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종합대학 법학부 교수 박사 조용봉
2024.4.5.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김일성동지의 한생은 이민위천을 좌우명으로 삼고 사상과 령도에 구현하여 현실로 꽃피우신 인민적수령의 숭고한 한생이였다.》
한평생 이민위천을 좌우명으로 삼으시고 그 구현을 위한 혁명령도의 나날에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제일 심려하신 문제의 하나는 녀성들을 힘든 로동에서 해방하는것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녀성들을 힘든 로동에서 해방하여주시려 로고를 바치신 사랑의 이야기는 북청군 당우리 대성마을의 발방아에도 뜨겁게 깃들어있다.
주체46(1957)년 3월 23일,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북청군의 어느한 농업협동조합(당시)에 대한 현지지도를 하시였다.
이날 현지지도를 마치시고 큰길쪽으로 내려오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커다란 돌배나무가 서있는 박우물가에 이르시여 문득 걸음을 멈추시였다.
박우물곁에 놓인 발방아를 보시였던것이다.
한동안 그것을 눈여겨보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발방아가 아닌가고 동행한 일군에게 물으시였다.
뒤따르던 일군이 발방아라고 말씀올리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래 발방아가 틀림없다고, 우리 좀 늦더라도 저기에 잠간 들렸다 가자고 하시며 걸음을 옮기시였다.
방아간에 이르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감회깊은 어조로 발방아라라고 나직이 외우시더니 방아확과 방아채를 주의깊게 살펴보시였다.
감회어린 눈길로 발방아를 이윽토록 살펴보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동행한 일군에게 발방아를 찧어본 일이 있는가고 조용히 물으시였다.
그가 어렸을 때 어머니와 함께 재미거리로 몇번 찧어보았다고 답변을 올리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발방아를 찧는 일은 헐한것 같으면서도 사실은 아주 힘든 일이라고, 재미거리로 찧어보는것과 먹고 살기 위해서 발방아질을 하는것은 완전히 다르다고 하시면서 하루종일 방아를 찧으면 여간만 고되지 않다고, 바로 이런 힘든 일을 지난날 우리 녀성들이 해왔다고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잠시 동안을 두시였다가 오늘 여기에 들려보기를 잘하였다고, 여기에 와보니 우리 녀성들을 힘든 로동에서 해방시켜야 하겠다는 결심이 더욱 굳어진다고 하시였다.
마디마다 우리 녀성들에 대한 사랑이 흘러넘치는 뜻깊은 말씀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시간의 흐름에 대해서는 잊으신듯 방아다리에 다가서시더니 방아덕과 반질반질 닳은 손잡이가름대를 눈여겨보시였다. 그러시다가 일군들이 미처 만류할 사이도 없이 방아에 오르시여 가름대에 한팔을 얹으시고 방아다리를 지그시 누르시였다가 놓으시였다.
이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농촌녀성들의 힘든 일을 당장 덜어주지 못하는것이 가슴에 걸리시여 무척 무거운 마음으로 그곳을 뜨시였다.
친히 밟아보신 발방아,
우리 녀성들의 가정의 고된 로동을 놓고 얼마나 마음쓰시였으면 이렇듯 한 나라의 수령이 농촌마을의 발방아도 허물없이 밟아보시였겠는가.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후 평양에 돌아오시여서도 자주 북청에서 발방아를 밟아보시던 일을 회상하시면서 어떤 일이 있더라도 농촌에 기계방아를 놓아주어야겠다고 하시며 친히 조치를 취해주시였다.
그러시고는 농촌에 기계방아를 놓는 일은 단순히 출미률을 높여 쌀을 더 얻어내자는데만 목적이 있는것이 아니라 방아찧는 고된 로동에서 녀성들을 해방시키기 위한 중요한 정치적과업이라고 하시면서 걸린 문제들을 우선적으로 풀어주시였다.
그리하여 위대한 수령님의 현지지도의 발자취가 력력히 어려있는 북청군 당우리를 비롯한 조선의 모든 농촌마을들에 현대적인 정미소들이 일떠섬으로써 발방아소리는 영원히 사라져버렸다.
하지만 북청의 발방아는 오늘도 력사의 증견자인양 제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한채 후대들에게 위대한 수령님의 그날의 현지지도사적을 대를 이어 길이길이 전하고있다.
참으로 우리 수령님은 인민의 아들로 태여나시여 인민만세의 새 력사를 안아오신 존함그대로 인민의 어버이이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