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으로 자라난 특류영예군인

 2020.10.2.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의 영예군인들은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희생적으로 용감히 싸운 전사들이며 나라의 귀중한 보배들입니다.》 (김일성전집》 제15권 72페지)

평양시 락랑구역 충성1동에는 특류영예군인 시인 조광원이 한 가정의 세대주로서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행복하게 살고있다.

군사임무수행중 달리는 렬차에서 많은 사람들을 구원하고 두다리와 오른팔을 잃었을 때 그의 나이는 21살이였다.

꿈과 포부가 많았던 꽃나이의 조광원은 너무도 억이 막혀 몸부림쳤다.

《과연 이제 나는 무엇을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가?》 이 물음앞에서 그는 더는 절망속에 빠져있을수 없었다. 군의소에서 병치료를 받는 기간 그는 왼손으로 글쓰는 련습을 시작했다. 정신력마저 잃는다면 자신을 완전히 잃게 된다는것을 자각했던것이다.

그는 부모와 선생님들, 모교와 전우들에 대한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즉흥자작시들을 썼으며 자기도 사회의 당당한 성원이 되여 무엇인가 이바지하고싶은 열렬한 충동을 가슴깊이 간직하게 되였다. 그래서 여러 영예군인들과 함께 공장, 기업소와 건설장, 협동농장들에 나가 노래도 부르고 즉흥시도 읊으면서 경제선동활동에 참가하였다.

그는 한생의 길동무가 되겠다고 찾아온 고마운 안해앞에 훌륭한 남편의 모습을 보여주고싶었다. 그래서 현실을 반영하고 시대를 격동시키는 명작을 내놓을 높은 목표를 세우고 《인간사랑의 계단에 서서》, 서정시들인 《내가 잘 아는 사람》, 《푸른 잔디》, 《봄향기 넘친다》, 《물고기떼가 흘러든다》를 비롯하여 많은 시작품들을 련속 내놓았다. 몸은 비록 침상에 있지만 그는 시대의 숨결을 누구보다 가슴벅차게 안고 살았다.

그는 강서구역 수산리에서 전쟁시기 학살된 수십구에 달하는 유해가 또다시 발굴되였다는 소식을 듣고 이 땅에는 억년을 두고도 잊지 못할 피의 지층, 계급의 지층이 있다는것을 피타게 절규한 시 《피의 지층》을 써냈으며 조국해방전쟁시기 계급적원쑤들이 저지른 야수적만행의 자욱이 그대로 남아있는 신천땅을 돌아보고나서 비수같은 시어들을 골라 시초 《신천의 결산은 끝나지 않았다》를 내놓았다.

이 작품은 전국군중문학작품현상모집에서 1등을 하였고 그는 6월4일문학상수상자의 영예를 지니게 되였다.

시문단에 알려지고 자기의 시작품들이 지상에 발표될수록 그의 마음은 줄곧 혁명의 성산 백두산으로만 달리였다.

그는 안해와 함께 백두산답사길에 올랐다. 세찬 폭풍이 휘몰아치며 우박까지 쏟아져내렸으나 만난을 무릅쓰고 가까스로 장군봉어귀에 올랐을 때 그는 누가 말릴새도 없이 지팽이마저 내던지고 의족한 두 다리로 삼륜차에서 벌떡 일어서더니 앞으로 달려나가며 탄성을 질렀다.

《백두여, 그대가 나를 세웠다!》

백두산이 기적을 안겨주었던것이다. 이것은 그대로 시로 되였다.

이렇게 두 다리와 오른팔을 잃은 특류영예군인인 그는 10여년동안 강의한 의지와 불굴의 노력으로 우수한 시작품들을 창작하여 인민이 알고 인민의 사랑받는 시인으로 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