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종합대학 법학부 교수 박사 김성호
2020.3.16.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김일성동지의 한생은 이민위천을 좌우명으로 삼고 사상과 령도에 구현하여 현실로 꽃피우신 인민적수령의 숭고한 한생이였다.》
예로부터 산좋고 물맑아 금수강산이라 불리워온 우리 나라에서 벌방, 두메 그 어디에나 흔한것은 물이다. 하건만 조국의 해방으로 강산이 설레이던 시절에 마타리물로 목을 추기던 사람들도 있어 우리 수령님 마음을 그토록 아프게도 태웠으니 열두삼천리벌의 숙천군 창동리(당시)의 남동마을은 그때문에 위대한 수령님과 류다른 인연을 맺은 고장들중의 하나이다.
주체37(1948)년 9월 중순 인민을 위한 현지지도의 길을 이어가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 남동마을에 들리시였다.
서해기슭 한끝에 있는 숙천군 창동리에서도 동떨어진 남동마을은 해방전에 일제의 학정아래 쌀걱정에 물고생까지 겹친 사람 못살 고장이였다. 겨우 씨붙임을 한 농작물포기마저 소금기에 절고 가물에 말라죽는 이 고장에서는 우물을 파도 짠물밖에 나오지 않아 별수없이 곤두벌레가 와글거리는 웅뎅이물을 채로 밭아서 먹지 않으면 안되였다. 웅뎅이에 고인 비물을 민간에서는 마타리물이라고 하였고 식자가 있다는 사람들은 그 물을 병마를 끌어들이는 사탄의 오줌이라고 하였다. 남동사람들은 가난한 살림에 물까지 어지러운것을 마시며 살다나니 이름모를 토질병에 걸려 제명을 못 채우고 피를 토하다가 죽어가군 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남동마을에서도 제일 가난해보이는 잔디로 벽을 쌓은 떼장집에 들리시였다.
안녕하십니까. 나 물한사발 좀 주십시오 하고 청하시는 수령님,
《아니, 나라의 임금님께서?!》
신발도 못 찾아신고 토방에서 내려 넙죽 엎드린 로인. 그를 부축하여 일으켜세우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해방된 우리 나라에는 임금이란 없다고, 임금처럼 대접받아야 할 사람은 로인님과 같은 분들이라고 하시며 다시 물을 청하시였다. 로인은 자기 귀를 의심하지 않을수 없었다. 이 고장에 와 물을 청하는 손님은 마을이 생긴이래 처음이였기때문이였다.
로인은 죄송스럽게 머리를 조아리였다. 《장군님께 물 한사발도 드리지 못하는 이 못난 백성을 용서하십시오, 이 남동리물은 어지러워서 마시면 안되옵니다. 군에서 일보시는 어른들도 어쩌다 이 마을에 올 때면 물병을 차고옵니다.》
하지만 수령님께서는 그럼 이 마을사람들이 어떤 물을 마시고 사는지 보기라도 하자고 하시였다.
로인의 며느리가 이빠진 사발에 뿌연 마타리물을 담아가지고 나왔다.
물사발을 받아드신 수령님께서 그것을 천천히 기울여 한모금 넘기시자 로인이 기겁하여 비명을 질렀다. 나라의 임금님께 마타리물을 마시게 했으니 이제 남동마을이 천벌을 받게 됐다고 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로인님은 아직도 나를 임금이라고 합니까, 우리 나라에서 임금은 인민이고 나는 그 임금의 신하입니다, 로인님이 한평생 마신 물을 한모금 넘겼는데 그게 무슨 큰 일이라고 그러십니까, 로인님이 허락만 하신다면 나는 오늘밤 이 댁에서 자고 가려고 합니다라고 하시였다.
수령님의 그 말씀에 로인은 오열을 터뜨렸다. 여태 외지에서 오는 손님들은 기침을 깇고 피가래를 뱉는 이 마을사람들을 전염병자처럼 멀리하였는데 위대한 수령님께서만은 사람대접을 해주시니 감격하지 않을수 없었던것이다.
그날 저녁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 떼장집에서 마타리물로 끓인 시래기국으로 음식을 드시고 마을농민들과 밤이 깊도록 담화를 하시였다.
알고보니 80고령으로 보이던 떼장집로인은 남동마을에서는 유일하게 60나이에 이른 《장수자》였다. 마을농민들은 수령님을 모신 자리에서도 장작을 패듯이 저마다 요란스럽게 기침을 깇었다. 조용히 앉아있다가도 한사람이 기침을 하면 모두 백날기침병을 앓는 아이들처럼 숨이 넘어갈듯 줄기침을 깇었다. 토질병으로 해서 생긴 기침이였다.
남동마을사람들의 고통스러운 기침소리가 가슴을 아프게 파고들어 그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끝내 잠을 이루지 못하시였다.
나라는 해방되였으나 할 일은 얼마나 많고많은가, 과연 어느 문제부터 풀어나가야 할것인가, 풀벌레우는 가을밤이 깊어갈수록 떼장집의 방등불밑에서 위대한 수령님의 사색은 깊어만 갔다.
물은 모든 생명체의 근본이며 물이자 생명이다. 새 나라의 주인으로 된 인민을 잘 먹이고 잘 입히고 잘살게 하는것을 정치의 천하지대본으로 삼으신 우리 수령님이시기에 력사의 그밤 인민들의 생활에서 물고생, 물걱정부터 영원히 없애버릴 결심을 하시고 백년대계의 관개공사를 구상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튿날 평양에 돌아오시자 곧 내각협의회를 열고 평남관개공사에 대한 문제를 토의에 붙이시였다. 이렇게 되여 시작된것이 평남관개공사였다.
어찌 평남관개만이였으랴.…
그때 우리 수령님의 심중에 어찌 남동마을만이 깃들어있었으랴.
겨울이면 얼음이나 눈을 녹여 밭아낸 물마저 아껴 사돈에게만 대접한다고 하여 그 물을 《사돈물》이라고 부른다는 어러리벌농민들, 나쁜 물때문에 토질병에 걸려 30살도 되기 전에 세상을 하직한다는 해발고높은 오지덕의 사람들 아니 온 나라 인민들에게 수질좋은 먹는물을 주고 물이 말라 옹근소출을 내지 못하는 전야들에는 푸르른 생명수가 철철 넘쳐흐르게 하실 웅지가 자리잡고있었다.
반만년력사에 처음 보는 기적을 창조하는 일이라 난관과 시련은 꼬리를 물고 맞섰다. 종파사대주의자들이 방해를 놀고 대국주의자들이 찬물을 끼얹었다.
하지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 모든 력사의 중압을 자신께서 걸머지시였다. 남들에게 덜어주지 않고 온갖 고생을 묵묵히 감수하시며 단신으로 모든것을 감당하신 우리 수령님의 헌신의 밑바탕에는 과연 무엇이 있었던가. 마타리물때문에 줄기침을 깇는 인민의 고통, 물이 없어 꼬장모를 내고 하늘에 기우제를 올려야 하는 농민들의 걱정과 근심…
인민의 고통을 고스란히 자신의 고통으로 받아들이신 우리 수령님이시였다. 새 조선건설의 나날에 이어 한평생 수령님께서는 인민을 위한 고생이라면 스스로 맡아안으시였다. 평남관개 2단계공사기간에만도 수령님께서는 무려 100여차례나 현지지도를 하시였다. 마타리물의 력사, 기우제의 력사를 끝장내고 물에 대한 농민들의 세기적숙망을 풀어주시는 나날에 우리 수령님 겪으신 고생 얼마였고 력사도 모르게 바치신 심혈과 로고 그 얼마였던가.
오늘 이 행성에는 공해로 수억의 인구가 오염된 물을 마시며 병마에 시달리고 물문제가 초미의 문제로 나서고있지만 이 땅의 크고작은 물줄기들을 다스려주신 위대한 수령님의 은덕에 우리 인민은 물걱정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