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연구

영화예술부문에서 수령형상창조의 새 력사를 펼쳐주신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의 불멸의 업적

 2017.9.10.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우리는 위대한 장군님을 우리 당과 인민의 영원한 수령으로 높이 모시고 장군님의 혁명생애와 불멸의 혁명업적을 길이 빛내여나가야 합니다.》

문학예술의 탁월한 영재이신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혁명생애의 전기간 눈부신 예지의 빛발로 주체조선의 영화사에 거룩한 령도의 자욱을 남기시며 영화예술부문에서 수령형상창조의 새 력사를 펼치시는 불멸의 혁명업적도 이룩하시였다.

우리 영화예술부문에서 수령형상창조의 고귀한 전통은 바로 선대수령에 대한 한없이 고결한 충정을 지니신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에 의해 마련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혁명력사와 혁명가정을 형상한 첫 작품인 《누리에 붙는 불》로부터 《백두산》, 《조선의 별》, 《민족의 태양》, 《잊을수 없는 나날에》, 《내 나라》, 《성새》, 《화성의숙에서의 한해 여름》 등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혁명영화들마다에는 어버이수령님의 숭고한 풍모를 최상의 높이에서 형상하도록 하시려 바치신 위대한 장군님의 심혈과 로고가 깃들어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는 한없이 숭고한 풍모를 지니신 위대한 인간, 위대한 혁명가이시였으며 인민에 대한 믿음과 사랑을 최상의 높이에서 체현하고계신 위대한 인민의 어버이이시였다.

하기에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어버이수령님을 형상한 소설, 시, 연극작품들과 함께 예술영화들도 하루빨리 창작하여 세상에 내놓는것을 우리 시대 인민들의 한결같은 지향과 념원으로, 최대의 희망으로 간주하시고 오래전부터 이 사업에 깊은 관심을 돌리시였다.

주체 49(1960)년 12월 9일 김일성종합대학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시던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자신께서는 연극 《조국산천에 안개 개인다》를 보면서 많은것을 생각하였다고 하시면서 이런 연극이 벌써 나왔어야 하겠는데 지금까지 수령님을 형상한 문학예술작품이 많이 나오지 못하였다고, 특히 영화화면이나 연극무대에서 수령님의 형상을 보고싶어하는 인민들의 요구를 풀어주지 못하고있다고 아쉬움에 겨워 말씀하시였다.

그러시면서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장편서사시 《백두산》을 가지고 영화나 연극을 만들수도 있고 항일혁명투쟁시기의 력사적사건과 사실을 가지고도 여러가지 형식의 작품을 창작할수 있을것이라고 창작방향까지 몸소 밝혀주시였다.

주체 54(1965)년 12월 16일 당중앙위원회 책임일군들과 하신 력사적인 담화 《수령형상문제는 영화예술부문에서 반드시 해결하여야 할 과업이다》에서도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예술영화에서 수령님을 형상하는것이 얼마나 절박하고도 중대한 과업으로 제기되고있는가에 대해 명철하게 분석해주시였다.

이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예술영화에서 수령님을 형상하는것은 우리 인민의 한결같은 념원일뿐아니라 영화예술의 사명과 임무로부터 반드시 풀어야 할 절박한 과업이라고 하시면서 위대한 수령님을 형상한 예술영화를 만들어 수령님의 영광찬란한 혁명력사를 폭넓고 깊이있게 보여주는것은 대중교양수단으로서의 예술영화가 자기 사명을 수행하는데서 매우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고, 수령님을 형상한 예술영화는 수령님의 영광찬란한 혁명력사를 폭넓고 깊이있게 보여주는것으로 하여 사람들에게 혁명의 진리를 깨우쳐주는 참된 교과서로, 그들을 혁명투쟁과 건설사업에로 힘있게 불러일으키는 힘있는 수단으로 된다고 강조하시였다.

그러시면서 위대한 수령님을 형상한 예술영화를 만들어 수령님의 혁명력사를 전면적으로 보여주는 단계에 이르게 될 때 우리의 영화예술은 위력한 대중교양수단으로서의 사명과 임무를 더욱 영예롭게 수행하게 될것이라고,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하나 수령님을 형상한 예술영화를 잘 만들어 사람들에게 수령님의 혁명력사를 생동한 화폭으로 보여주어야 한다고 확신에 넘쳐 교시하시였다.

그때로부터 여러해가 지난 주체58(1969)년 2월 16일 뜻깊은 이날의 아침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문화예술부문 일군들과 창작가, 예술인들을 또다시 만나주시였다.

축원의 인사를 드리는 일군들과 창작가, 예술인들을 반갑게 맞아주시고 그들의 건강이며 창작정형에 대해서도 세심히 물어주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우리의 영화예술이 그동안 적지 않게 발전하였다고, 우리는 혁명적대작들도 만들었고 이제 곧 수령님께서 항일혁명투쟁시기에 친필하신 불후의 고전적명작을 영화에 옮기기 위한 사업에도 착수하게 된다고 하시면서 그러나 수령님의 존귀하신 영상을 예술영화의 화면에 정중히 모시기 위한 사업만은 아직 시작하지 못하고있다고 심중한 안색으로 교시하시였다.

자신께서는 방금전에도 어떻게 하면 그처럼 위대하신 수령님의 영상을 예술영화의 화면에 모실수 있겠는가에 대해서 생각하였다고, 수령님께서 혁명의 길에 나서신지도 벌써 50년이 가까와오는데 아직도 수령님의 영상을 예술영화화면에 모시지 못한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파서 잠이 오지 않는다고 하시는 위대한 장군님의 교시는 일군들의 가슴을 세차게 울리였다.

우리는 수령님께서 더 년세가 높아지시기전에 반드시 우리 대에 이 문제를 해결하여야 한다고 하시면서 세계적으로 볼 때 수령의 형상을 똑바로 해결한 나라가 없다는데 대하여 그 실태를 하나하나 례를 들어 설명하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계속하시여 위대한 수령님의 형상을 최상의 높이에서 창조하는것은 우리 시대 문학예술의 초미의 문제이라고 강조하시였다.

혁명영화창조의 숭고한 구상과 확고한 결심이 어린 위대한 장군님의 교시를 한자한자 심장깊이 새겨넣으며 일군들과 창작가, 예술인들은 자신들에게 지워진 시대적사명감을 절절히 느끼였으며 이름할수 없는 격정으로 설레였다.

그러나 수령형상창조문제를 이처럼 절박하게 제기되는 초미의 과제로 내세우시면서도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결코 예술영화화면에 우리 수령님의 숭고한 영상을 모시는 문제를 일조일석에 해결할수 있으리라고는 보지 않으시였다.

어버이수령님의 존귀하신 영상을 모시고 수령님의 숭고한 풍모를 형상하는 혁명영화창작은 단순한 예술작품창조과정이 아니라 우리 혁명의 귀중한 사상적량식, 인류문화의 재보를 마련하고 우리 영화예술을 가장 높은 경지에 올려세우는 더없이 책임적이고 성스러운 사업이다.

수령을 형상하는 사업에서 영화는 당시까지 아직 미개척지라고 할수 있었으며 문학이나 미술작품과는 달리 종합예술인 영화에서 위대한 수령님의 형상을 창조하는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였고 매우 어렵고 복잡한 사업이였다.

수령의 형상을 창조하자면 그 중대하고 책임적인 력사적과제를 맡아 수행할 정치사상적으로, 기술실무적으로 준비된 창작력량이 있어야 하며 충분한 물질기술적조건이 갖추어져야 하는것이다.

하기에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여러해에 걸쳐 수령형상영화창조를 위한 준비사업을 빈틈없이 진행하도록 세심하게 이끌어주시였다.

주체 54(1965)년 조선인민군2.8영화촬영소(당시)에서는 항일혁명투쟁을 소재로 한 예술영화 《신념》을 창작하였는데 력사적인 보천보전투와 관련한 대목에서 환호하는 군중에게 답례를 보내시며 고무적인 연설을 하시는 수령님을 형상하는 대담한 시도를 하였다.

영화를 보아주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아주 감동적인 화폭이라고 하시면서 우리 나라 영화사에서 예술영화에 수령님을 형상하기는 이번이 처음일것이라고, 우리 인민과 인민군군인들의 한결같은 념원을 반영하여 좋은 시도를 하였다고 평가해주시였다.

계속하여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앞으로는 수령님의 혁명력사를 전면적으로 보여줄수 있게 형상하여야 한다고, 우리가 수령님을 받들어나간다고 하면서 수령님의 모습을 영화에 한 장면씩 형상하는 식으로 할수는 없다고 하시며 예술영화에 한두장면씩 형상하는 식으로 단편적으로 수령님을 형상하는것은 수령님을 진심으로 높이 모시려는 립장과 자세라고 말할수 없다고 교시하시였다.

그리고 위대한 수령님을 형상하는 예술영화를 창작하자면 영화창작가들과 배우들의 기량을 결정적으로 높여야 한다는것, 위대한 수령님을 형상한 예술영화를 창작하는데서는 연출과 촬영, 배우연기와 분장에 이르기까지 새롭게 해결하여야 할 문제가 적지 않다는것 등을 강조하시면서 수령님을 형상한 예술영화를 충분한 연구와 준비가 없이 창작하다가는 수령님의 권위를 훼손시킬수 있다고 일군들을 일깨워주시였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주체 56(1967)년 8월 16일 문학예술부문 책임일군들앞에서 하신 연설 《문학예술작품에 당의 유일사상을 구현하기 위한 사업을 실속있게 할데 대하여》에서도 수령형상창조문제를 실무적으로 대하면서 조급증에 사로잡혀있던 일부 일군들과 창작가, 예술인들의 그릇된 사상관점과 태도에 제때에 경종을 울리시였다.

당시까지만 하여도 문학예술작품에 당의 유일사상을 구현할데 대한 당의 의도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고있던 일부 창작가들과 일군들은 문제를 일면적으로, 피상적으로 대하면서 아무런 정치적고려와 준비도 없이 영화마다에 위대한 수령님을 형상하려 하고있었다.

이러한 편향은 조선예술영화촬영소에서도, 조선인민군2.8영화촬영소(당시)에서도 나타났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문학예술작품에 당의 유일사상을 구현하는 사업은 위대한 수령님을 형상하거나 작품의 주인공이 만세를 몇번 부르게 하는것으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라고 하시면서 문학예술부문에서 아무런 정치적고려와 준비도 없이 수령님을 형상하면 수령님의 높은 권위와 위신을 보장한다는것이 오히려 훼손시키는 결과를 가져올수 있다고 교시하시였다.

창작가들은 마땅히 당에서 밝혀준 사상리론적문제를 내용과 본질에 이르기까지 옳게 파악한 기초우에서 작품창작을 하여야 할것이라고 가르쳐주시면서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문학예술작품에 당의 유일사상을 구현하려면 작가, 예술인들의 창작기량을 결정적으로 높여야 한다고, 위대한 수령님을 영화화면에 형상하는 문제도 영화창작가들의 기량문제가 해결되지 않고서는 옳게 풀어나갈수 없다고 강조하시였다.

수령형상영화창조의 새 력사를 펼치는데서 위대한 장군님의 발기와 지도에 의해 조직되고 강화발전된 백두산창작단이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영화예술부문 창작가들과 배우들의 준비정도가 어린 조건에서 수령님을 형상한 영화창작문제를 빨리 풀자면 위대한 수령님수령님의 혁명적가정을 형상한 영화창작사업을 전문적으로 맡아하는 창작기관을 따로 내오는것과 같은 조직적대책이 필요하다고 헤아려보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치밀한 조직사업에 기초하여 주체 56(1967)년 2월 백두산창작단의 창립을 선포하시였다.

주체 56(1967)년 2월 26일 영화예술부문 책임일군, 창작가들을 만나주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백두산창작단은 위대한 수령님의 형상을 창조하는 영광스러운 영화창작기지이며 주체적문학예술건설에서 전위적역할을 하는 본보기창작기관이라고 하시면서 위대한 수령님의 영광찬란한 혁명력사를 형상하며 수령님께서 친히 창작하신 불후의 고전적명작들을 영화로 옮기는것을 백두산창작단의 기본임무로 제시해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우리 나라가 해방이 되여 진정한 자기의 문학예술을 가진지도 20여년이 되였지만 아직 수령님의 형상을 영화예술분야에서 전면적으로 깊이있게 창조하지 못하고있는데 대해 가슴아파하시면서 영화예술부문에서 이 중대한 력사적과제를 수행하지 못하고서는 그 누구도 우리 당의 영화예술인이라고 말할수 없으며 시대를 선도하는 작가, 예술인으로서의 본분을 다한다고 말할수 없다고, 위대한 수령님의 현명한 령도에 의하여 마련된 우리 나라의 장엄한 현실과 우리 인민의 행복한 생활을 작품에 담으면서도 수령님을 형상하지 못하고있다는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절절하게 교시하시였다.

그러시면서 위대한 수령님께서 친히 창작하신 불후의 고전적명작들을 영화로 옮기며 수령님의 영광찬란한 혁명력사를 예술영화로 형상한다는것은 결코 헐한 일이 아니지만 수령님의 혁명위업을 끝까지 완성하려는 불타는 결의와 충성의 한마음을 안고 이악하게 달라붙는다면 능히 손색없이 해낼수 있을것이라고 크나큰 믿음을 안겨주시였다.

이렇듯 영예롭고도 책임적인 임무를 감당할 력사적사명을 지니고 창립된 백두산창작단은 그후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영광찬란한 혁명력사와 혁명적가정을 취급한 혁명영화들을 창조하는데서 력사적시원을 열어놓고 위대성교양과 혁명전통교양, 혁명적영화예술의 전성기를 펼쳐놓는데 크게 이바지하였다.

이처럼 수령형상영화창조를 위한 토대를 충분히 갖추도록 하신데 기초하여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불멸의 혁명력사를 년대별로, 분야별로 예술영화들에 형상하면서 혁명소설들의 총서인 《불멸의 력사》와 마찬가지로 수령님의 위인상을 폭넓고 깊이있게 보여줄수 있도록 현명하게 이끌어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의 발기와 지도에 의하여 첫 혁명영화 《누리에 붙는 불》이 주체 66(1977)년에 훌륭히 창작완성되였다.

혁명영화 《누리에 붙는 불》은 우리 나라 예술영화에서 처음으로 위대한 수령님의 혁명력사와 혁명가정을 직접 취급한 작품으로서 참으로 중요한 의의를 가지였다.

혁명영화 《누리에 붙는 불》의 창작성과와 경험에 토대하여 수십년간에 걸쳐 수많은 혁명영화들이 기념비적대작으로 높은 수준에서 창작완성되였으며 조선영화는 어버이수령님의 영광찬란한 혁명활동력사를 형상하는데서 새로운 경지에 확고히 올라서게 되였던것이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1970년대말로부터 1980년대초에 이르는 기간에만도 《첫 무장대오에서 있은 이야기》, 《사령부를 멀리 떠나서》, 《백두산》 등 여러편의 혁명영화들을 련이어 내놓도록 하시였으며 주체 69(1980)년 2월 16일에는 새로 발굴된 불멸의 혁명송가 《조선의 별》노래를 종자로 하여 영화를 하나 잘 만들면 당제6차대회를 더 의의있게 빛내일수 있을것이며 또 수령님께서도 기뻐하실것이라고 하시면서 혁명영화 《조선의 별》의 창작을 발기하시였다.

뿐만아니라 영화의 1, 2, 3부가 완성된 이후에는 《태양은 빛난다》라는 제목으로 내용이 이어지던 혁명영화들을 《조선의 별》 련속부로 하고 매 부마다 제목을 달도록 하시였으며 10부까지의 창작전과정을 세심히 보살펴주시였다.

그리하여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혁명력사에서 1928년 길회선철도부설반대투쟁으로부터 1933년 봄 소왕청유격구방위전투까지를 시대적배경으로 한 10부작혁명영화 《조선의 별》이 6년간에 걸쳐 첫 다부작혁명영화로 훌륭히 창작완성되였다.

뒤이어 1934년 봄부터 1937년 여름까지 위대한 수령님의 혁명활동을 형상한 혁명영화 《민족의 태양》이 5부작으로, 고난의 행군 전과정을 서사시적화폭으로 보여주는 혁명영화 《밀림이 설레인다》가 12부작으로 완성되였으며 《ㅌ.ㄷ》결성으로 혁명의 닻을 올리신 위대한 수령님의 초기혁명활동시기를 담은 혁명영화 《화성의숙에서의 한해여름》도 창작됨으로써 이 영화들이 《조선의 별》과 함께 항일혁명투쟁시기를 반영함에 있어서 년대기적순차성을 보장하게 되였다.

위대한 장군님의 현명한 령도밑에 혁명과 건설의 모든 분야를 포괄하는 우리 수령님의 불멸의 업적과 숭고한 위인상을 담은 영화들도 수많이 창작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이룩하신 건당, 건국, 건군의 불멸의 업적이 반영된 예술영화들인 《잊을수 없는 나날에》, 《내 나라》, 《성새》, 그리고 해방후 민족간부문제를 빛나게 해결하신 어버이수령님의 고매한 풍모와 탁월한 령도를 보여주는 《빛나는 아침》 등이 그 대표작으로 된다.

이밖에도 예술영화 《친위전사》, 《만병초》, 《미래를 꽃피운 사랑》, 《위대한 품》, 《장산리녀성들》, 《혁명가》, 《혁명투사 공영》을 비롯하여 많은 작품들이 위대한 수령님의 형상을 영화의 중요대목들에 정중히 모시고 걸출한 사상리론가이시고 령도의 거장이시며 인민의 자애로운 어버이이신 김일성동지의 위인적풍모를 진실하고 감명깊게 펼쳐보였다.

이러한 시대적명작들의 창조과정을 통하여 우리의 예술영화는 주체적민족영화예술로서의 면모를 완전히 갖추고 온 사회의 주체사상화에 더욱 힘있게 이바지하게 되였으며 우리 당원들과 근로자들, 군인들과 청년들의 심장마다에 백두에서 개척되고 승리적으로 전진하여온 주체혁명위업을 충직하게 받들어갈 불변의 신념도 더욱 튼튼히 심어줄수 있었다.

수령형상영화들의 창작과정에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탁월한 사상과 령도로 모든 작품들이 사상예술적면에서 흠잡을데 없는 최고봉에 올라서도록 이끄심으로써 수령형상작품들이 명실공히 조선영화의 본보기로 되게 하여주시였다.

로동계급의 수령의 형상을 아무렇게나 취급하여서는 안된다고, 수령의 형상은 어디까지나 최대의 정중성을 가지고 전면적으로 깊이있게 하여야 한다고 하시며 우리는 수령님의 형상을 우리 식대로 충실성을 다하여 가장 존엄있게, 가장 깊이있게, 가장 성실하게 창조하여야 한다고 간곡히 강조하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수령형상영화들에서 실재한 사실에 기초하여 사상성과 예술성을 최고의 수준에서 보장하도록 현명하게 이끌어주시였다.

력사적사실과 예술적전형화의 문제를 옳게 풀데 대한 위대한 장군님의 독창적인 문예방침이 훌륭히 관철됨으로써 위대한 수령님의 혁명력사를 반영한 력사문헌적인 수령형상영화창작에서는 혁명투쟁에서 차지하는 수령의 위치와 역할에 대한 중요한 사회정치적문제를 기정사실화하지 않고 시대와 생활, 인간들의 구체적인 형상속에서 심오하게 밝혀냈으며 혁명영화창작에서 흔히 범할수 있는 격식화, 도식화의 경향을 철저히 극복하고 참다운 혁명가의 최고전형이신 수령의 혁명정신과 함께 아름답고 고상한 인간성과 인간적풍모를 생동하게 보여주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혁명영화들에서 수령님의 위대성을 격식화, 기정사실화할것이 아니라 력사적사실에 기초하여 생활적으로 진실하게 형상하도록 이끌어주신 몇가지 사실자료들을 통해서도 우리는 이에 대해 잘 알수 있다.

수령의 형상을 존엄있게 창조하는것은 결코 형상을 격식화하고 기정사실화하는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예술적형상은 어디까지나 생활의 진실한 반영으로 되여야 하며 수령의 생활자체는 평범하고 소박하게 그리면서도 위대한 인간세계를 보여주어야 하는것이다.

하기에 위대한 장군님께서 혁명영화창조의 첫 시기부터 격식화문제에 대하여 일관하게 강조하시면서 창작가들이 오늘의 시점에서 형상문제를 보고 다루던 나머지 수령님의 위대성을 기정사실화하는데로 나가던 편향을 제때에 바로 잡아주군 하시였다.

주체 69(1980)년 10월 20일 혁명영화 《조선의 별》의 작업필림을 몸소 보아주신 위대한 장군님께서 력점을 찍어 강조하신 문제의 하나가 바로 수령이 하늘에서 내려온것처럼 하지 말고 참다운 동지들에 의하여 높이 추대되는것으로 그려야 한다는것이였다.

이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차광수, 김혁, 최창걸, 박도범 등 청년공산주의자들이 다 나이는 수령님보다 많았지만 진심으로 수령님께서 지니고계시는 예지와 통찰력, 탁월한 령도력, 고매한 덕성에 공감하고 수령님을 우리 혁명의 령도자로 모시는 과정을 생활적으로 실감이 나게 보여주어야 한다고 교시하시였다.

그리하여 혁명영화 《조선의 별》에는 《조선의 별》노래보급을 둘러싸고 청년혁명가들이 심각한 론의를 벌리는 장면, 카륜회의를 앞두고 수령님의 존함을 조선의 태양이 되여달라는 뜻에서 고쳐올리는 장면 등이 새로 보충되게 되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혁명영화들에서 수령님과 전우들사이의 동지적관계를 진실하게 그리여 수령님의 숭고한 위인적풍모가 더 잘 부각되도록 하는데도 깊은 관심을 돌리시였다.

혁명영화 《조선의 별》창작가들은 처음에 위대한 수령님께서 일제놈들의 야수적인 폭압속에서 파괴된 조직들과 혁명동지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장춘으로 가시겠다고 할 때 청년혁명가들모두가 수령님의 신변안전을 념려하여 가시면 안된다고 완강하게 막아나서며 특히 차광수가 과격한 성미로 더 강경하게 막아나서는것으로 형상하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수령님께서 장춘으로 가시겠다고 할 때 차광수가 과격한 성미로 그곳은 위험하니 가셔서는 안된다고 막아나서는것으로만 형상하니 동지적관계에서도 깊이가 없고 이미 《조선의 별》 1~3부에서 한 형상과 반복되는 감도 있다고 하시면서 수령님과 차광수의 관계를 그렇게 형상하여서는 청년혁명가들에 대한 인식을 바로 줄수 없다는데 대하여 강조하시였다.

차광수는 수령님과의 관계에서 박도범이나 문일광하고도 다르다고, 박도범이나 문일광은 신변안전문제때문에 수령님께서 위험한 곳으로 가셔서는 안된다고 막아나설수 있지만 차광수는 그렇게만 할수 없다고 하시면서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수령님께서도 혁명의 요구에 따라가셔야 할 곳에는 가셔야 하며 그래야 수령님의 혁명전략이 나오고 위대성이 나오는것이라고 교시하시였다.

그러시면서 수령님께서 차광수를 비롯한 혁명동지들이 막아나섰지만 무장투쟁을 위한 준비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시키기 위하여 몸소 위험한 장춘으로 가시는것으로 그려야 하며 차광수는 수령님께서 장춘으로 가시는 문제와 관련하여 자기가 가서는 문제를 해결할수 없고 또 다른 사람이 가서도 일을 할수 없는 어렵고 중요한 문제이기때문에 수령님께서 그곳으로 가시는것을 동의하지만 수령님의 신변안전이 걱정되여 모대기는것으로, 수령님과 이 문제를 놓고 의논을 거듭하는것으로 형상하여야 한다고 가르쳐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수령님과 차광수와의 관계를 그렇게 형상하여야 수령님의 탁월한 령도풍모와 위대성을 옳게 보여줄수 있으며 수령님과 차광수를 비롯한 청년공산주의자들의 동지적관계도 더 깊이있게 보여줄수 있다고 교시하시였다.

주체86(1997)년 6월 혁명영화 《화성의숙에서의 한해 여름》의 창조과정을 여러차례 지도해주시면서도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이 영화에서 위대한 수령님의 주위인물들이 그저 수령님을 떠받드는 식으로만 형상하다나니 수령님의 위대성과 고매한 품성이 진실하고 감동깊게 안겨오지 않는다는데 대해 지적하시면서 격식화된 대사들을 력사적사실에 맞게 고칠데 대하여 가르쳐주시였다.

그리고 위대한 수령님의 혁명활동을 실천을 통하여 깊이 체험해보지 못한 은단이가 《조선을 이끌고나갈 사람은 성주이니 성주를 잘 받들어달라》고 부탁을 남기는 장면, 《ㅌ.ㄷ》가 결성된 날 새벽 휘발하강가에서 김리갑이 김성주동지를 조선의 령수로 칭송하는 대목 등도 인물들의 구체적인 감정과 준비정도, 생활론리와 시대적배경을 무시한 인위적인 형상으로 보고 수정하도록 하시였다.

이처럼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의 현명한 령도에 의하여 수령형상영화들에서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숭고한 풍모를 력사적사실 그대로 진실하게 보여줌으로써 영화의 철학적깊이도 보장하고 위인으로서의 풍모와 자질을 가장 숭고한 높이에서 체현하신 수령님의 위인상도 생동한 화폭으로 안겨오게 할수 있었다.

이상에서 본바와 같이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영화예술부문에서 수령형상창조사업을 몸소 발기하시고 수령형상영화들이 최상의 사상예술적수준에서 창작완성되도록 품들여 이끌어주심으로써 우리의 영화예술발전사에 영원불멸할 향도의 자욱을 남기시였다.

오늘도 우리 영화예술부문앞에는 인민의 태양, 인류의 태양으로 영생하시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의 숭고한 풍모를 형상한 예술영화들, 사상도, 령도도, 덕망도 위대한 수령님들 그대로이신 경애하는 김정은동지의 위인적풍모에 대하여 보여주는 예술영화들을 더 많이 더 훌륭히 창작하여야 할 영예로운 과업이 나서고있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주체 103(2014)년 5월 16일 제9차 전국예술인대회참가자들에게 보내주신 력사적인 서한 《시대와 혁명발전의 요구에 맞게 주체적문학예술의 새로운 전성기를 열어나가자》에서 위대한 수령님장군님의 불멸의 업적과 위인적풍모를 형상한 혁명영화들을 창작하는것은 시대와 혁명의 요구이며 인민들의 소망이라고 하시면서 영화부문 일군들과 창작가, 예술인들은 수령님장군님의 불멸의 혁명력사와 혁명업적, 위대한 인간적풍모를 형상한 혁명영화들을 후세에 길이 남길 대걸작으로 폭넓고 깊이있게 창작하여야 한다고 가르쳐주시였다.

조선의 영화예술은 경애하는 김정은동지의 높은 뜻을 받들어 수령형상창조의 빛나는 전통을 계승하여 앞으로도 수령님장군님의 사상과 령도, 풍모의 위대성을 전면적으로 품위있게, 체취가 생생히 느껴질수 있도록 진실하고 절절하게 형상함으로써 우리 인민의 가슴속에 수령님장군님에 대한 흠모와 그리움의 정을 채워주고 수령님장군님은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철석의 신념을 새겨주게 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