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연구

유격대의 《어머니》로 영생하는 항일의 녀투사

 2023.1.30.

누구나 백두의 만병초를 눈앞에 그려보면 먼저 떠오르는 투사가 있다.

사나운 칼바람, 눈보라속에서도 꿋꿋이 피여있는 백두의 만병초와 같이 모진 시련과 역경속에서도 혁명신념과 절개를 굽히지 않고 오로지 위대한 수령님에 대한 충성으로 한생을 빛내인 항일의 녀투사 장철구동지!

위대한 수령님께서 크나큰 사랑과 믿음의 손길로 혁명의 길에 떳떳이 내세워주신 장철구동지는 류례없이 간고한 항일무장투쟁시기 수령님의 안녕과 건강을 위해 온갖 지성을 다한 사령부작식대원, 유격대의 《어머니》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부대에는 녀대원들이 수십명씩이나 있었고 작식대원들도 여럿이였지만 유독 장철구만은 〈어머니〉로 불리웠다.》 (김일성전집》 제100권 127페지)

주체25(1936)년 3월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새 사단을 무으시기 위하여 마안산에 나오시였다.

그날은 장철구동지에게 있어서 이 세상에 다시 태여난것과 같은 날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곳에서 100여명의 대원들에 대한 《유죄》를 증명하는 어마어마한 법적증거물인 《민생단》문서보따리를 불살라버리시고 그들모두를 주력부대에 받아들이시는 대용단을 내리시였다.

활활 타번지는 불길속에서 그처럼 저주하던 《민생단》문서들이 타버리는 광경을 바라보는 장철구동지의 뇌리에는 지나온 나날들이 주마등처럼 흘러갔다.

주체19(1930)년 7월 남편을 따라 혁명의 길에 나서던 일, 그로부터 4년후 연길현 왕우구유격구부근의 한 마을에서 부녀회사업을 하던중 좌경기회주의자들과 종파사대주의자들에 의하여 억울하게도 《민생단》의 루명을 쓰고 체포되던 일, 무죄로 석방은 되였으나 늘 《민생단》혐의자라는 딱지가 붙어다닌것으로 하여 겪던 마음속괴로움…

《민생단》문서를 태우며 솟구치는 그 불길은 장철구동지에게 있어서 가슴속에 얼어붙어있던 응어리를 순간에 녹여버리고 새로운 삶의 숨결을 안겨주는 재생의 불길이 아닐수 없었다.

그로부터 며칠후 장철구동지는 또다시 크나큰 사랑과 믿음을 받아안았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장철구동지를 친히 사령부에 부르시여 사령부작식대원으로 일하도록 하시였던것이다.

(사령관동지의 믿음과 사랑에 꼭 보답하겠습니다!)

이날 장철구동지는 북받치는 감사의 정으로 눈굽을 적시며 이렇게 마음속맹세를 다지였다.

이것은 위대한 수령님께 드리는 장철구동지의 영원한 충성의 맹세, 의리의 맹세였다.

장철구동지는 한생토록 이 맹세를 지키였다. 위대한 수령님에 대한 그의 충성심은 단 한순간도 변함이 없었으며 그 길에서 한치의 탈선도 몰랐다.

장철구동지는 사령부작식대원으로서 위대한 수령님의 입맛을 돋구어드리고 그이의 안녕과 건강을 위해 지성을 다 바치였으며 친어머니와 같은 극진한 사랑으로 대원들을 보살펴주었다.

그는 녀성의 몸으로 사령부의 작식을 위해 늘 남보다 더 큰 짐을 지고다니였고 대원들이 다 자는 깊은 밤에도 다음날의 식사준비를 위해 산나물을 다듬고 망질과 키질을 하면서 밤을 새우군 하였다. 그는 노상 불앞에서 살다싶이 하였다. 그때문에 옷도 남보다 갑절 빨리 해지였다.

언제인가 한번은 밀영에서 오락회가 벌어졌는데 장철구동지가 지명을 받았다.

전우들은 모두 그의 노래를 듣고싶어하는데 장철구동지는 훌쩍 일어나 숲속으로 달아나버리는것이였다.

그 돌발적인 행동은 모두를 어리둥절하게 하였다.

숲속으로 뛰여가는 그를 바라보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대원들에게 그 어머니가 대중앞에 나서지 못한것은 옷차림때문일것이라고, 동무들도 보았겠지만 철구어머니는 기운 옷을 입고있다고, 기운 자리가 열군데도 더 될거라고 하시면서 그런 옷으로 군중앞에 나서야 할 어머니의 심정을 생각해보라고 말씀하시였다.

자기보다 먼저 동지들을 생각하고 혈육보다도 더 살틀한 정으로 대원들을 돌봐준 장철구동지였기에 누구나 그를 어머니라 부르며 따랐다.

장철구동지보다 나이가 어방없이 많은 《대통령감》까지도 《철구어머니》, 《철구어머니》라 하여 웃음을 자아냈다.

사실 아무것도 없는 산속에서 작식을 한다는것이 보통 힘든 일이 아니였다. 그러나 그는 어떻게 하나 위대한 수령님의 식사에 한가지 찬이라도 더해드리려는 일념으로 늘 아글타글하였다. 그토록 어려운 속에서도 썩장을 만들었고 위대한 수령님께서 좋아하시는것이라면 100리길도 마다하지 않고 달려가 구해왔으며 식량이 떨어지면 적후에까지 내려가 얻어오군 하였다.

한번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장백현 19도구에서 병풍쌈을 잡수고오신 이야기를 하시면서 부루쌈보다 낫더라는 말씀을 하신적이 있었다.

여담삼아 하신 말씀이였지만 장철구동지는 그길로 수십리나 되는 19도구까지 달려가 병풍을 뜯어가지고 돌아와 위대한 수령님께 드리였다.

이렇듯 장철구동지는 위대한 수령님의 안녕과 건강을 위해서라면 서슴없이 한몸을 내댈줄 아는 진짜배기충신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장철구는 말그대로 유격대의 《어머니》였다고 하시면서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 친어머니가 돌아갔을 때처럼 비통한 감정에 휩싸이였다. 그는 모든 정성을 다하여 나를 친동기처럼 극진히 돌봐주었다. 그것은 사실 친어머니의 사랑에 못지 않은 사랑이였다고 감회깊이 회고하시였다.

한생을 변함없이 순결하고 진정어린 헌신으로 위대한 수령님께 무한히 충실한 장철구동지.

주작봉마루에서 투사는 오늘도 우리에게 이렇게 당부하고있다.

혁명하는 사람에게 있어서 수령의 믿음을 받아안는것보다 더 큰 행복과 영광은 없으며 그 어떤 역경속에서도 그 믿음을 귀중히 간직하고 의리로 보답할 때 인간의 생은 영원히 빛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