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종합대학 교육과학연구소 석명철
2020.12.21.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인민을 끝없이 사랑하시고 인민들에게 주실수 있는 모든 행복과 영광을 다 안겨주시였습니다. 수령님의 은덕으로 우리 인민은 참된 삶과 행복을 누리게 되였습니다.》 (《김정일선집》 증보판 제18권 18페지)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37(1948)년 3월 2일 새날이 밝아오는 이른 새벽 몸소 동평양지구에 나오시였다.
당시 동평양지구에는 대동강제방뚝을 따라 수많은 단층집들이 볼품없이 여기저기에 널려져있었다.
이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어느 한 단층집의 남새밭옆에 이르시여 주변을 둘러보시다가 이 일대에 다층살림집을 많이 지어 새로운 거리를 형성할데 대하여 밝혀주시였다.
순간 일군들은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아직 겨울을 갓 넘긴 초봄이여서 날씨가 여간 쌀쌀하지 않았지만 위대한 수령님께서 이른 새벽에 떠나겠다고 하시였을 때 일군들은 건국사업에서 매우 긴급하고도 중요한 문제가 기다리고있는줄로만 알고있었다.
하지만 인민들이 아직 잠에서 깨여나지 못한 이른새벽 아침식사도 미루시고 찬바람부는 강기슭을 찾으신 사연을 비로소 깨닫게 된 일군들은 인민들에 대한 어버이수령님의 이 세상 그 무엇에도 비길수 없는 친어버이사랑에 가슴뜨거움을 금할수 없었다.
새벽안개가 유유히 감돌아흐르는 동평양지구를 이윽토록 바라보시던 어버이수령님께서는 해방의 기쁨을 안고 새 조국건설에 떨쳐나선 수도시민들의 생활을 향상시키자면 이 일대에 살림집을 많이 지어야 한다고, 새 살림집을 많이 지으면 인민들이 알뜰하고 문화적으로 살수 있을것이라고 하시면서 동평양에 먼저 새로운 거리를 형성할데 대하여 환히 밝혀주시였다.
그처럼 바쁘신 건국의 초행길에 인민들에게 행복의 보금자리를 마련해주는 사업을 제일 중요한 문제로 내세우시고 모든 로고와 심혈을 다 바쳐가신 어버이수령님의 사랑의 손길에 의해 이렇듯 동평양지구건설의 휘황한 설계도가 펼쳐지게 되였다.
이윽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여기에 짓는 살림집은 옛날과 같이 자그마한 단층집을 지을것이 아니라 해방된 우리 인민들의 새로운 생활과 요구에 맞게 문화적인 다층살림집을 지어야 한다고 하시며, 여기에다 집을 지을 때에 다른 나라의것을 그대로 본따지 말고 우리 인민의 민족적풍속과 현대적미감에 맞게 지어야 한다고, 집의 층수는 유럽식으로 높이 짓지 말고 지금 우리 나라 형편에서는 3층정도로 지어야 인민들의 생활에 편리할수 있다고 살림집건설의 구체적인 방향과 방도를 가르쳐주시였다.
그러시면서 동평양에 새로운 거리와 주택지구를 형성하려면 무엇보다먼저 길을 잘 내는것이라고 하시면서 대동교와 직선으로 도로를 내고 대동문과도 직선으로 다리를 놓을것을 예견하여 그와 직선으로 또 하나의 거리를 형성하여야 하겠다고 그리고 그 거리들을 따라 살림집과 공공건물들을 많이 지으면 훌륭한 도시가 될것이라고, 동평양지구에 새로운 거리를 형성한 다음 앞으로 점차 문수리비행장쪽으로 통하는 대도로를 건설하고 거리를 형성하면 동평양은 기본적으로 꾸려지게 될것이라고 하시면서 도시형성과 거리형성의 전망에 이르기까지 환히 밝혀주시였다.
계속하시여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렇게 동평양에 새로운 거리를 잘 건설하면 민주수도 평양의 경치가 더욱 좋아질것이라고 뜨겁게 교시하시였다.
돌이켜보면 동서고금 어느 시대, 어느 력사의 갈피에 한나라의 수령이 이른 새벽 찬바람부는 강기슭의 험한 길을 걸으시며 아침식사도 미루고 인민들의 행복한 새 생활을 위해 인민사랑의 설계도를 펼치신적 있었던가.
동평양지구의 휘황한 설계도는 이렇듯 어버이수령님의 현명한 령도와 인민에 대한 뜨거운 사랑에 의해 펼쳐지게 되였다.
그후 동평양지구에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그날에 펼쳐주신 휘황한 설계도에 따라 우리 인민들의 문화적이며 편리한 생활에 이바지할 청년거리가 훌륭히 일떠서고 뒤이어 로동당시대를 자랑하는 문수거리가 시대의 기념비적건축물로 건설되게 되였다.
그리고 오늘은 경애하는 원수님의 웅대한 수도건설구상과 인민사랑, 후대사랑에 의해 문수물놀이장과 옥류아동병원, 류경치과병원과 류경안과종합병원을 비롯한 세상에 내놓고 자랑할만한 기념비적건축물들이 수많이 일떠서 동평양지구는 살기좋은 인민의 락원, 행복의 락원으로 전변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