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의 식민지기반에서 갓 해방된 우리 인민과 창건된지 2년밖에 안되는 우리 공화국에 있어서 조국해방전쟁은 실로 힘겨운 전쟁이였으며 조국의 운명을 판가리하는 사생결단의 싸움이였습니다. 력량상 대비가 안되는 이 전쟁에서 우리 군대와 인민은 무비의 영웅성과 희생성을 발휘하여 세계 <최강>을 자랑하는 미제침략자들을 타승하고 조국의 자유와 독립을 영예롭게 수호하였으며 세계전쟁사에 일찌기 있어본적이 없는 기적을 창조하였습니다.》
1950년대로부터 세월은 멀리도 흘렀다. 그러나 전승의 그 업적은 별처럼 력사에 뚜렷하게 새겨져있고 변색되지 않는다.
력사는 누가 지우려고 한다고 해서 없어지는것이 아니다.
그런데 오늘 미국에는 지울수 없는 력사에 먹칠을 해대려는 세력이 있다.
2017년 5월 미국의 미해병대박물관에서 《장진호전투기념비》제막식이라는것이 벌어졌다. 지난 조선전쟁시기의 저들의 패전을 《승전》으로 둔갑시켜보려는 미국의 이러한 뻔뻔스러운 놀음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2년 미국회에서는 지난 조선전쟁 (1950년에 있은 미국을 위수로 한 련합국들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의 전쟁,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는 이 전쟁을 조국해방전쟁이라고 함) 에서 미군 3만 6 000여명이 죽고 10만여명이 부상당했다는것, 조선전쟁을 더 이상 《잊혀진 전쟁》으로 되게 하지 말고 기억하며 전쟁에 참가한 병사들을 찬양하여야 한다는것을 골자로 하는 그 무슨 《결의안》이라는것을 채택하였다. 그들은 6.25전쟁은 원래 저들이 《이긴 전쟁》이였지만 제2차 세계대전과 윁남전쟁사이에 끼여있어 《잊혀진 전쟁》으로 불리워왔다는것, 이제는 이 전쟁을 《잊혀진 승리》로 다시 평가할 때가 되였다는 황당무계한 말까지 하고있다.
력사에는 잊어야 할것, 잊지 말아야 할것이 따로 없다.
잊고싶어도 생생하게 남아있는것이 력사이다.
지나간 력사는 때로 사람들에게 긍지와 영광과 함께 풍부한 경험을 주며 때로는 가슴아픈 통탄과 후회와 함께 심각한 교훈을 주어 사람들을 깨우친다.
미국의 호전계층이 떠드는것처럼 1950년대의 조선전쟁이 정말 《잊혀진 전쟁》, 《잊혀진 승리》였던가.
어째서 그들은 《잊혀진 전쟁》이라고 말하는가. 혹시 《잊어버리고싶은 전쟁》은 아니였는가. 물론 잊고싶다고 하여 저절로 지워지는것이 력사가 아니다. 그러나 미국의 호전계층들은 아마도 조선전쟁이 너무도 뼈아픈 정책적실수이고 패배, 대패배였기에 굳이 잊고싶었을것이다.
전쟁은 일정한 사회적집단이 자기의 근본요구를 실현하기 위하여 무장을 가지고 진행하는 조직적인 투쟁이다. 전쟁에서 승리하였다고 할 때 그것은 전쟁을 통하여 실현하려는 목적을 달성하였다는것을 의미한다.
그러면 미국은 조선전쟁을 통하여 자기의 목적을 달성하였는가.
미국이 조선전쟁을 일으킨 목적은 자기의 정치, 경제적위기를 해소하고 세계제패야망을 실현하려는것이였다.
1948년말부터 미국에서는 과잉생산공황이 점차 확대되여 파국적인 경제위기에 빠졌다. 이와 함께 쏘련의 원자탄보유(1949년 9월)와 중화인민공화국의 성립(1949년 10월) 등은 세계패권을 추구하는 미국으로 하여금 매우 부정적인 사태에 직면하게 하였다.
당시 미국의 애치슨국무장관은 한 회의에서 《우리는 무엇이 일어나며 (세계가) 어디로 향하고있는가를 분석할 필요가 있다》, 《만일 우리가 무엇을 요구하고있는가를 잘 알고 그것을 어떻게 달성하겠는가를 결정하며 그에 필요한 행동을 취하지 않는다면 서방세계는 1952년까지 붕괴되고말것이다》고 말하였다.
이러한 정세속에서 미국이 택한것은 미국독점자본가들을 구원하고 자기의 세계제패야망을 실현하기 위해 바로 전조선에 대한 지배권을 확립하며 그것을 동북아시아지역으로 확대하는것이였다. 조선전쟁은 미국이 조선과 중국 만주, 로씨야의 씨비리지역을 순서대로 침공하여 가로타고 앉으려고 작성한 극동침략계획인 《A, B, C계획》의 일환으로서 전조선반도에서 저들의 지배를 확립하기 위해 벌린 침략전쟁이였다.
자기의 정치적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미국자신에 의해 고안되고 도발한 조선전쟁에서 조선반도와 중국 만주, 로씨야의 씨비리지역까지는 고사하고 전쟁을 도발하였던 지역까지도 내놓은 미국이 승리도 아닌 정전협정에 조인하였다는것은 결코 그들이 승리자가 아니라는것을 말해준다.
더우기 그처럼 《강대성》을 자랑하던 미국이 당한 참상은 결코 조선전쟁에서 미국이 《승리자》가 아니라는것을 보여준다.
1950년대초에 진행된 조선전쟁은 력사에 류례없는 전쟁이였다.
력사에 류례없다고 하는것은 조선전쟁이 제2차 세계대전의 《전승국》으로서 전후 서방세계의 우두머리로 등장한 미국과 15개의 추종국가군대와 괴뢰한국, 일본군국주의자들을 포함한 200여만의 대병력(사실 자본주의세계의 모든 군사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을 대상으로 하여 해방된지 5년, 자기의 정규무력을 건설한지 2년밖에 되지 않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벌린 결전이였기때문이다.
지난 3년간의 전쟁에서 미국은 전쟁도발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태평양전쟁때 소모한 군수물자의 11배에 달하는 군수물자, 자기 나라 륙군의 3분의 1과 공군의 5분의 1, 태평양함대의 대부분을 동원하고 1 650억US$의 군사비를 탕진하였다.
그러나 미국은 조선전쟁에서 미군 40만 5 498명을 포함한 156만 7 128명의 사상자와 포로를 내였으며 천문학적액수에 달하는 전투기술기재들을 잃었다.
나라가 건국된 이래 수많은 전쟁들에서 미국은 항상 승자의 위치에서 강도적인 강화조약을 체결한적은 있었어도 조선전쟁에서와 같이 막대한 손실을 내고 패배의 눈물을 흘리며 정전협정문에 도장을 누른적은 없었다.
제2차 세계대전과 태평양전쟁에서 미국의 5성장군으로 되였고 일본의 항복의식에 미국측 전권대표로서 의기양양하게 일본의 항복서에 수표하였던 맥아더가 그때로부터 8년이 지난 1953년 7월의 조선정전협정에 대하여 무엇이라고 하였던지 세계는 알고있다. 그는 이 조선전쟁계획의 작성자이며 첫 《유엔군》사령관으로 있었다.
그는 조선정전협정에 대하여 《개국이래 미국의 위신이 전세계에 지금처럼 그렇게 땅에 떨어진적은 없었다》고 개탄하였다.
이것은 직접 조선전쟁에 참가하였고 총괄하였던 미국장성의 고백이다.
도서 《판문점담판의 나날》에는 미국의 패전장군들의 고백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전하고있다.
《1953년 7월 27일 력사의 새날이 밝아왔다.
…
오전 10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존엄있는 국기인 람홍색기발과 침략군의 상징인 <유엔군>의 푸른 기발을 가운데 놓고 드디여 정전협정에 관한 력사적인 조인이 시작되였다.
…
정전담판 미국측 첫 수석대표였던 미해군중장 죠이는 <조선전쟁은 조선에서 미국의 승리대신에 나타난 값없는 물건이며 전례없는 굴욕이며 적의 승리였다>고 실토하였다.
정전협정에 항복의 도장을 찍었던 <유엔군>사령관 클라크는 정전협정조인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절망적으로 말하였다.
<나는 패배감을 느꼈다.
솔직히 말해서 휴전협정조인을 끝낸 후 형언할수 없을만큼 좌절감에 빠졌던것이다. 그리고는 끝내 소리없는 눈물마저 흘렸다.
비단 나만이 이런 심정이였을가.
나의 전임자였던 더글라스 맥아더원수와 마튜 비 릿지웨이대장도 나와 똑같은 심정이였을것이다. 아니 그들은 더욱더 통탄하는 심정이였을지도 모른다.>
<승리없는 전쟁, 그것은 미국력사에는 없는 술어이다.
그러나 한국전에서 미국은 력사상 처음으로 승리없는 휴전에 조인을 했다. 력사는 이것을 어떻게 기록할것인가. 내 개인적인 심정을 말한다면 그것은 아쉽고 통탄할 일이였다.>
…
<유엔군>사령관이였던 릿지웨이는 조선전쟁과 조선정전담판에서 당한 쓰라린 과오와 교훈들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하면서 미국민들가운데는 <조선전쟁은 철저한 양보정책이며 국가적자존심을 잃게 한 수치스러운 군사적, 정치적, 심리적패배였다고 진심으로 믿고있는 사람들이 많다>고 실토하였다.
미국대통령 아이젠하워는 조선정전이 조인된지 59분만에 방송마이크앞에 나타나 <대가는 컸다. 이것은 비극적으로 쓰라린것이다>고 비명을 질렀다.》
미국패전장군들의 솔직한 고백은 미국이 조선전쟁에서 철저히 패배하였다는것을 잘 말해주고있다. 그들은 《패배감》, 《전례없는 굴욕》, 《비극적으로 쓰라린것》, 《국가적자존심을 잃게 한 수치스러운 군사적, 정치적, 심리적패배》라는 말로 조선전쟁의 실제적인 결말에 대하여 말하고있다.
미국이 조선전쟁에서 패배하였다는것은 전투마당들에서 《활약》하였던 미군장성들의 말로가 또한 잘 말해주고있다.
미국은 1950년대의 조선전쟁에 제2차 세계대전을 비롯하여 여러 전장들에서 《전공》을 떨친 미군장성들을 참가시키고 전쟁을 승리적으로 결속할것처럼 호언장담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시기 유럽에서 사단장으로 싸운바 있는 띤은 필리핀에 상륙하여 일본군을 격파하고 마닐라에 입성한것으로 하여 유명해진자이다.
그는 조선전쟁이 일어나자 조선인민군의 진격을 저지시키고 자기 사단주력의 전투보장을 위해 스미스특공대를 오산계선에 진출시켰다. 미군복을 입은 저들이 나타나기만 하면 인민군대가 달아날것이라고 보았던 스미스특공대는 도리여 인민군대와 조우하여 괴멸되고말았다. 띤은 이에 대해 대아메리카합중국의 가장 큰 수치라고 하면서 대전에서 시범을 보여 신뢰를 얻겠다고 하였다. 하지만 미24사단은 인민군련합부대들에 의해 대전에서 완전히 포위소멸되였다. 띤은 졸병의 옷을 갈아입은채 36일동안 숨어다니다가 인민군대에 의해 포로되였다. 제2차 세계대전시기에 군인으로서의 가장 불명예스러운 일은 포로가 되는것이라고 하던 띤이 바로 포로의 비참한 운명에 처하였던것이다.
미해병대 1사단장 스미스는 두차례의 세계대전에 참가하였다고 하는 《로장》이다.
미해병대 1사단은 미국의 《정예》부대들중에서도 손꼽히는 부대로 알려져있었다. 18세기 중엽에 조직된 이 사단은 메히꼬를 비롯한 다른 나라들에 대한 미제의 침략의 돌격대로, 《해병대의 꽃》으로 《명성》을 떨쳤다. 하지만 이 사단은 조선전쟁에 참전하여 조선북부의 장진호반까지 《진격》하였다가 조선인민군의 포위공격에 의하여 무리죽음을 당하였다. 언땅을 폭파시켜 파헤치고 중상자와 시체들을 한꺼번에 매장해버린 사단장 스미스는 얼마 안되는 패잔병들을 실은 배우에서 《그렇듯 많은 부하의 시체를 버리고 지휘관이 떠나가는 일이란 175년간의 해병대력사에 없는 일》이라고 탄식하였다. 이로 하여 스미스에게는 《무덤장군》이라는 별명이 차례지게 되였다.
미극동군사령관 겸 《유엔군》사령관자리에 맥아더, 릿지웨이가 순서대로 올라앉았다가 철직된 후 그 자리를 이어받은것은 클라크였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때 이딸리아주둔 파쑈도이췰란드군과 무쏠리니침략군의 항복을 받아냈다고 으시대면서 조선에서도 다시한번 그러한 《공적》을 세우리라고 꿈을 꾸었다. 그의 꿈은 깨여지고 결국 조선정전협정에 수표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클라크를 비행장에서 맞이하던 때에 대하여 그의 어머니는 이렇게 말하였다. 《그 당당하던 기개도 위풍도 간곳없이 사라지고 그의 얼굴에서는 두줄기의 눈물만이 흘러내렸다.》
미국의 한다하는 《장성》들이 참전하였으나 조선전쟁에서 《승리》하기는커녕 패전을 감수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그에 대하여 미국의 어느 한 비밀보고서에는 《지난 조선전쟁은 미국이 패하고 미국의 장성들이 제일 많이 죽고 철직된 전쟁으로 특징지어진다.
과거는 사람들에게 미래의 교훈을 준다.
미국이 잊고싶어하였던 조선전쟁은 어떤 교훈을 주는가.
지난 1950년대의 조선전쟁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미국을 타승하리라고 생각한 사람이 지구상에 몇이나 있었겠는가.
그러나 조선은 미국과 싸워 진짜로 승리하였다.
청소한 조선이 싸워 승리할수 있었던 근본비결은 바로 조선인민이 천재적군사전략가이신
조선전쟁에 참가하였던 마카오주둔 뽀르뚜갈군 참모장이였던 뽀르뚜갈 전 대통령 고메스는 이에 대하여 《당시 미국이 만든 작전계획은 미국편에 선 서방나라들의 참모장들, 군사전문가들인 수십명의 장군들이 여러차례 모여서 토의한 끝에 만든것이다. 그런데
오늘 우리 인민은
그때에 가서는 미국이라는 나라가 결코 존재하겠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