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인가 한 일본정객이 나에게 선물로 주려고 옛날 백제사람들이일본에 건너가 건설한 법륭사의 5층탑모형을 가지고왔는데 그는 일본의 문화가 오래전부터 조선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하였습니다. 일본의 문화가 조선의 영향을 받은데 대하여서는 일본사람들이 내놓고 말하고있습니다.》 (
반만년의 유구한 력사를 자랑하는 우리 민족은 발전된 문화를 창조하여 인류문화의 보물고를 풍부히 하였을뿐아니라 다른 나라의 문화발전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그것은 조선적성격이 강한 일본의 법륭사를 통해서도 잘 알수 있다.
법륭사는 중세일본에서 불교가 널리 퍼지기 시작한 아스까시대의 대표적인 유적이다.
나라현 이꼬마군 이까루가에 있는 법륭사는 세계에서 가장 오랜 목조건축물이다. 607년에 건설된 절은 670년 불에 탔으며 그후 재건되였다. 절간이 위치한 지명으로부터 이까루가사라고도 하는 법륭사는 우리 나라의 발전된 문화적영향을 많이 받은 조선적성격이 강한 유적이다.
법륭사의 조선적성격은 우선 건물의 구조형식과 구성수법에서 나타나고있다.
서원과 동원으로 구성되여있는 법륭사의 서원 서쪽에는 탑이, 동쪽에는 금당이 나란히 서있고 탑과 금당의 가운데에는 중문이 있다. 회랑안에 5층탑과 금당이 좌우로 나란히 놓인 이러한 형식은 고구려사원의 고유한 형식인 1탑 3금당식에서 변화된 1탑 1금당식이다.
법륭사의 배부른기둥, 두공, 기와, 기단을 비롯한 건물의 구조형식은 고구려건축과 일련의 공통성을 가지고있으며 기와막새와 기단을 비롯한 여러 건축요소들에서는 백제적성격도 나타나고있다.
금당에 채양간을 단 형식은 백제의 정림사금당이나 신라황룡사금당의채양간형식과 같고 5층나무탑은 그 차례줄임이 백제정림사 5층돌탑의것과 같다. 이외에도 법륭사탑에 고마자(高麗尺) 즉 고구려자가 쓰이였다.
법륭사의 조선적성격은 또한 회화와 공예, 조각들에서도 나타나고있다.
중세회화사의 걸작으로 널리 알려져있는 금당벽화와 나무공예품인 옥충주자, 여러 불상조각들에는 조선적성격이 강하게 나타나고있다.
불교관계의 그림들과 비천이 그려져있는 법륭사의 금당벽화는 610년 고구려의 담징에 의하여 창작된것이며 부처를 넣어두는 함인 《옥충주자》는 고구려공예수법에 기초하여 백제공예가들이 만든것이다.
높이가 233.3㎝인 주자의 뚫음무늬장식바탕에는 딱정벌레(길정충 또는 옥충) 1 200여마리의 금록색날개 2 500여매를 깔았다. 여기로부터 이 주자를 옥충주자라고 부르게 되였다.
닫음문에 그려진 장식그림의 착상과 구도, 딱장벌레의 날개를 장식으로 리용한것 등은 고구려에서 기원한 독특한 미술기법이다.
또한 석가여래3불상을 비롯하여 법륭사에 있는 거의 모든 불상조각들은 고구려출신의 조각가 도리에 의하여 직접 만들어졌거나 그의 기법을 구현한것이며 보장전에 있는 백제관음상은 백제조각가들에 의해 만들어진것이다.
6세기를 전후한 시기에 창작된것으로 추측되는 관음상은 몸체와 얼굴의 비례를 8:1로 함으로써 보통부처(비례가 5:1 혹은 6:1)에 비하여 몸체가 길고 얼굴이 작은것이 특징이며 또한 곧바로 서있는 자세를 기본으로 형상하여 조각의 수직적인 운동감을 강조하고있다. 이외에도 몸체의 미묘한 움직임과 탄력있고 부드러운 느낌이 조각전체에 깃들도록 한 백제관음상의 특징은 백제조각가들의 노력과 재능을 잘 보여준다.
이처럼 법륭사는 건축의 구조형식과 구성수법으로부터 시작하여 그림과 공예품, 불상조각 등에서 조선적성격 특히 고구려적성격이 강한 유적이다.
이상의 력사적사실은 우리 나라가 중세 일본의 문화발전에 큰 영향을 주었다는것을 뚜렷이 보여주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