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연구

자주외교사에 영원히 기록될 공화국의 첫 협정

 2019.9.12.

한평생 자주의 기치를 높이 드시고 사대와 굴욕으로 얼룩졌던 이 나라의 외교사에 종지부를 찍고 평등한 대외관계의 새 력사를 개척하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불멸의 업적은 주체조선의 존엄과 지위를 떠받드는 튼튼한 토대로 되고있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김일성동지는 심오한 사상리론과 비범한 령도력, 거창한 혁명실천으로 조국과 인민, 시대와 혁명앞에 불멸의 업적을 남기신 가장 걸출한 수령, 희세의 정치원로이시다.》

인민이 주인된 자주독립국가를 창건하여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가 처음으로 체결하게 되는 협정이 완전한 평등의 립장에서 체결되도록 적극적인 대외활동을 벌리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38(1949)년 2월 22일부터 4월 7일까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대표단을 인솔하시고 쏘련을 공식친선방문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쏘련방문은 우리 공화국이 창건된 후 처음으로 되는 력사적인 외국방문으로서 당시 세계 각국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동방에 있는 조선은 쏘련에 있어서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위치에 놓여있다고 말할수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시기 쏘련의 가장 약한 고리는 동쪽이였다.

때문에 쏘련은 파쑈도이췰란드와 힘겹게 싸우면서도 일제를 비롯한 제국주의자들의 침략으로부터 원동과 씨비리를 보위하기 위하여 동쪽에 수많은 무력을 남겨두지 않으면 안되였다.

만일 위대한 수령님께서 《쏘련을 무장으로 옹호하자!》는 숭고한 국제주의적구호를 드시고 일제의 쏘련침공기도를 분쇄해버리지 않으시였더라면 쏘련은 씨비리전선의 수많은 무력을 파쑈도이췰란드를 반대하는 서부전선에 돌리지 못하였을것이며 그만큼 쏘련은 많은 희생과 대가를 치르어야 했을것이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후 쏘련의 동방전략은 달라지게 되였다.

주체37(1948)년 9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탄생으로 하여 사회주의동방초소가 굳건해졌기때문이였다.

당시 중국공산당은 국내혁명전쟁을 한창 진행하고있었으며 위대한 수령님께서 쏘련을 방문하시던 때는 전중국을 해방하기 위하여 중국인민해방군이 조선의 혁명가들과 손잡고 장강도하를 준비하던 시기였다.

때문에 쓰딸린을 비롯한 쏘련지도자들은 위대한 수령님을 사회주의동방초소를 지켜선 전우로 존경하면서 우리 대표단을 극진히 환대하였다.

주체38(1949)년 3월 5일 위대한 수령님께서 크레믈리궁전에 이르시자 쓰딸린은 외무상을 비롯한 여러 일군들과 함께 수령님을 정중히 맞이하였다.

이날 회담에서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 정부대표단의 쏘련방문목적에 대하여 언급하시고 이번 쏘련방문기회에 두 나라사이의 무역 및 통상관계에 대한 협정을 체결하며 여러 분야에서의 협조와 관련한 협정도 맺을 필요가 있다고 하시였다. 쓰딸린은 아주 절박하고 중요한 문제들이라고 하면서 전적인 동의를 표시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이날 쓰딸린과 하신 담화는 공화국의 령도자로서 쏘련당과 국가의 수반과 진행하신 첫 대외활동이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대외활동은 첫시작부터 쏘련측 일군들과 우리 정부대표단 성원들의 열렬한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우리 인민의 경제건설과 문화건설에서 제기되는 문제와 쏘련과 여러 분야에서 협정을 체결해야 할 필요성과 그 내용, 당면하게 조쏘 두 나라가 단합된 힘으로 해결하여야 할 정치적과업 등 위대한 수령님께서 쓰딸린에게 하신 말씀을 통하여 회담에 참가한 성원들은 수령님께서 쏘련국가수반과의 담화를 시종일관 호상존중과 완전한 평등과 호혜의 원칙에서 하시였음을 목격하였다.

우리 수령님의 환하신 태양의 미소와 우렁우렁한 목소리, 모든 문제를 조선의 실정에 맞게 자체의 힘으로 해결해나가시려는 주인다운 립장과 대바른 주견과 결합된 론리정연한 설득력, 국제정세에 대한 과학적통찰력 등 수령님의 거룩한 풍모는 사회주의를 건설하고있던 동유럽나라 지도자들에게서는 찾아볼수 없는 위인적풍모였다.

3월 17일 모스크바 크레믈리궁전에서는 위대한 수령님의 참석하에 우리 나라 정부대표단과 쏘련정부대표단사이의 제2차 회담이 진행되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쏘베트사회주의공화국련맹사이에 경제적 및 문화적협조에 관한 협정조인식이 진행되였다.

5개 조항으로 된 조쏘간의 경제적 및 문화적협조에 관한 협정에는 두 나라가 협조, 평등 및 호상리익의 기초우에서 통상관계를 발전시키고 통상 및 항행에 관한 문제에서 호상 최혜국제도를 적용하며 문화, 과학 및 예술분야에서 두 나라사이에 이미 맺어진 관계를 발전시키고 공업 및 농업분야에서 경험교환을 촉진시킬데 대하여 규정되여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협정조인식에서 하신 연설에서 두 나라사이의 경제적 및 문화적협조에 관한 협정의 체결은 중요한 정치적사변이라고 하시면서 이 협정은 조선력사에서 처음으로 자주적인 조선정부가 완전히 평등한 립장에서 다른 나라 정부와 체결한것이라고 강조하시였다.

크레믈리궁전에서 우렁우렁한 목소리로 자부심에 넘치시여 하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연설은 조선의 외교사에 남아있는 뼈저린 력사적교훈을 되새겨주는 뜻깊은 말씀이였다.

지난 시기 우리 인민이 일제의 식민지노예의 멍에를 지게 된것은 바로 부패무능한 조선봉건정부가 사대와 굴종외교로 예속의 함정에 빠진 결과 일제에게 불평등조약들을 강압체결당했기때문이였다.

1876년 2월에 조선봉건정부가 일본과 맺은 《강화도조약》도 봉건통치배들이 일제의 위협공갈에 굴복하여 민족의 자주권과 리익을 전면적으로 침해당한 굴욕적이고 예속적인 조약이였다. 그 조약은 일제에게 조선에서 《치외법권》과 《무관세권》, 《연해측정권》 등을 행사할수 있는 권리를 규제하여놓음으로써 일제에게 조선침략의 문을 열어준 불평등조약이였던것이다.

그후 조선봉건정부가 여러 렬강들과 체결한 조약들 역시 조선의 자주권을 란폭하게 유린한 불평등조약이였으며 짜리로씨야와 조선봉건정부사이의 관계도 예속적인 불평등관계였다.

조쏘간의 경제적 및 문화적협조에 관한 협정을 두고 하신 위대한 수령님의 연설은 지난 시기 큰 나라들에 대한 봉건통치배들의 외세의존정책에 의하여 불평등조약만을 감수하지 않으면 안되였던 조선의 력사는 영원히 끝장났다는것을 엄숙히 선포하신 력사적인 연설이였다.

참으로 위대한 수령님의 대외활동과정에 우리 공화국정부가 처음으로 체결한 쏘련정부와의 경제적 및 문화적협조에 관한 협정은 우리 공화국과 쏘련사이의 새로운 관계력사를 열어놓는것과 동시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주권존중과 평등의 원칙에서 국제관계를 지향하고 실천하는 자주독립국가임을 공식화한 협정, 공화국의 자주외교사에 영원히 기록될 첫 협정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