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연구

주체섬유 비날론의 발명가 리승기

 2019.3.14.

오늘 우리 나라에는 위대한 수령님들의 현명한 령도밑에 주체섬유인 비날론공업이 창설되여 주체화학공업의 위력을 힘있게 과시하고있다. 여기에는 비날론의 발명가인 리승기선생의 과학적한생과 떼여놓고 생각할수 없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리승기박사는 주체과학을 발전시킬데 대한 우리 당의 로선을 우리 나라의 현실에 구현한 과학자이며 그의 연구성과에 기초하여 창설된 비날론공업은 주체공업의 훌륭한 본보기입니다.》 (김일성전집》 제77권 259~260페지)

우리 인민들은 누구나 리승기선생이라면 비날론을 연구해낸 사람이라고 말하며 그를 잊지 않고있다.

리승기선생은 1905년 10월 1일 전라남도 담양군 창평면 장하리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외국에 가서 고학을 하여 주체20(1931)년에 공과대학을 졸업하였다. 대학졸업후 그는 주체28(1939)년 7월 12일에 세계에서 처음으로 폴리비닐알콜에서 새로운 합성섬유인 비날론을 발명하는 특출한 연구성과를 내놓았다.

그는 주체28(1939)년 10월 4일 오사까의 회관에서 비날론연구론문을 발표하였다. 이것은 세계에 큰 파문을 일으켰다. 그 연구론문은 도이췰란드와 프랑스를 비롯하여 여러 나라들의 도서관에도 보관되여있다.

그후 비날론공업화를 위한 연구사업을 시작하였으나 대륙침략에 미쳐날뛴 일본제국주의자들은 그에게 군수생산과 관련된 연구사업을 하도록 강박하였다. 일본제국주의자들은 그가 순응하지 않는다 하여 연구비를 잘라버렸고 나중에는 그를 체포구금하는데까지 이르렀다.

일제의 민족차별정책과 박해에도 굴함없이 민족적존엄을 지켜온 그는 일제의 헌병대감방에서 감옥생활을 하다가 거기서 8.15를 맞이하였다.

그다음 주체34(1945)년 해방이후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는 조국해방전쟁시기 공화국에 들어와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품에 안긴 다음에야 자기의 재능을 마음껏 꽃피울수 있었으며 오랜 숙망을 실현할수 있었다.

주체39(1950)년 7월부터 함경남도 흥남시(당시)의 화학공장 기사로 사업을 시작한 그는 조국해방전쟁의 가장 준엄한 시기에도 당과 수령의 따뜻한 품속에서 평안북도 청수화학공장에서 비날론연구사업을 계속하였으며 주체적인 비날론공업창설을 위한 과학연구사업을 진행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준엄한 조국해방전쟁시기에도 리승기선생의 연구사업을 위하여 다른 나라에서 귀중한 실험설비들과 시약들을 마련하여 보내주시여 중단없이 연구사업을 하도록 온갖 조건을 다 보장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준엄한 조국해방전쟁이 한창인 주체41(1952)년 4월 27일 전국과학자대회를 소집하시고 우리 나라에서 주체섬유를 만들어낸 리승기선생을 주석단에 앉도록 해주시였을뿐아니라 대회휴식시간에는 휴계실에 몸소 부르시여 그의 연구성과를 높이 평가해주시고 비날론공업을 창설하기 위한 방향과 방도를 환히 밝혀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비날론공업화를 위한 연구사업이 완공되였을 때에는 전후 나라의 귀중한 자금을 들여 중간시험공장까지 꾸려주시고 앞으로 비날론공업화를 위한 모든 조건을 다 취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후 주체48(1959)년 함흥지구의 룡흥벌에 몸소 나가시여 비날론공장을 건설할 부지를 잡아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모든것을 비날론공장건설에로!》라는 구호를 제시하시고 강력한 인민군군인건설자들을 직접 파견하시였을뿐아니라 전당, 전국, 전민이 총동원되여 짧은 기간에 비날론공장을 건설하도록 현명하게 령도하시였다.

인민군군인건설자들과 우리 인민들의 영웅적투쟁에 의하여 매우 짧은 기간에 비날론공장건설이 우리의 설계, 우리의 설비, 우리의 힘으로 완공되였다.

그리하여 주체50(1961)년 5월 6일 비날론공장조업식이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 성대히 진행되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몸소 준공테프를 끊으시고 리승기선생에게 《오늘은 리선생의 소원이 풀리는 날입니다.》라고 교시하시였다.

그리고 비날론공장건설이 한창인 주체49(1960)년 10월 리승기선생이 갑자기 병환으로 누워있다는 보고를 받으시고 몸소 친필과 함께 산삼 두뿌리를 선물로 보내주시였다.

비날론이라는 이름도 위대한 수령님께서 몸소 지어주시였다.

원래 리승기선생은 폴리비닐알콜계섬유를 간략자로 《비알론》으로 달았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비알론》은 우리 식이 아니라고 하시면서 우리 나라에서는 옛날부터 천을 짤 때 실이름을 날실, 씨실이라고 불렀다고 하시며 날실에서 첫 글자를 붙여 《비날론》이라고 부르자고 섬유이름을 지어주시였다.

그리고 공장명칭도 우리 인민군군인들이 건설한 공장이라고 하여 몸소 《2.8비날론공장》이라고 명명해주시였다.

그후 1980년대에 와서 《2.8비날론련합기업소》라고 부르게 되였다.

그의 연구사업에 기초하여 우리 나라에 매장량이 풍부한 석회석과 무연탄을 원료로 하는 주체적이며 대규모적인 비날론공업이 창설되였다.

비날론생산이 공업화된 후 그는 계속하여 비날론의 질을 높이고 품종을 늘이기 위한 연구사업과 모비론(폴리염화비닐계섬유)을 공업화하기 위한 사업에서 많은 성과를 이룩하였다. 그리하여 함흥지구에 함흥모비론섬유공장도 새롭게 일떠서게 되였다.

그는 화학공업성 화학공업연구소 연구사를 거쳐 주체50(1961)년 2월부터 생애의 마지막까지 과학원 함흥분원 원장으로 사업하였다.

그는 수많은 박사, 교수들을 양성하였으며 저술활동도 많이 하였다.

그의 대표적저작은 《비날론》과 《비날론론문지》이다.

단행본 《비날론》은 다른 나라에서도 번역출판되였다.

그는 원사(1952년), 교수(1961년), 박사(1959년)이며 다른 나라의 과학원 명예원사, 명예교수칭호도 받았다. 그는 주체46(1957)년 8월 제2기부터 제9기에 이르기까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으로 선거되여 사업하였다.

나라의 과학기술을 발전시키는데서 세운 특출한 공로로 하여 로력영웅, 김일성상, 인민상, 인민과학자칭호를 받았으며 국기훈장 제1급을 비롯한 많은 훈장과 메달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