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종합대학 력사학부 부교수 박철
2020.9.22.
우리 인민은 한평생 조국의 부강번영과 인민의 행복을 위하여 자신의 모든것을 다 바치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애국헌신의 로고와 불멸의 업적에 대하여 더욱 가슴뜨겁게 돌이켜보고있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수령님께서는 혁명의 길에 나서신 때로부터 기나긴 세월 인간이 당할수 있는 모진 슬픔과 괴로움을 다 겪으시면서도 오직 혁명만을 생각하시였으며 혁명의 승리를 위하여 모든것을 다 바치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일찌기 혁명의 길에 나서신 때로부터 한평생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순간의 쉬임도 없이 정력적으로 사업하시였다.
특히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인민의 행복을 위하여 온갖 로고를 다 바치시면서도 생신날이나 명절날들에도 인민들과 함께 계시면서 소박하고 수수하게 쇠는것을 제일로 여기시였다.
순간의 휴식도 없이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모든것을 다 바치신 위대한 수령님의 헌신의 로정에는 전후 처음으로 맞으신 자신의 생신날에도 우리 농민들과 함께 계시며 농업협동화를 위한 투쟁을 정력적으로 이끌어주신 불멸의 자욱이 뜨겁게 새겨져있다.
주체43(1954)년 4월 중순 위대한 수령님의 탄생 42돐을 앞두고있던 때였다.
위대한 수령님을 몸가까이 모시고있던 일군들은 조국해방전쟁 3년간 단 하루도 쉬지 못하신 어버이수령님께서 생신날만이라도 즐겁게 휴식하시기를 간절히 바라며 4월 15일을 맞으며 명절맞이계획을 토론하고 그 준비를 하나하나 해나가고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4월 14일 아침 한 일군을 부르시여 4월 15일을 맞으면서 무엇을 준비하고있지 않는가고 물으시였다.
벌써 모든것을 직감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 단도직입으로 물으시는 바람에 그는 할수 없이 조국해방전쟁에서 력사적승리를 이룩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 생신날 하루만이라도 휴식하시도록 하기 위해 그 준비를 하고있다는것을 보고드리면서 이것은 항일혁명투사들과 일군들의 한결같은 소원이라고 간절히 말씀드렸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잠시 깊은 생각에 잠기시였다가 해방직후에도 김책, 안길동무들이 자신의 생일을 준비하길래 자신께서는 생일을 쇠지 않는다고 하면서 그만두라고 하였다고, 자신께서는 생일놀이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하시면서 래일은 어느 농촌에 나가 농민들도 만나보고 농업협동화정형을 알아보려고 한다고 스스럼없이 말씀하시였다.
그러시면서 생일준비를 일체 그만두라고 엄하게 이르시였다.
너무도 소박하고 검박하신 어버이수령님의 고결한 풍모앞에서 그 일군은 더 이상 다른 말씀을 드리지 못하였으며 다음날에는 아무런 준비도 하지 못한채 위대한 수령님의 생신날아침을 다른 날과 꼭같이 맞이하게 되였다.
조국해방전쟁을 승리에로 령도하시고 온 나라 인민에게 새삶이 약동하는 봄을 안겨주신분이여서 더구나 인민의 도리로 보아도 온 나라가 기쁨속에 성대히 경축하여야 할 4월 15일 아침이였건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여느때와 조금도 다름이 없이 검소한 식사를 하시고는 중화군의 협동벌을 향하여 현지지도의 길을 떠나시였다.
이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평안남도 중화군 삼정리(당시)에 나가시여 농민들과 무릎을 마주하시고 담화도 하시였고 농민들의 생활형편도 일일이 알아보시면서 독창적인 우리 나라 농업협동화방침의 우월성과 정당성을 해설해주시였으며 농업협동화를 하루빨리 실현하는데서 나서는 과업에 대하여서도 세세히 가르쳐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삼정리에 조직된 농업협동조합들을 돌아보았는데 씨붙임이 잘되였다고 만족해하시였으며 3년간의 전쟁으로 인하여 농촌경리가 혹심하게 파괴되고 농민들의 생활이 심히 령락된 조건에서 개인농민경리를 그대로 두고서는 파괴된 농촌경리를 급속히 복구발전시킬수도 없고 긴장한 나라의 식량문제도 해결할수 없다고 하시면서 농업협동화의 필요성에 대하여 설득력있게 해설해주시였다.
이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협동조합을 공고발전시키는데서 나서는 과업들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밝혀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선 농사를 잘 지어야 한다고 하시면서 밭에 거름을 많이 내고 씨붙임과 모내기, 김매기를 제철에 하며 지대적특성과 기후풍토에 맞는 우량종자를 심어야 한다고 하나하나 가르쳐주시였다.
이와 함께 남새와 과일생산을 늘이고 양어도 발전시켜 조합원들의 현금수입을 높일데 대하여 교시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밖에도 계획화사업과 농산작업의 기계화를 실현하는 문제를 비롯하여 갓 조직된 농업협동조합의 관리운영에서 나서는 제반 원칙적인 문제들을 알기 쉽게 가르쳐주시였으며 흰쌀밥을 먹고싶어하는 이곳 농민들의 세기적인 숙원까지 깊이 헤아리시고 대동강물을 끌어올리도록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렇게 자신의 생신날을 현지지도의 길에서 보내시고 저녁늦게야 댁으로 돌아오시였다.
정문가에서 위대한 수령님을 마중한 한 일군이 생신날마저 쉬지 못하고 늦게 돌아오신다고 안타까운 심정을 그대로 털어놓았다.
그러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만면에 환한 미소를 담으시며 오늘은 정말 기쁜 마음으로 생일을 쇠였다고 하시면서 그 일군에게 자신에게 있어서 휴식이란 먹고 노는것이 아니다, 오늘 농민들과 마주앉아 농사일도 의논하고 인민들의 생활을 높일 방도도 토론하였다, 농업협동화도 잘되여가고 나라일이 잘되여가니 마음이 기쁘다고 말씀하시였다.
이렇게 한평생 위대한 수령님께서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생신날, 명절날, 휴식일에 현지지도의 길을 걸으신 날은 무려 7년이 넘는 세월을 이룬다.
인류력사를 돌이켜보면 어느 나라에나 민족을 이끌고 력사를 주도한다고 나섰던 령도자들은 적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중에 인민을 진정 자기 삶의 전부로 여기고 오직 인민을 위한 길에 한생을 다 바친 그런 령도자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위대한 수령님께 있어서 우리 인민은 하늘이였고 스승이였으며 자신의 삶과 행복의 전부이시였다.
진정 위대한 수령님은 인민의 행복을 위한 길에서 기쁨을 찾으시고 나라의 부강발전에서 보람을 느끼시며 자신의 생신날마저 다 바치신 진정한 인민의 수령이시였으며 만고절세의 위인이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