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연구

혁명의 혈통을 꿋꿋이 이어가시려는 대용단

 2015.10.7.

당의 혁명전통은 탁월한 수령의 령도밑에 혁명의 주체가 형성되고 강화발전되여나가는 력사적행정에서 마련되는 귀중한 혁명유산이다.

조선로동당의 력사에서 1950년대는 혁명의 원쑤들에게 무자비한 철추를 내린 준엄한 년대인 동시에 항일의 혁명전통을 견결히 옹호고수하고 빛나게 계승한 투쟁의 년대이기도 하였다.

3년간의 가렬한 조국해방전쟁을 겪고난 우리 당은 또다시 간고한 시련을 겪지 않으면 안되였다.

당안에 기여든 혁명의 원쑤들은 국제공산주의운동안에 나타난 수정주의, 대국주의자들의 추종밑에 우리 당의 로선과 정책을 정면에서 도전하여나섰다.

이자들은 위대한 수령님의 권위와 위신을 헐뜯고 당의 령도를 거부하며 수령님께서 이룩하신 우리 당의 영광스러운 혁명전통을 거세하고 말살하기 위하여 악랄하게 책동하였다. 당시 당중앙위원회의 책임적인 자리에 있던 한 불순분자는 직권을 악용하여 자기의 생가를 꾸리게 하고는 그것을 견학대상에 넣어 보여주는 놀음까지 하였다. 학생들속에서는 혁명전통교양이 소홀히 되여 보천보가 량강도의 어디에 위치하고있는지조차 알지 못하고있는 형편이였다.

결국 이것은 항일의 혁명전통을 전면적으로 거세하고 그 순결성을 흐리게 하려는 불순이색분자들의 음흉한 책동으로부터 초래된것이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이로부터 혁명의 후비대이며 계승자들인 학생소년들을 항일의 혁명전통으로 튼튼히 무장시키는 사업을 통하여 항일의 혁명전통을 거세하려는 원쑤들에게 준엄한 철추를 내리고 우리 혁명의 혈맥을 꿋꿋이 이어나가기 위한 전인미답의 길에 나서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학생들에게 보천보전투에 대한 태도와 인식을 옳게 심어주기 위하여 보천보전투승리기념일을 계기로 이미 주체43(1954)년 6월 몸소 연극 《보천보의 홰불》을 만들어 공연하시였고 그 다음해에는 모란봉에서 우등불모임을 진행하시였으며 주체45(1956)년 6월에는 백두산지구의 혁명전적지들에 대한 답사를 진행하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이런 때에 김정일동무가 평양제1중학교 학생들로 혁명전적지답사단을 뭇고 백두산지구에 대한 답사를 떠날 용단을 내린것은 참으로 의미심장한 일이였습니다.》라고 교시하시였다.

그때까지만 하여도 위대한 수령님께서 이룩하신 우리 당의 빛나는 혁명전통으로 당원들과 근로자들,청소년학생들을 무장시키기 위한 교양체계가 잘 서있지 못한데로부터 혁명전적지답사체계도 바로 서있지 못하다보니 일부 개별적으로 찾아오는 사람들은 있었지만 조직적으로 찾아오는 답사자들은 그리 많지 못하였다.

당사상사업에서 사대주의와 교조주의를 퇴치하고 주체를 세우기 위한 투쟁이 방금 시작된 때였으므로 이 시기까지만 하여도 모든 면에서 주체가 확고히 서있지 못하였으며 이러한 기회를 리용하여 불순이색분자들은 우리 당의 혁명전통을 어떻게 해서나 거세하여보려고 악랄하게 책동하고있었다.

이러한 때에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 백두산혁명전적지답사행군대를 무으시고 백두산지구혁명전적지들에 대한 답사를 진행하신것은 혁명전통을 거세말살하려는 반당반혁명분자들에게 심대한 타격을 주고 영광스러운 항일의 혁명전통의 순결성을 고수하시려는 확고한 결단이였다. 백두산혁명전적지에로의 답사행군은 아직까지 그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대담한 발기로서 위대한 장군님께서만이 내리실수 있는 대용단이 아닐수 없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주체45(1956)년 5월 여름방학을 계기로 묘향산이나 금강산을 비롯한 명승지들과 유적이 많은 개성일대에 대한 수학려행을 계획하고있는 학생들에게 조국을 알자면 우리 혁명의 뿌리를 잘 알아야 하며 우리 혁명의 뿌리를 알자면 우선 혁명전적지로 가야 한다고 하시면서 수학려행의 로정을 백두산지구혁명전적지로 정하도록 하시였다. 그러나 학교교장을 비롯한 종파추종분자들과 각성되지 못한 일부 교원들은 나어린 학생들에게는 혁명전적지를 답사하는것이 《어려운 려행길》이라느니 뭐니 하면서 방해해나섰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주체45(1956)년 5월말 위대한 수령님께 보천보전투승리기념일을 계기로 학생소년들로 답사단을 조직하여 량강도안의 혁명전적지들을 답사하려는 자신의 의향을 말씀드리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보천보전투가 있은지도 열아홉해가 되였다고 하시면서 어리신 위대한 장군님의 생각을 적극 지지해주시며 항일유격대원들은 그 간고한 시기에도 조국으로 진군하여 보천보를 쳤다고, 이번에 혁명전적지에 가면 항일유격대원들이 어떻게 필승의 신념을 안고 싸웠는가를 똑똑히 배워가지고 오라고 당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 나라 속담에 《첫 새벽문을 열면 오복이 들어온다》는 말이 있다, 물론 한 가정의 새벽문을 여는것은 그리 힘든것이 없다, 하지만 조국과 인민, 당과 혁명을 위하여 나라의 첫 새벽문을 열고 그 누구도 걸어보지 못한 초행길을 걷는다는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바로 그렇기때문에 그런 일은 가장 영광스럽고 보람찬 일로 되는것이다, 혁명전적지에 대한 첫 답사가 바로 그렇다고 생각한다, 초행길인것만큼 굳게 마음을 먹고 한번 걸어보라고 고무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혁명전적지답사와 관련하여 하신 간곡한 교시를 심장으로 깊이 새기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혁명전통의 기치를 높이 들고나아갈 드팀없는 신념을 지니시고 6월 2일 평양제1중학교 소년단위원회에서 백두산혁명전적지답사행군대를 조직하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학생들에게 보천보혁명전적지를 비롯한 백두산지구혁명전적지를 답사하면서 우리 당의 혁명전통에 대하여 깊이 체득하여야 한다고, 이번 혁명전적지답사를 통하여 항일혁명투쟁을 빛나는 승리에로 이끌어오신 위대한 수령님의 령도의 현명성과 수령님께서 조국과 인민앞에 쌓아올리신 불멸의 업적을 깊이 체득하여야 한다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그후 주체45(1956)년 6월 5일부터 14일까지의 기간에 10대의 나어린 학생들과 함께 백두산지구혁명전적지답사를 진행하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답사기간 학생들이 위대한 수령님을 충정으로 높이 우러러모시며 혁명선배들을 존대하는 순결한 마음을 깊이 간직하도록 하시였으며 항일혁명선렬들의 불굴의 혁명정신과 강한 조직성, 규률성을 따라배우고 답사로정을 백두산천지까지 이어놓으며 혁명전적지에 대한 발굴사업에서 량강도인민들과 학생들이 모범이 되도록 하는데 깊은 관심을 돌리시였다.

실로 위대한 장군님께서 걸으신 이 뜻깊은 행군길은 우리 당의 영광스러운 항일의 혁명전통을 만대에 길이 빛내이며 위대한 수령님께서 개척하신 주체의 혁명위업을 순결하게 받들어나가는 영광의 한길로 우리모두를 이끌어주시는 충정의 행군길, 력사의 행군길이였다.

위대한 장군님의 높으신 뜻을 받들어 오늘 혜산에서 보천보, 보천보에서 또다시 삼지연을 거쳐 백두산마루까지 험산준령을 넘어 연연히 뻗어간 보천보와 구시물동, 5호물동과 청봉, 건창과 베개봉, 무포의 혁명전적지들과 사적지들, 북으로는 《갑무경비도로》를 거쳐 무산지구방향의 대홍단과 신사동에 이르기까지, 남으로는 압록강기슭을 따라 포평과 신파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혁명전적지들이 건설되여 량강도는 말그대로 하나의 대로천혁명박물관으로 전변되였으며 우리 혁명의 혈통은 대를 이어 꿋꿋이 이어지고있다.

참으로 혁명대오안에 끼여든 불순이색분자들이 우리 당의 영광스러운 혁명전통을 거세말살하려고 악랄하게 책동하던 시련의 1950년대에 항일의 혁명전통이 견결히 옹호고수되고 혁명전통교양의 새로운 형식과 방법들이 창조되였으며 혁명전적지들에 대한 답사의 시원이 열려지게 된것은 전적으로 10대의 어리신 위대한 장군님께서 이룩하신 불멸의 업적인 동시에 항일혁명의 위대한 혈맥을 꿋꿋이 이어나가도록 하신 위대한 장군님의 대용단이 안아온 빛나는 결실이다.

우리는 일찌기 우리 학생소년들을 항일의 혁명전통으로 튼튼히 무장시키는 사업에 깊은 관심을 돌리시고 수령, 당, 군대와 인민의 일심단결을 반석같이 다져 우리 혁명의 주체를 비상히 강화하여오신 위대한 장군님의 불멸의 령도업적을 더욱 빛내이며 경애하는 김정은동지의 선군혁명령도를 충직하게 받들어 주체혁명위업을 끝까지 완성해나가야 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