3세기말경)에 쓰인 거울이나 한나라(B.C. 206~A.D. 220년)시기의 거울은 중심에 한개뿐이다. 잔줄무늬거울의 고리들은 평면생김새가 장방형이지만 중국 전국시대와 한나라시기 거울들의 고리평면생김새는 원형이다. 그리고 거울의 테두리도 잔줄무늬거울은 대체로 반원형의 단면을 가진다면 중국 전국시대와 한나라시기의 거울들은 사다리형의 단면을 가진다.

우리 나라 고대국가들에서 만들어져 쓰인 독특한 유물인 잔줄무늬거울은 우리 선조들의 청동가공기술과 문화예술수준이 당시로서는 상당히 높은 수준에 이르고있었다는것을 뚜렷이 보여준다.

참으로 잔줄무늬거울은 그 형태와 무늬도안에서의 독특성, 무수한 잔줄의 세밀한 구성과 한점의 티도 없이 주조한 주조술의 정교성 등에서 우리 나라 고대청동공예술의 높은 발전수준을 보여주는 귀중한 민족문화유산의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