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력사유적유물들은 우리 선조들이 투쟁과 창조적활동을 통하여 이룩한 귀중한 유산이며 후세에 길이 전해갈 민족의 재부입니다.》
력사유적과 유물들은 우리 나라의 유구한 력사와 문화의 발전상을 실물로 보여주는 귀중한 증거물이며 여기에는 우리 민족의 창조적지혜와 고유한 생활풍습이 반영되여있다.
우리 나라의 유구한 력사와 문화의 발전상을 보여주는 유적들가운데는 고인돌무덤도 있다.
고인돌무덤은 우리 나라에서 원시시대말기와 고대시기에 널리 쓰인 가장 대표적인 유적의 하나로서 우리 선조들의 슬기와 재능, 당시의 문화와 생활풍습, 사회경제형편 등을 잘 보여준다.
고인돌무덤은 오늘의 조선반도와 중국동북지방을 비롯하여 고대조선사람들이 퍼져 살고있던 거의 모든 지역에 분포되여있다.
지금까지 평양지방과 전라남도에서 알려진 고인돌무덤의 수만 하여도 3만 3 000여기에 달하며 그밖의 지역들에서 알려진것까지 합하면 그 수가 5만여기이상에 달할것으로 추산되고있다.
고인돌무덤은 주검칸의 구조형식에 따라 침촌형, 오덕형, 묵방형, 석천산형, 제주형 등 여러가지 류형으로 구분되고있다.
이 여러 류형들가운데서 특별히 이채를 띠는것은 네면에 통판돌을 세워 평면이 장방형인 주검칸을 만들고 그우에 크고 육중한 뚜껑돌을 올려놓은 오덕형고인돌무덤이다. 오덕형고인돌무덤은 대체로 다른 류형의 고인돌무덤들에 비하여 규모가 상대적으로 큰것이 특징적이다.
지난 시기에는 우리 나라에서 규모가 가장 큰 오덕형고인돌무덤으로서 연탄군 오덕리1호무덤과 은률군 관산리 1호고인돌무덤, 안악군 로암리1호고인돌무덤을 꼽았다.
황해북도 연탄군 오덕리에서 알려진 1호고인돌무덤은 뚜껑돌의 크기가 길이 830㎝, 너비 630㎝, 두께 50㎝이고 황해남도 은률군 관산리에서 알려진 1호고인돌무덤의 뚜껑돌은 길이 875㎝, 너비 450㎝, 두께 31㎝되였다. 그리고 황해남도 안악군 로암리에서 알려진 1호고인돌무덤의 뚜껑돌은 많이 깨여졌는데 현재 남아있는것만 하여도 길이 778㎝, 너비 572㎝, 두께 70㎝이며 제대로 남아있는 북쪽과 동쪽벽체의 바깥쪽으로 뻗은 뚜껑돌의 나래길이를 대칭시켜보면 뚜껑돌의 본래크기는 길이 910㎝, 너비 640㎝정도로 추정된다.
규모가 상대적으로 큰 이 세개의 고인돌무덤들을 가리켜 3대고인돌무덤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지금까지 여러곳에서 알려진 고인돌무덤들가운데는 앞에서 본것들과 대등하거나 얼마간 더 큰것도 있다는것이 최근에 새로 밝혀졌다. 그러한 고인돌무덤이 바로 황해북도 상원군 장리에 있는 2호고인돌무덤과 중국 료녕성 개주시 석붕산에 있는 고인돌무덤이다.
장리2호고인돌무덤의 뚜껑돌은 남아있지 않지만 주검칸을 이루는 고임돌 한개의 크기가 너비 620㎝, 높이 240㎝, 두께 55㎝이다.
뚜껑돌의 본래길이가 910㎝로 인정되는 로암리 1호고인돌무덤의 1개고임돌크기가 너비 550㎝, 높이 270㎝, 두께 55㎝인것만큼 너비가 이보다 더 큰 고임돌을 쓴 장리 2호고인돌무덤의 뚜껑돌은 적어도 길이가 930~940㎝정도는 되였다고 볼수 있다. 그리고 석붕산고인돌무덤의 뚜껑돌은 길이 860㎝, 너비 510~570㎝, 두께 40~50㎝이다.
전라남도를 비롯하여 남부조선지역에도 수많은 고인돌무덤들이 분포되여있지만 이처럼 규모가 큰 고인돌들은 찾아볼수 없다.
오덕리 1호고인돌무덤과 관산리1호고인돌무덤, 로암리 1호고인돌무덤, 장리 2호고인돌무덤, 석붕산고인돌무덤은 지금까지 우리 나라에서 알려진 고인돌무덤들가운데서 규모가 가장 큰것들이다. 때문에 이 고인돌무덤들을 통털어 고대조선의 5대고인돌무덤이라고 부른다.
이 무덤들은 세련된 돌가공기술과 무덤축조기술이 안받침되고 많은 로력과 품을 들여서만 축조할수 있는 무덤들이다.
로암리1호고인돌무덤은 뚜껑돌을 거북등형태로 품들여 가공하고 고임돌에는 홈을 내여 막음돌과 잘 맞물리도록 하면서도 안기울임을 합리적으로 조성하였으며 관산리1호고인돌무덤은 뚜껑돌과 주검칸의 중심이 일치되게 놓이도록 하여 벽체바깥쪽으로 사방 뻗어나간 뚜껑돌의 나래가 서로 대칭을 이루게 하였다.
또한 5대고인돌무덤들의 뚜껑돌무게는 같지 않지만 오덕리1호고인돌무덤의 뚜껑돌은 95t, 로암리1호고인돌무덤의 뚜껑돌은 102t으로 추산되고있다.
로암리1호고인돌무덤의 1개 고임돌 크기는 중간급에 속하는 고인돌무덤의 뚜껑돌과 맞먹는 크기로서 그 무게는 적어도 40여t정도는 되였을것으로 인정되고있다. 이렇게 놓고 보면 로암리1호고인돌무덤의 축조에 쓰인 석재의 총 무게는 200여t정도 될것으로 추산된다.
건축학자들의 견해에 의하면 뚜껑돌의 무게가 50t인 고인돌무덤의 축조공사에는 2 000-2 300여공수의 로력이 들고 무게가 100t인 경우에는 그의 2배에 달하는 로력이 필요하다고 한다.
이러한 자료들은 5대고인돌무덤의 축조공사가 무제한한 강권을 가진 노예주들에 의하여 강제로 동원된 노예들의 힘겨운 로동에 의해서만 가능한 일이였다고 말할수 있다.
따라서 5대고인돌무덤에 묻힌자들은 무제한한 권력과 재부를 독차지하고 근로대중우에 군림하였던 왕과 같은 특권계층의 인물들이라는것을 실증해준다.
이와 같이 5대고인돌무덤들에는 고대조선사람들의 슬기와 재능, 높은 문화발전수준이 반영되여있으며 무덤주인공은 왕과 같은 특권계층의 인물들이였다.
고대조선의 5대고인돌무덤가운데서 석붕산고인돌무덤을 제외한 4개의 고인돌무덤들은 모두 평양을 중심으로 하는 대동강류역일대에 분포되여있다.
이것은 고대조선의 5대고인돌무덤만을 통해서도 평양을 중심으로 한 대동강류역일대가 고대조선문화의 발원지, 중심지일뿐아니라 고대문화가 가장 발전한 지역이였다는것을 다시한번 뚜렷이 확증해주는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