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연구

조선봉건왕조의 수교서적

 2015.11.25.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옛날책에는 외래침략자들을 물리치는 싸움에서 위훈을 떨친 우리 인민의 투쟁자료와 인류력사발전에 커다란 공헌을 한 귀중한 과학기술적발명과 관련한 자료도 있으며 문학과 예술, 미풍량속에 대한 자료도 있습니다.》 (《김정일전집》 제7권 273페지)

유구한 력사와 찬란한 문화전통을 가지고있는 우리 나라에는 정치, 경제, 군사, 문화 등 여러 분야의 력사사료들을 기록한 민족고전들이 수없이 많다.

이 민족고전들가운데는 조선봉건왕조의 보조법전인 수교유산들도 있다.

조선봉건왕조에서는 지배계급의 특권적지위를 공고히 하고 인민대중에 대한 착취를 강화하기 위하여 1485년에 《경국대전》을 편찬하였다. 그 이후에도 계속 법전편찬사업을 진행하여 1492년과 1543년에 각각 《대전속록》과 《대전후속록》을 편찬하였다.

조선봉건왕조는 기본법전편찬과 함께 보조법전편찬사업에도 관심을 돌리였다.

이 과정에 조선봉건왕조에서는 정치, 경제, 군사, 문화 등 사회의 여러 분야에서 수시로 제기되는 제반 문제들을 법적으로 처리하기 위하여 《각사수교》와 《수교집록》, 《신보수교집록》과 같은 수교서적들을 편찬하였다.

일반적으로 봉건사회에서 수교라고 하면 국왕이 내리는 지시 즉 국왕에게서 받는 훈유를 말한다. 다시말하여 봉건사회에서 국왕으로부터 지시를 받은것과 국왕에게 제의하여 승인을 받은것을 수교라고 한다.

국왕으로부터 받은 지시라 할지라도 모든 지시들이 다 수교로 되는것은 아니였다.

국왕으로부터 받은 지시들중에서 량사의 서경 즉 사헌부와 사간원의 동의를 받은 지시만이 수교로 될수 있었다.

각사는 중앙에 있는 모든 관청을 가리키는 말인데 《각사수교》는 조선봉건왕조의 기본행정적집행기구인 리조, 호조, 례조, 병조, 형조, 공조의 6조와 법관계사무를 맡아본 한성부와 장예원만을 념두에 두었다.

《각사수교》는 17세기 30년대에 필사본으로 나왔다.

이 시기에 와서 《각사수교》가 나온것은 1543년에 《대전후속록》이 편찬된 이후 1세기에 걸치는 기간 법전편찬사업이 전혀 진행되지 않은 사정과 관련되였다.

물론 1555년에 《경국대전주해》가 편찬되였지만 이 문헌은 어디까지나 《경국대전》의 일부 법조항들에 대한 주석에 불과하였다.

조선봉건왕조에서는 사회현실의 변화에 부합되는 새로운 법조문을 작성해야 할 필요성으로부터 1543년이후의 수교들을 수집정리하는 사업부터 진행하였다.

1546년부터 1636년사이에 6조와 한성부, 장예원에서 받은 수교 188건을 수집하여 《각사수교》로 편찬하였다. 이 문헌이 바로 조선봉건왕조의 첫 수교책으로 되였다.

《각사수교》에는 이 책에 대한 서문이 씌여지지 않아 정확한 편찬년대와 편찬자를 알수 없다. 그런것만큼 《각사수교》에 기록된 수교년대들중에서 제일 마지막으로 기록된 1636년을 놓고 이 책의 편찬이 17세기 30년대에 진행되였다고 보는것이다.

이 시기에 나온 《각사수교》는 조선봉건왕조초기부터 수교책편찬사업을 진행하지 못한 관계로 이후시기의 수교책들과 같이 법전형식의 편찬체계를 갖추지 못하였다.

다만 6조의 매 관청들과 한성부와 장예원에서 받은 수교들을 법조문형식으로 다듬지 않고 원전그대로 필사해놓았다. 그렇기때문에 《각사수교》의 구성체계는 리조수교, 호조수교, 례조수교, 병조수교, 형조수교, 공조수교, 한성부수교, 장예원수교로 되여있으며 매 관청의 수교들은 이후시기의 수교책들과 같이 구체적인 항목안에 수록되지 않았다.

《각사수교》에는 조선봉건왕조의 기본행정적집행기구인 6조가 수행해야 할 행정규범들과 한성부와 장예원이 법처리에서 준수해야 할 규정들이 실려있다.

이 책에서는 수교의 년대는 물론 날자까지 정확히 기록하고있어 어떠한 법이 어느때부터 실시되였는가 하는것을 정확히 알수 있으며 거의 모든 수교들이 한문어휘와 리두로 씌여있어 16세기중엽부터 17세기중엽까지 우리 나라에서의 리두사용과정을 구체적으로 파악할수 있다. 또한 6전체계를 갖추지 않고 각 관청들의 수교를 원전그대로 싣고있어 고문서연구에 필요한 자료를 제공해준다.

이러한 점들이 이후시기의 수교책들과 구별되는 《각사수교》의 특징이다.

《각사수교》를 편찬한 경험에 기초하여 조선봉건왕조에서는 1687년부터 새로운 수교책을 편찬하는 사업에 달라붙었다.

조선봉건왕조는 《각사수교》에서 장황하게 서술된 수교를 법조문형식으로 간결하게 정리하는것과 함께 중앙과 지방에 흩어져있는 수교들을 수집하는 사업을 진행하였다.

이 과정을 거쳐 10여년이 지난 1698년에 986건의 수교조항을 실은 또 다른 하나의 수교책인 《수교집록》이 출현하였다.

이 책의 편찬에는 령의정들이였던 김수항, 김수홍, 남구만, 리조판서 리익, 례조판서 윤지완, 병조판서 조사석, 형조판서 서문중, 부제학 최석정, 우참찬 리여 등 높은 급의 관리들이 참가하였다. 이 책의 서문은 우참찬 리여가 썼다.

《수교집록》편찬은 《각사수교》의 편찬과정에 발로된 부족점을 퇴치하는 방향에서 진행된것만큼 매 수교조항들은 법전편찬체계에 맞게 6전의 항목들에 배렬되였다. 그렇기때문에 《수교집록》은 《경국대전》에서와 같이 리전, 호전, 례전, 병전, 형전, 공전의 6전체계로 되여있고 매 전에는 해당한 항목이 설정되여있다.

매 전의 항목을 보면 리전에는 7개, 호전에는 13개, 례전에는 11개, 병조에는 12개, 형전에는 18개, 공전에는 1개로서 모두 62개항목으로 되여있다. 그리고 이 책의 수교조항들을 보다 간단명료하게 표기하기 위하여 기본법전의 법조문에서와 같이 리두토를 사용하는것을 극력 피하였으며 수교년대표기도 년월일중에서 년도만 밝히였다.

결국 이 시기에 와서 수교책이 보조법전으로서의 체모를 원만하게 갖출수 있게 되였다.

기본법전과 같이 6전체계를 갖추었다는 점, 리두토가 거의나 사용되지 않았다는 점, 년월일중에서 년도만 밝히였다는 점이 《각사수교》와 구별되는 《수교집록》의 특징이다.

또한 《수교집록》의 대부분의 수교조항들이 후기에 나온 《대전통편》이나 《대전회통》과 같은 법전들과 《결송류취보》와 같은 법관계책들에 널리 리용되였다. 이러한 점이 이후에 편찬된 《신보수교집록》과 구별되는 《수교집록》의 특징으로 되는것이다.

《각사수교》와 《수교집록》의 편찬을 통하여 수교책편찬에서 풍부한 경험을 얻은 조선봉건왕조에서는 1732년부터 법집행에서 보조적으로 리용될수 있는 수교들을 더 많이 수집장악하여 새로운 수교책으로 편찬하는 사업을 진행하였다.

홍문관과 예문관에서는 중앙과 지방에 널려있는 18세기이전의 수교들을 더 수집하는 한편 《수교집록》이 나온 이후 즉 1698년이후부터의 수교 1 419건을 장악하여 1743년에 또 하나의 수교책인 《신보수교집록》을 편찬하였다. 그것이 바로 《신보수교집록》이다.

《신보수교집록》 역시 《수교집록》과 같이 6전체계로 되여있다.

편찬체계에서 《수교집록》과 다른 점이 있다면 매 전의 항목수가 더 많은것이다.

매 전의 항목을 놓고볼 때 리전에는 11개, 호전에는 15개, 례전에는 14개, 병전에는 20개, 형전에는 24개, 공전에는 5개이다. 이렇게 놓고보면 《신보수교집록》의 항목이 모두 89개로서 《수교집록》보다 27개 항목이 더 설정되였다.

《신보수교집록》에는 1543년부터 1738년까지의 수교들이 올라있다.

이 수교책에서 주목되는것은 책을 편찬함에 있어서 《수교집록》의 조항들을 싣지 않은것이다.

《수교집록》을 편찬할 때에는 《각사수교》의 수교조항들을 법조문형식으로 정리하여 《수교집록》에 실었다.

그러나 《신보수교집록》을 편찬할 때에는 《수교집록》에 싣지 못했거나 《수교집록》이후에 나온 수교들을 새로 보충하여 싣는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신보수교집록》 역시 이전의 수교책들과 같이 가능한껏 수교년대를 기록하는 방향에서 편찬되였다.

《신보수교집록》은 수교조항의 건수로 보나 항목의 개수로 보나 이전의 수교책들에 비해 방대한 분량을 가진 수교책이였다.

17세기 30년대부터 시작된 수교책편찬사업은 1743년까지 진행되여 《각사수교》, 《수교집록》, 《신보수교집록》과 같은 수교책들을 세상에 내놓았다.

지난 시기의 고전문헌들과 마찬가지로 조선봉건왕조시기에 편찬된 수교책들은 어디까지나 지배계급의 리익을 옹호하고 인민대중을 억압착취하기 위한 목적에서 편찬한것으로서 시대적 및 계급적제한성을 가지고있다.

봉건통치배들은 새로운 사회적조건과 환경이 조성될 때마다 저들의 리익에 맞게 법조문과 수교조항들을 만들어내여 봉건왕조를 유지공고화해나갔다.

그런것만큼 조선봉건왕조의 법전은 물론 수교책들에 반영된 법조항들을 철저히 계급적립장에서 보고 대하여야 한다.

수교책들은 기본법전들과 함께 조선봉건왕조의 정치, 경제, 군사, 문화 등 각 분야의 법규정들을 묶어놓은 보조법전이므로 조선력사와 조선법제사연구뿐아니라 사회과학의 각 부문사를 연구하는데서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