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연구

전국에 일반화된 강냉이가공공장

 2022.6.10.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나라의 경제를 추켜세우고 인민생활을 높이는것은 위대한 수령님들의 유훈중의 유훈이며 오늘 우리 당앞에 나선 가장 중차대한 과업입니다.》

위대한 수령님의 한생은 이민위천을 좌우명으로 삼고 사상과 령도에 구현하여 현실로 꽃피우신 인민적수령의 숭고한 한생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수놓으신 인민사랑의 숭고한 력사에는 인민생활에서 중요한 몫을 차지하는 식생활개선에 바치신 로고에도 뜨겁게 깃들어있다.

주체50(1961)년 7월 평안북도 창성군을 찾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지방산업공업공장들의 실태를 료해하기 위하여 창성식료공장과 직물공장을 돌아보신후 강냉이가공공장으로 가시였다.

공장일군들의 안내를 받으시며 안으로 들어가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강냉이껍질벗기는 공정을 먼저 돌아보시면서 기계화가 다 되였다고 만족을 표시하시였다.

공장일군들이 첫 공정부터 마지막공정까지 다 기계화되였다고 보고올리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더없이 기뻐하시며 강냉이가공설비들을 어느 공장에서 만들어왔는가고 물으시였다.

도안의 지방산업공장들에서 만들었다는 대답을 들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기대를 가리키시며 이 강냉이가공설비들을 만드는데 강재가 총 얼마나 들었는가고 다시 물으시였다.

강재가 모두 10t 들었다는 일군들의 대답을 들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잠시 무엇인가 계산하시더니 이런 강냉이가공설비를 만들어 전국에 일반화하는데 강재가 2천t정도밖에 들지 않는다고, 강냉이가공설비를 빨리 만들어 전국에 일반화하여야 하겠다고 간곡히 교시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창성에서 참 좋은 일을 하였다고 높이 평가하시면서 어떤 일이 있어도 강냉이가공문제를 꼭 해결해야 한다고 말씀하시였다.

강냉이가공공장이 건설되게 된데는 가슴뜨거운 사연이 깃들어있다.

주체44(1955)년 여름 창성군의 어느 한 농업협동조합을 찾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일군들로부터 조합원들의 생활을 료해하시고나서 해질녘에 한 농가를 찾으시였다.

뜻밖에도 위대한 수령님을 맞이한 그 집 아주머니는 당황하여 어찌할바를 몰라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러는 그와 허물없이 무릎을 마주하시고 식구는 몇이며 저녁에 무슨 밥을 해먹었는가고 다정히 물으시였다.

그가 머뭇거리며 대답을 하지 못하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친히 가마뚜껑을 열어보시였다. 그런데 그속에는 저녁에 먹다 남은 삶은 통강냉이가 있었다.

그것을 보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가슴이 아프신듯 한동안 아무 말씀도 않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후 주체46(1957)년 7월에 있은 내각상무회의를 비롯한 여러 회의들에서 일군들에게 강냉이를 쌀로 만들어서 공급할데 대하여 간곡히 교시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지난날 항일무장투쟁을 하는 어려운 조건에서도 대원들에게 통강냉이를 그대로 먹이지 않았으며 통강냉이를 그대로 먹이는 현상과는 강한 투쟁을 벌렸는데 오늘 우리가 인민들에게 통강냉이를 공급해서야 되겠는가고, 앞으로 강냉이를 가공하여 공급하기 위한 결정적인 대책을 세워야 하겠다고 하시였다.

그러시면서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강냉이를 전국적으로 다 가공한다면 통강냉이를 그대로 먹는 일도 없을것이며 인민들에게 더 많은 기름을 공급할수 있을것이라고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후에도 강냉이가공공장을 빨리 건설할데 대한 문제를 강조하시면서 그에 필요한 설비, 자재들을 풀어주시였다.

창성강냉이가공공장도 위대한 수령님의 이렇듯 세심한 보살피심속에서 건설되였던것이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강냉이가공공장들을 크게 잘 지었다고 하시며 매 공정을 일일이 돌아보시다가 강냉이쌀저장탕크앞에서 걸음을 멈추시였다. 그러시고는 강냉이쌀을 손에 드시고 살펴보시며 인민들이 좋아하는가고 물으시였다.

한 일군이 좋아한다고 대답올리였다.

그런데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강냉이쌀을 손바닥에 펴놓고 잘못 가공된 점을 말해보라고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강냉이쌀가공에서 결함은 우선 쌀의 알갱이가 고르롭지 못한것이고 다음은 강냉이가루가 많이 나오는것이라고 가르쳐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자책감에 잠겨있는 일군들에게 강냉이쌀을 흰쌀에 섞어서 밥을 지을 때에 가마에 강냉이쌀을 먼저 안치고 어느 정도 삶다가 그 우에 흰쌀을 두는데 강냉이쌀에서 굵은 알이 다 익도록 삶자면 작은 알이 풀어져서 죽이 될것이고 작은 알이 익을 정도로 삶으면 큰 알은 익지 않을것이라고, 이렇게 되면 밥짓는 녀성들이 얼마나 불편하겠는가고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일군들에게 자신께서 강냉이를 쌀로 만들기 위해서 연구도 해보고 강냉이쌀밥도 여러번 해먹어보았다고, 그리고 농민들과 담화도 많이 해보았는데 그에 의하면 강냉이쌀은 강냉이 한알을 6분의 1로 쪼개놓은 크기가 가장 적당하다고 하시였다.

순간 일군들은 인민들의 식생활을 윤택하게 하시려고 어버이수령님께서 얼마나 마음쓰고계시는가를 깊이 깨닫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오늘 여기에 와보니 창성사람들이 강냉이가공문제를 해결하였다고 하시면서 자신께서 강냉이가공문제를 오래전부터 구상하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하여 애를 써왔는데 결함은 좀 있으나 동무들이 그 문제를 해결하였다고 더없이 기뻐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걸음을 옮기시면서 강냉이쌀을 1년에 얼마나 생산할수 있는가고 물으시였다.

공장일군이 3교대로 일하면 9 000t을 생산할수 있다고 대답올리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러니까 2교대로 일하면 6 000t은 가공할수 있겠다고 하시면서 앞으로 강냉이쌀을 잘 가공하여 공급해야 하겠다고, 이런 공장을 다른데도 건설해야 하겠다고 일군들에게 교시하시였다.

이윽고 밖으로 나오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공장구내를 둘러보시고나서 통강냉이를 그대로 먹으면 랑비가 많다고, 강냉이를 가공하면 쌀은 사람이 먹고 껍질과 부산물은 집짐승먹이로 리용할수 있으며 강냉이눈은 기름을 짜서 인민들에게 공급할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고 힘주어 교시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후 창성강냉이가공공장을 전국에 일반화하도록 하시였으며 모든 기계공장들에서 강냉이가공공장설비들을 우선적으로 생산보장할데 대한 혁명적인 조치를 취하시였다. 그리하여 1~2년사이에 모든 도, 시, 군들과 로동자구들에 통강냉이를 쌀로 가공하며 거기에서 나오는 강냉이눈으로 기름을 짜는 공장들이 일떠서게 되였다.

우리 인민들에게는 이때부터 강냉이를 망으로 타개거나 통강냉이를 그대로 먹는 일이 없어지게 되였으며 인민들은 현대적인 공장에서 잘 가공된 강냉이쌀을 식생활에 리용하게 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