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력사유적유물들은 우리 선조들이 투쟁과 창조적활동을 통하여 이룩한 귀중한 유산이며 후세에 길이 전해갈 민족의 재부입니다.》
우리 선조들의 뛰여난 슬기와 재능을 보여주는 력사유적유물들은 대를 이어 길이 전해갈 민족의 재부이다. 주체조선의 수도 평양의 풍치수려한 대동강반에 있는 평양종도 우리 민족의 슬기와 력사를 전해주는 귀중한 민족문화유산의 하나이다.
평양종은 대동문과 련광정사이에 있는 종각안 대들보에 걸려있다.
평양종은 처음 언제 만들었는지 모르나 대동문 웃층 문루안에 걸려있었다고 한다. 1714년에 평양성 북성을 고쳐 쌓을 때 그 북장대에 옮겨달았었는데 화재로 인하여 종이 깨여졌으므로 1726년에 다시 부어 만들었다. 새로 만든 이 종은 당시 객사였던 《대동관》앞(장대재중턱, 현재 평양학생소년궁전 정문으로 오르는 중간쯤)에 종각을 짓고 달았다가 1827년에 지금 있는곳으로 옮기였다.
이 종은 청동을 녹여 부어 약 4개월간에 걸쳐 만든것으로 전해진다.
종의 겉면에는 부처상, 사천왕상, 구름무늬, 팔괘무늬, 종을 만들게 된 연유를 밝힌 글 등이 돋우새겨져있다.
평양종은 조화롭고 균형이 잘 잡혀있어 우람하게 보이며 종머리에 틀어올린 쌍룡의 조각은 섬세하면서도 기운차보인다.
평양종은 조선봉건왕조시기 손꼽히는 큰 종들가운데 하나로서 모양이 아름답고 그 소리 또한 장중하여 일찍부터 《평양의 명물》로 일러왔다.
1890년대까지 평양성에서는 아침, 저녁에 울리는 평양종의 종소리로 모든 성문들이 동시에 여닫기였고 성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변들이 이 종소리로 알려졌다.
밤 10시에 28번 종을 울리면(이때 치는 종을 《인경》이라고 하였다.) 평양성의 성문들을 동시에 닫아 통행을 금지하였으며 새벽 4시에 33번 종을 울리면(이때 치는 종은 《파루》라고 하였다.) 성문들을 열고 통행을 하게 하였다.
외래침략자들의 침입을 알리는 경보를 울릴 때에는 종 치는 회수의 제한이 없었는데 이때에 울리는 종소리는 인민들의 가슴속에 적개심을 불러일으켰고 나라를 지키는 싸움에 분연히 떨쳐나서도록 고무하였다.
평양종은 탁월한 수령을 모시고 우리 인민이 이룩한 빛나는 승리를 전하여준 력사의 증견자이다.
이처럼 《평양의 명물》로 일러온 평양종은 우리 나라 종의 특징과 당시의 주조기술의 높은 발전모습을 잘 보여줄뿐아니라 우리 인민의 반침략투쟁력사와 빛나는 승리의 사변들을 전하여주는 력사의 증견자의 하나이다.
평양종소리는 우리 인민의 빛나는 승리의 메아리되여 영원히 울려퍼질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