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연구

인민을 선생으로 여기신분

 2019.9.21.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내놓으신 사상리론과 정책은 다 인민대중의 의사와 요구를 집대성한것입니다. 수령님께서는 인민대중을 선생이라고 가르치시였습니다.》 (김정일선집》 증보판 제14권 284~285페지)

직업적혁명가로서의 성스러운 투쟁의 길에 나서시면서 위대한 수령님께서 목표로 내세우신것은 인민을 선생으로 여기고 그들이 체현하고있는 지식과 경험을 배워 나라와 민족의 운명을 구원하고 혁명을 이끌어나가기 위한 정확한 로선과 방도를 찾아내여 혁명실천에 구현하는것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진정으로 인민을 자신의 둘도없는 선생으로 여기고 한생 인민을 하늘처럼 숭배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 있어서 인민의 지향과 념원, 인민의 재능과 경험은 조선혁명을 전진시키고 세기적인 창조와 변혁을 이룩해나갈수 있는 탐구의 무한한 원천이였다.

주체72(1983)년 어느날 라틴아메리카의 어느 나라 한 대표단을 만나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초기혁명활동시기를 회고하시면서 자신께서는 모스크바에 가서 공부하는것보다 인민들속에 들어가 투쟁하면서 배우는것이 더 낫다고 생각하고 모스크바에 가지 않았다고, 자신의 선생은 모스크바나 상해에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우리 인민이였다고 교시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일군들을 만나시여서도 언제나 인민대중을 선생으로 여기고 그들에게서 허심히 배워야 하며 모든 사업을 인민대중에게 의거하여 진행하여야 한다고 가르치시였고 당대회의 높은 연단에서도 우리의 가장 훌륭한 선생은 인민대중이며 현실이라고 선언하시였다. 외국의 벗들을 만나시여서도 선생은 인민대중이라고, 우리는 언제나 그들에게서 배운다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탄생 70돐을 맞으시는 뜻깊은 자리에서도 자신의 성스러운 한생을 감회깊이 돌이켜보시며 인민들은 언제나 자신의 극진한 보호자였고 고마운 은인이였을뿐아니라 《훌륭한 선생》이였다고 진정을 담아 말씀하신 우리 수령님께서는 위대한 생의 마지막해의 4월 우리 나라를 방문한 미국CNN TV방송회사 기자단이 제기한 질문에 대한 대답에서도 《나의 가장 지혜롭고 박식한 선생은 인민》이라고 교시하시였다.

이렇듯 인민이 선생이라는것은 위대한 수령님의 한생의 드팀없는 신조였고 자신의 사업과 실천에 철저히 구현해오신 철칙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무엇을 하나 사색하고 탐구하시여도 인민의 자유와 행복, 혁명과 건설의 승리를 위하여 하시였으며 항상 인민의 소박하고 꾸밈없는 말속에서 탐구의 종자와 실머리를 찾아쥐군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생전에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인민은 이 세상에서 가장 지혜롭고 총명한 선생이라고 말씀하군 하시였다.

남달리 지성을 사랑하신 우리 수령님께 있어서 인민은 착취와 억압에 시달리기만 하는 무지한 존재가 아니였다. 그이께 있어서 인민은 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선생이였다.

주체80(1991)년 조국을 찾아와 어버이수령님과 회포를 나누던 재미동포 손원태선생은 수령님께서 나라의 모든 문제 지어 복잡한 경제문제까지 환히 꿰드시고 구체적으로 지도하시는데 대하여 놀라움을 표시하였다.

그러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선생이 내가 경제학을 전공하지 않았지만 경제적타산이 밝다고 하는데 나는 늘 우리 인민들에게서 배운다고, 자신께서는 언제나 인민들속에 들어가 그들을 배워주기도 하고 그들로부터 배우기도 한다고 자신의 심정을 꾸밈없이 그대로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혁명가의 참다운 탐구는 무엇을 위한것으로 되여야 하는가, 한생을 바쳐 달성해야 할 탐구의 내용은 어떤것인가, 탐구의 높은 목표에로 치달아오르자면 어디서부터 무엇을 어떻게 파고들어야 하는가 하는것을 모두 평범한 인민대중과 인민의 숨결이 높뛰는 혁명실천속에서 찾아야 한다고 확신하고계시였다.

바로 이러한 숭고한 관점을 간직하고계셨기에 우리 수령님께서는 들끓는 혁명실천속으로 들어가시여 인민을 스승으로 삼고 한생을 배워오시였던것이다.

인민을 선생으로 여기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일군들과 로동자와 농민들, 지식인들은 물론 로인들과 어린이들에 이르기까지 각계각층 인민들에게서 실로 많고 많은것을 배우고 체험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언제인가 외국기자들이 제기한 질문에 대답을 주시면서도 말씀하시였지만 인민들속에는 철학도 있고 경제학도 있고 문학도 있었다. 그래서 수령님께서는 한평생 인민을 가장 지혜롭고 박식한 선생으로 내세우시였고 인민들속에 들어가 인민들에게서 배우는것을 체질화된 습성으로 간직하시였다.

무엇이나 다 알고 무엇이든 다 해내는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존재인 인민을 둘도 없는 선생으로 받드시고 한생 그들에게서 배우시였기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 세상 그 무엇이든 다 아는 지성의 위인으로 되실수 있었다.

《인민을 선생으로 여기고 한평생 그들에게서 배우시였기에 김일성주석님께서 주체사상과 같은 사람중심의 위대한 사상을 창시하시고 백과전서적인 사상과 리론을 내놓으실수 있은것임을 알게 된 나의 심정을 지금 무엇이라고 다 표현할길 없다. 인민을 선생으로 내세우신 그이이시야말로 위인중의 위인이시다.》

이것은 언제인가 주체사상국제연구소 첫 리사장이였던 야스이 가오루가 격정에 넘쳐 한 말이다.

일본 호세이대학 교수, 법학박사였던 야스이 가오루로 말하면 1950년대에 원수폭금지를 위한 적극적인 사회활동을 벌림으로써 국제레닌평화상과 도이췰란드평화상을 수여받았으며 1965년에는 세계평화연구소를 설립하고 소장으로 사업하였던 사람이다. 그는 생전에 안다녀본 나라가 없다고 할 정도로 수많은 나라들을 방문하고 이름있는 정치가들도 수없이 만나본 이름있는 국제문제전문가였다.

그가 주체사상의 열렬한 신봉자로 인생전환을 하고 위대한 수령님을 끝없이 흠모하게 된것은 불멸의 주체사상에 접하고 특히 1970년대초에 여러차례 우리 나라를 방문하여 수령님을 만나뵈온 후부터였다. 그때 그를 무한히 감동시킨것은 우리 수령님께서 그 무엇이든 모르시는것이 없고 막히는데가 없으신 대단히 박식한분이시라는것이였다. 정치이면 정치, 철학이면 철학, 경제면 경제, 문학이면 문학, 참으로 어느 분야이든 모르시는것이 없는분이시였다. 국제문제에서도 전문가인 자기도 탄복할 정도로 대단히 심도있고 풍부한 식견을 가지고계시였으며 모든 문제에 대하여 일가견이 명백하시였다.

그는 전문학자도 아닌 한나라의 정치가이신 위대한 수령님께서 어떻게 그렇듯 많은것을 아실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을 풀수 없었다.

그가 자기의 글에서 《맑스-레닌주의에 접했던 때로부터 50년이 되여오며 맑스-레닌주의창시자들이 남겨준 력사적유산으로부터 많은 교훈을 얻었으나 연구과정에는 언제나 안타까움을 느꼈다.》고 하면서 《김일성주의야말로 바로 내가 연구하고있는 문제점들에 대하여 백과전서적인 면과 깊이와 풍부성을 가지고 명백한 해답을 주었다.》고 쓴바도 있지만 그는 수령님의 풍부한 식견과 위대한 사상과 리론들에 크게 감복되였던것이다.

후날 우리 나라 사회과학자대표단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 우리 수령님께서 혁명의 길에 나서신 그때로부터 인민을 선생으로 여기고 한생 그들에게서 배우시였기에 그렇듯 많은것을 아시게 된것이라는것을 알게 되자 그는 무릎을 쳤다.

인민을 선생으로 여기고 그들에게서 배우신 위인, 여기에 지난날의 정치가, 위인들과 근본적으로 다른 위대한 수령님의 특출한 위인상이 있었던것이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80고령에 이르신 생의 말년까지도 공장과 농촌을 끊임없이 찾으시면서 인민의 목소리를 듣고 그들과 어울리시면서 끝없이 새로운것을 탐구하고 정립하시였다.

이 과정에 그이께서는 인민의 심정을 누구보다 잘 헤아리는 박사, 정치와 군사, 경제와 문화를 완전무결하게 터득한 박식가, 조선혁명과 인류해방위업의 전략과 전술을 가장 완벽하게 밝히시는 뛰여난 전략전술가로서의 자질과 품격을 전면적으로, 완벽하게 갖추게 되시였다.

정녕 우리 수령님은 인민을 하늘처럼 여기시고 받들어오신 위대한 성인이시기에 우리 인민과 인류의 심장속에 영원한 태양으로 끝없이 빛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