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연구

어버이수령님과 조선녀성들 (3)
구성방직공장의 한 방직공녀성에게 베풀어주신 어버이사랑

 2020.6.29.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수령님께서는 일찌기 녀성들은 혁명의 한쪽수레바퀴를 떠밀고나가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하시면서 그들의 지위와 역할에 커다란 의의를 부여하시였습니다.》 (김정일선집》 증보판 제18권 219페지)

우리 녀성들을 혁명의 한쪽수레바퀴를 떠밀고나가는 역군으로 내세워주고 보살펴주신 어버이수령님의 크나큰 사랑은 구성방직공장의 한 방직공녀성의 성장과 행복한 가정생활에도 뜨겁게 깃들어있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전체 인민이 전후 3개년계획의 첫해과업수행에 들어선 주체43(1954)년 1월 29일에 구성방직공장을 현지지도하시였다.

이날 40대의 방직기대를 맡아보는 오랜 기능공인 고금순동무를 만나주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그를 두고 훌륭한 동무라고, 앞으로 어린 동무들을 많이 양성하여 그들을 훌륭한 기능공들로 만들어야 한다고 고무해주시였다.

그해 9월에 또다시 공장을 찾아오시였을 때에 열광적으로 환호를 올리는 로동자들속에서 고금순동무를 알아보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걸음을 멈추시고 그의 어깨를 어루만져주시면서 그동안 잘 있었는가, 일을 잘하고있는가고 친어버이사랑으로 물어주시였다. 그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공장일군들과 같이하신 자리에서 고금순동무에게 녀성들이 출가하면 왜 다른 곳으로 가는가고 물으시고 녀성들은 결혼하면 부득불 남편을 따라가게 되여있어 공장을 떠나게 된다는 그의 대답을 들으시고는 웃으시면서 녀성들이 결혼하고도 직장을 리탈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이 공장 가까운 곳에 남자들이 많이 일하는 큰 공장을 하나 건설해야겠다고 교시하시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녀성들이 출가하면 로동에서 리탈하여 가정에 들어박혀서 남편의 옷이나 빨아주고있는데 이것은 좋은 일이 아니라고, 녀성들은 출가한 후에도 계속 공장에서 일을 하면서 항상 공부를 해야 한다고, 녀성들도 로동계급으로 되는것보다 더 영광스럽고 행복한 일이 없다는것을 알아야 한다고 교시하시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계속하시여 녀성들이 공장에서 계속 일을 하면서도 가정살림을 잘할수 있도록 집도 깨끗이 꾸려주고 부부식당도 만들어주며 탁아소, 유치원설비도 잘 꾸려주고 세탁소, 재봉침방도 만들어주어야 한다고 교시하시였다.

어버이수령님의 크나큰 사랑과 믿음을 안고 공장의 로동계급은 생산증산투쟁에 떨쳐나섰으며 고금순동무는 맡겨진 3개년인민경제계획을 1년반동안에 완수하고 주체45(1956)년말에는 360%로 초과수행하였다.

이듬해 2월 그는 휴가를 받고 북청에 있는 집으로 갔다가 그곳에서 제대군인과 결혼하였으며 가정형편으로 공장에 돌아오지 못하고 남편과 함께 농업협동조합에서 일을 하게 되였다. 그의 마음속에는 어버이수령님께서 훌륭한 로동계급이 되라고 하신 말씀이 항상 되새겨져 방직공장으로 돌아갈 생각이 용솟음쳤지만 어쩔수 없었다.

주체47(1958)년 6월 25일에 또다시 공장을 찾아주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그에 대한 보고를 받으시고 서운해하시면서 금순동무를 곧 데려오라고, 가족들도 데리고와서 잘살수 있도록 문화주택도 알뜰하게 꾸려주며 모든 조건을 잘 보장해줄데 대하여 교시하시였다.

이리하여 그는 온 집안식구들과 함께 공장으로 돌아와 어버이수령님의 사랑으로 마련된 아담한 문화주택에서 행복한 생활을 누리게 되였다.

어버이수령님의 하늘같은 사랑에 높은 생산실적으로 보답할 일념으로 가슴을 불태우며 어버이수령님을 만나뵈올 그날만을 기다리던 고금순동무는 주체48(1959)년 7월 3일 아침 공장을 찾아주신 어버이수령님을 또다시 만나뵙는 영광을 지니게 되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몹시 반가와하시며 잃었던 사람을 다시 찾았다고 거듭 되뇌이시면서 그의 머리와 어깨를 쓰다듬어주시고 손을 오래오래 잡아주시였다.

그때 그는 두볼로 눈물이 흘러내리는것을 깨달았으나 닦을 생각도 하지 못하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부드러우신 음성으로 가족은 다 왔는가, 남편은 무슨 일을 하는가, 애는 있는가고 물으시고나서 생활에서 불편한것은 없는가고 가정형편에 대하여서까지 세심히 알아보시며 따뜻이 보살펴주시였다.

그날 직포직장을 돌아보시며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그에게 우리 나라에서 만든 천리마직기와 외국의 직기들중에서 일하기에 어느것이 더 나은가고 물어주시고 우리 나라에서 만든 천리마직기가 좋은데 기계가 좀 높아서 잉아꿰기가 힘들다는 대답을 들으시고는 이때까지 누구도 발견하지 못한 새롭고 큰 문제를 금순동무가 발견하고 제기했다고 하시면서 앞으로는 우리 나라 녀성들의 키에 알맞게 직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교시하시였다.

그후에 우리 나라의 천리마직기는 우리 방직공녀성들의 키에 알맞게 개량되여 작업하기에도 편리하고 능률도 더 낼수 있게 되였다.

공장을 다 돌아보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금순동무에게 이 공장에서 몇십년이고 일해야 한다고 그리고 공부를 잘하여 일반지식수준도 높이고 기술문화수준도 높이라고 말씀하시였다.

주체50(1961)년 4월 20일, 경공업부문 열성자대회때에 어버이수령님께서주석단에 등단하는 사람들속에서 고금순동무를 발견하시고 못내 반가우시여 구성방직공장주인이 왔다고 하시며 주위에 있는 일군들에게 그를 소개까지 하시였다.

이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그를 자신의 옆에 앉히시고 회의를 지도하시였으며 휴식시간에도 그를 바로 자신의 곁에 앉히시고 당과 정부의 지도간부들과 주석단성원들에게 마치도 사랑하는 딸자식을 자랑하시듯 그의 지나온 생활에 대하여 차근차근 말씀해주시였다.

구성방직공장의 방직공녀성은 바로 이렇게 어버이수령님의 품속에서 자라났다.

어버이수령님의 크나큰 사랑에 의하여 그의 남편은 자기의 희망대로 공무직장에서 선반공으로 일하면서 야간기술전문학교를 다니다가 그후 평양기계대학에 가서 공부하게 되였다.

구성방직공장의 한 방직공녀성에게 베풀어주신 어버이수령님의 대해같은 사랑은 온 나라 방직공장에 깃든 위대한 수령님의 불멸의 령도업적과 더불어 후손만대에 길이 전해질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