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연구

고구려의 무덤벽화

 2015.10.28.

고구려무덤벽화는 우리 민족이 창조하고 발전시켜온 귀중한 문화재부이며 세계유산으로 등록된 세계에서 손꼽히는 우수한 예술작품이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옛날 무덤벽화만 보아도 우리 선조들이 얼마나 뛰여난 미술적재능을 가지고있었는가 하는것을 잘 알수 있습니다. 벽화들은 그 묘사의 생동성과 다양한 생활세부, 변하지 않는 색갈로 하여 세계적으로 관심을 크게 집중시키고있습니다.》 (《김정일전집》 제2권 480페지)

지난날의 우리 나라 력사에서 동방의 강국, 선진문명국으로 이름떨친 고구려는 회화미술분야에서도 큰 발전을 이룩하였다.

고구려의 회화미술은 일반그림작품들과 지상건물들에 그렸던 그림들이 거의나 없어지고 무덤벽화의 일부가 남아있는것으로 하여 무덤벽화를 통하여 그 내용과 우수성, 특징이 전해지고있다.

고구려무덤벽화는 수천년이 지난 오늘에도 선명한 색채와 생동한 화법이 그대로 남아있어 고구려미술의 높은 수준을 잘 보여주고있다.

고구려무덤벽화는 오늘까지 실물로 전해내려오는 우리 나라의 그림가운데서 가장 오랜것이며 필치가 우아하고 내용이 풍부하며 색채가 다양하고 생동한것으로 하여 중세초기 동양화의 정수를 이룬다.

고구려사람들은 사람이 죽은 다음에도 《령혼》은 살아있다고 생각한데로부터 무덤안을 지상의 생활환경처럼 그림으로 장식하였다. 물론 무덤벽화는 신분이 높은 자들만이 그릴수 있었다. 무덤벽화는 바로 죽은 다음에도 살아있을 때처럼 권세와 부귀영화를 누리려는 봉건통치배들의 욕망과 신앙적관념으로부터 낳은 결과였다. 그리하여 무덤간을 지상건물처럼 장식하기도 하고 벽면에 살아있을 때의 생활을 그려넣어 현실생활을 련상케 하였으며 천정에는 해와 달, 신앙과 관련한 환상적인 그림들을 그려 당시 고구려귀족들이 생각한 우주세계를 형상하였다.

고구려무덤벽화는 고구려의 첫 수도였던 졸본(환인)일대에서 1기, 두번째 수도였던 국내성(집안)일대에서 30여기, 세번째 수도였던 평양일대에서 80여기가 조사발굴되여 지금까지 110여기 알려졌다. 특히 2001년이후에 10여기의 벽화무덤들이 새로 발굴되였다.

고구려의 무덤벽화는 대체로 2세기경부터 그려지기 시작하여 3세기경에는 일정한 체계를 갖추었으며 4세기경에는 벌써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다. 그후 5세기를 거쳐 6~7세기경에 와서는 내용이 매우 풍부해지고 회화적기교가 원숙해져 무덤벽화발전의 절정을 이루었다.

무덤벽화는 무덤의 안길에서부터 문간, 앞간, 곁간, 안간, 천정 등에 이르기까지 무덤안의 전면에 걸쳐 그려져있다. 벽화는 대부분 자연돌을 쌓은 벽면에 회죽을 곱게 바르고 그우에 그리였으며 일부 화강석이나 대리석(호남리사신무덤)을 다듬어 만든 통돌벽면에 직접 그리기도 하였다.

벽화에는 주제내용에 따라서 인물풍속을 그린것, 인물풍속과 사신을 함께 그린것, 사신을 그린것, 장식무늬를 그린것 등이 있다.

인물풍속을 그린 벽화무덤은 그것이 만들어진 시기가 무덤벽화발생의 초기인 2세기경부터 대체로 4~5세기까지에 해당한다. 이러한 벽화무덤으로서 대표적인것은 고국원왕무덤, 안악 1,2호무덤들, 덕흥리벽화무덤, 수산리벽화무덤, 씨름무덤 등이다. 인물풍속도는 일련의 특징을 띠고있다.

그것은 첫째로, 벽화의 주제내용에서 고구려의 정치, 경제, 문화, 군사, 풍속 등 나라의 여러 부문의 생활을 다양하게 담고있는것이다.

인물풍속도에는 정사관계, 생산활동, 예술활동, 체육경기, 군사관계, 건축관계, 신앙관계, 풍속, 천체, 자연풍경 등이 주로 그려져있다.

둘째로, 벽화에 고구려사람들의 기질과 성격 즉 웅건하고 용감한 성품과 우아하고 락천적이면서도 소박한 풍모와 진취적인 기상이 잘 나타나고있는것이다.

셋째로, 벽화의 규모가 크고 그림의 구도가 웅장하고 대담한것이다.

넷째로, 벽화가 종합적성격을 띠고있어 한 벽면에서 인물화, 동물화, 풍경화, 장식화 등을 다 찾아볼수 있는것이다.

인물풍속과 사신을 함께 그린 벽화무덤은 약수리벽화무덤, 쌍기둥무덤, 료동성무덤 등 20여기에 달하는데 대체로 5~6세기에 해당한다. 이가운데서는 인물풍속도가 주되는것이고 사신도가 일부 벽면에 있는것도 있고 반대로 사신도가 큰 비중을 차지하는것도 있다. 사신도를 그린 벽화무덤은 강서세무덤의 큰무덤과 중무덤, 호남리사신무덤 등을 들수 있는데 모두 외간무덤으로서 대체로 6~7세기에 해당한다. 이러한 무덤들에서는 동쪽에 청룡, 서쪽에 백호, 남쪽에 주작, 북쪽에 현무 등 환상적인 동물들을 그려넣었다. 장식무늬만을 그린 벽화무덤은 동명왕릉을 비롯하여 몇개를 들수 있는데 여기에는 다양한 식물무늬(련꽃무늬)와 기와무늬, 구름무늬 등이 그려져있다.

무덤의 벽화들은 수천년이 지난 오늘에도 그 색이 변하지 않아 지금 보아도 화가들이 방금 붓을 뗀것과 같은 인상을 준다. 벽화의 채색은 붉은색, 푸른색, 흰색, 누런색, 검은색 그리고 이 색들에 청록색과 황갈색을 첨가한 제한된 색채를 사용하면서도 풍부한 색갈을 나타내였다. 벌써 이 시기에 화가들은 붉은색만 하여도 다섯가지이상의 색으로 표현할줄 알았으며 점차 금박으로 채색적효과를 나타내기까지 하였다. 채색원료는 색흙을 포함한 광물성안료들을 배합하여 썼는데 회죽을 바르고 마르기전에 채색하여 그것이 굳어지게 하는 방법을 도입함으로써 고유한 색갈이 오래 보존되도록 하였다.

무덤벽화에서는 우수하고 세련된 기법과 색채를 능숙하게 적용함으로써 조선화의 고유한 특징을 잘 표현하였다. 고구려의 벽화예술은 그 발전수준이 매우 높은것으로 하여 백제와 신라 그리고 중세일본의 회화미술발전에 큰 영향을 주었다.

고구려무덤벽화는 조선화연구뿐아니라 세계미술사연구에서도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귀중한 유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