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종합대학 조선어문학부 최원길
2023.3.21.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김일성종합대학의 교육자, 과학자들은 당의 교육정책을 높이 받들고 정치사상적으로 견실하고 과학기술적으로 튼튼히 준비된 혁명인재들을 수많이 키워냈으며 김일성-김정일주의와 당정책의 정당성을 론증하고 널리 해설선전하며 경제와 문화, 국방력강화에서 제기되는 과학기술적문제들을 훌륭히 해결함으로써 주체혁명위업을 승리적으로 전진시키는데 적극 기여하였습니다.》
나라의 부강발전과 조국의 만년대계를 위한 과학탐구의 길에 한생을 바친 김일성종합대학 교육자, 과학자들속에는 김일성상계관인, 인민과학자, 원사, 교수, 박사 박태훈선생도 있다.
1906년 9월 19일에 태여나 나라없는 설음과 고통을 강요당해야만 하였던 박태훈선생은 해방된 조국에서 비로소 참다운 행복을 누릴수 있었다.
박태훈선생은 주체34(1945)년 11월 3일 위대한 수령님을 처음으로 만나뵙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날 박태훈선생의 가슴속이야기를 다 들어주시며 이제는 나라가 해방되였으니 박선생도 조선의 지리학을 마음껏 연구하여 청춘시절에 품었던 푸른 꿈을 활짝 꽃피워가라고 고무격려해주시고 야외휴식장의 나무의자에 허물없이 앉으시여 새 조국건설을 위한 나라의 대사도 의논해주시였다.
그후 전쟁의 준엄한 시련을 겪고있던 주체41(1952)년 4월 12일 백송리를 찾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종합대학에서 나라의 자연부원을 조사장악하고 그것을 합리적으로 리용하기 위한 연구사업을 잘할데 대하여 가르쳐주시였다.
하여 박태훈선생은 주체41(1952)년 7월 위대한 수령님께서 주신 과업을 관철하기 위하여 김일성종합대학 교원, 학생들로 조직된 북부고산지대 조사단의 한 조사대를 책임지고 개마고원과 백무고원일대에 대한 자원조사를 불과 한달 남짓한 기간에 구체적으로 조사장악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전후에도 박태훈선생은 종합대학의 교원, 학생들을 이끌고 한겨울의 맵짠 날씨에 감탕속을 헤쳐가면서 서해안간석지예비조사를 진행하여 위대한 수령님께서 구상하시고 설계하신 만년대계의 국토건설과 대자연개조사업을 앞장에서 받들어나갔다.
그후 우리 나라에서 간석지개간사업이 대대적으로 진행되기 시작한 시기인 1960년대말에는 새로 개간된 간석지에서 농사를 짓자면 물문제를 푸는것이 중요하다고 하신 위대한 수령님의 교시를 관철하기 위하여 끊임없는 사색과 연구를 진행해나갔으며 그 과정에 그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교시하신 문제는 지구에 맞구멍을 뚫어서라도 반드시 실현해야 한다는 철석의 의지를 지니게 되였으며 탐사대원들과 함께 간석지의 여러 지점을 시추하여 끝내 간석지에도 지하수가 있다는 결론을 얻게 되였다.
이때 그는 희열에 넘쳐 진정을 터놓았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된다고 말씀하신것은 꼭 됩니다. 이것은 과학이며 내 70평생에 체험으로 굳어진 진리입니다.》
이렇게 위대한 수령님의 웅대한 대자연개조구상을 높이 받들고 전후 어려운 시기에 간석지에 대한 조사연구사업을 진행하여 바다를 내막는 거창한 대자연개조사업을 훌륭히 수행한 박태훈선생은 어느덧 로년기에 이르게 되였다.
하지만 위대한 수령님의 믿음과 사랑이 있었기에 박태훈선생은 로쇠를 모르고 후대교육과 지리학연구에 열정을 쏟아부을수 있었으며 로년기에도 새로운 과학연구성과들을 내놓을수 있었다.
박태훈선생은 주체52(1963)년부터 주체80(1991)년까지 후대교육사업과 과학연구사업에 참가하여 수많은 학위학직소유자들을 키워냈으며 《조선의 간석지》, 《아름다운 강산》, 《서해안간석지의 광활한 전망》, 《조선의 자연지리》, 《자연조건과 자연부원》, 《지리사전》, 《간석지소금기빼기》 등 수많은 소론문, 교과서, 참고서들을 집필하여 우리 공화국의 지리학발전에 이바지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박태훈선생의 공로를 높이 평가하여 그에게 교수, 박사의 학위학직도 수여해주시고 우리 나라에서 첫 김일성상계관인들중의 한 사람으로 내세워주시고 최고인민회의 제6기 대의원의 영예도 주시였으며 선생에게 인민과학자칭호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원사칭호를 수여해주시고 여든번째 생일을 맞는 그에게 은정어린 생일상도 친히 보내주시였다.
그가 세상을 떠났다는 비보를 받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못내 가슴아파하시며 그의 령전에 자신의 명의로 된 화환도 보내주시였으며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박태훈선생의 공적을 력사와 민족이 잊지 않도록 애국렬사릉에 안치하도록 해주시는 크나큰 은정을 돌려주시였다.
이렇듯 생애의 순간순간을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의 뜻을 받드는 과학탐구의 길에 바친 박태훈선생의 한생은 우리 시대 과학자들이 삶의 지향을 어디에 두고 무엇을 위해 사색하며 과학의 세계를 개척해나가야 하는가를 다시금 가슴뜨겁게 새겨주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