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연구

전망봉으로 된 사연

 2024.7.25.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 수령님위대한 령도자이시였을뿐아니라 위대한 혁명가, 위대한 인간이시였으며 인민의 자애로운 어버이이시였습니다.》

인민을 한없이 존중하고 뜨겁게 사랑하며 인민을 위하여 자신의 모든것을 다 바치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현지지도의 려정우에는 인민에 대한 사랑의 력사와 더불어 길이 전해갈 가슴뜨거운 이야기가 전해지고있다.

전망봉, 지도에도 표기되여있지 않고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이 더 많은 희천시의 높지 않은 봉우리이다.

여기에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가렬처절한 조국해방전쟁시기부터 12차례, 위대한 장군님께서 3차례나 다녀가신 거룩한 발자취가 어리여있다.

전망봉에 올라서면 층암절벽밑으로 유유히 흐르는 청천강을 끼고 널직하게 들어앉은 희천시의 전경이 한눈에 안겨온다.

주체53(1964)년 4월 23일 희천시를 나라의 튼튼한 기계공업기지, 전자공업기지로 발전시키기 위하여 현지지도의 길을 이어가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희천시가 한눈에 바라보이는 이곳에 차를 세우시였다. 희천시를 현대적인 공업도시로 꾸리는데서 나서는 방향과 방도를 밝혀주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해방전 인민들이 한많은 세상을 통탄하며 여기서 목숨을 던졌다고 하여 봉우리를 자살봉이라고 부른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시였다.

한동안 말씀이 없으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산봉우리이름을 고쳐야 하겠다고, 지난날 우리 인민들이 착취사회에서 어렵게 살다보니 자살봉이라는 이름이 생겨났겠지만 오늘에야 왜 그런 좋지 못한 이름을 그냥 부르겠는가고, 여기 올라서면 희천거리를 다 전망할수 있겠는데 산봉우리이름을 전망봉이라고 부르는것이 좋겠다고 말씀하시였다.

어제날 원한의 대명사로부터 희망의 대명사로 불리우는 전망봉!

진정 여기에는 착취받고 압박받던 우리 인민들이 인민이 주인된 사회에서 온갖 복락을 다 누리고 희망을 꽃피우며 살아야 한다는 위대한 수령님의 자애로운 어버이의 열화같은 정이 뜨겁게 새겨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