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사람들은 누구나 어려서부터 말타기와 활쏘기, 칼쓰기와 창쓰기를 비롯한 무술을 배웠습니다.》 (
고구려는 광활한 령토와 강한 군사력, 발전된 문화를 가진 동방의 강국, 선진문명국이였으며 중세 우리 나라 력사발전에서 중심적이고 선도적인 역할을 한 나라였다.
고구려는 끊임없이 밀려드는 외적의 침공을 물리치고 나라와 민족의 자주권을 굳건히 고수하였으며 광대한 령토를 차지하고 삼국통일을 거의 완성단계에 올려세웠다.
고구려가 동방의 강국으로 등장하여 큰 역할을 놀수 있었던것은 무예를 중시한 고구려사람들의 상무기풍과 중요하게 관련되여있다.
고구려사람들은 누구나 어려서부터 활쏘기재주를 배우고 꾸준히 익혀 활을 잘 쏘았으며 고구려에는 활쏘기명수로 이름을 날린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삼국사기》에 실려있는 고구려건국전설에 의하면 고구려를 세운 시조왕인 동명왕은 어려서부터 활을 비상히 잘 쏘았다고 한다. 《삼국사기》의 기록에도 있는것처럼 주몽이라는 말은 활 잘 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동명왕은 어릴 때 어머니가 만들어준 활로 물레우에 앉아있는 파리를 쏘아맞히였으며 7살때 제손으로 활과 화살을 만들어 쏘았는데 언제나 백발백중하였다고 한다. 그는 활을 매우 잘 쏘았기때문에 주몽이라고 불리우게 되였다. 활을 잘 쏘았던 주몽은 100보밖에 걸어놓은 자그마한 가락지도 단번에 명중시켜 이름을 날리였다고 한다.
기록에 의하면 동명왕의 맏아들 유류(고구려2대왕)도 활을 아주 잘 쏘았다고 한다. 유류왕이 어느날 동네아이들과 함께 활쏘기를 하다가 한 녀인의 물동이를 맞힌 일이 있었는데 그때 화살에 뚫린 물동이 구멍으로 물이 뿜어나오기 시작하자 유류왕은 화살끝에 진흙을 묻혀 다시 쏘아 물동이에 난 화살구멍을 메워 뿜어나오던 물을 순식간에 멈춰세웠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동명왕의 아들 유류도 활쏘기재주가 비상했다는것을 말해주는 자료이다.
동명왕과 그의 아들이 활을 아주 잘 쏘게 된것은 어려서부터 활쏘기재주를 배우고 꾸준히 익힌 결과라고 할수 있으며 고구려에서 활쏘기가 널리 성행하였다는것을 말하여준다.
《삼국지》위지 고구려전에는 이 나라에는 어느 마을에 가든지 경당이라는것이 있는데 여기서 결혼전의 청년들이 모여 글도 읽고 무술도 련마하였다고 기록되여있다. 글을 읽고 무술을 련마하는 경당이 마을마다 있었다는것은 활쏘기 등 무술을 배우고 익히는 기풍이 고구려사람들속에서 널리 보편화되였다는것을 보여주고있다. 활쏘기를 배우고 익히는것은 고구려사람들속에서 일반화되고 생활화된 기풍이였다.
활쏘기기술이 대중화되고 보편화됨으로써 고구려에는 높은 사격술을 지닌 우수한 사수들이 많았으며 그것은 전쟁마당에서 수적으로 우세한 적들을 소멸하고 전쟁의 승리를 이룩할수 있게 한 중요한 요인의 하나로 되였다고 말할수 있다.
고구려사람들이 뛰여난 활쏘기재주를 가질수 있은것은 그들이 조국의 방위를 위해 충성다하는것을 가장 영예로운 일로 생각하였으며 당시 고구려에 무술을 숭상하는 상무의 기풍이 강하게 지배하고있었기때문이다.
고구려사람들은 오락이나 경기를 하여도 무술을 기본으로 하였다. 《삼국사기》에서 찾아볼수 있는것처럼 고구려사람들은 해마다 3월 3일이 되면 락랑언덕에 모여 대규모의 사냥경기를 벌리군 하였다. 이날에는 왕과 대신들도 나오고 5부의 병사들과 전국의 이름있는 말타기, 활쏘기명수들이 경기에 참가하였는데 이 사냥경기는 말타기와 활쏘기가 결합된 경기였다. 사냥경기에서의 승부는 명백히 누가 더 많은 짐승을 잡았는가 하는데 따라 결정되였다.
고구려에서는 사냥경기를 무술에 능한자를 뽑는 중요한 계기로 보고 이 과정을 통하여 말타기와 활쏘기를 잘하는 많은 무사들을 선발하였다.
고구려무사들이 말을 타고 내달리며 범과 같은 짐승을 쏘아잡는 사냥과 사냥경기는 그대로 말타고 활쏘기와 같은 무술을 익히고 시험하는 중요한 계기로 되였다.
어려서부터 말타기와 활쏘기를 비롯한 무술을 익히고 몸을 단련하였던 고구려사람들은 집짐승기르기와 사냥 등 일상적인 생산활동을 통하여 말타기와 활쏘기재주를 더욱 련마하였다.
고구려사람들은 사냥과 사냥경기를 즐겨하였다.
고구려는 농업을 위주로 하는 나라였으나 고구려의 경제생활에서 목축업과 사냥이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고있었다.
당시 사냥방법에서 기본은 말을 타고 활로 짐승을 쏘아잡는것이였다.고구려무덤벽화를 보면 사람들이 말을 타고 산발을 주름잡아 질풍처럼 내달리면서 활로 사슴과 범을 비롯한 큰 짐승을 사냥하는 통쾌한 장면을 많이 찾아볼수 있다. 씨름무덤의 사냥그림과 같이 달아나는 범을 향해 활을 겨누고 내달리는 사수들의 모습은 보기만 해도 힘이 솟고 장쾌한 감을 느낄수 있다.
고구려사람들은 씨름, 수박희와 같은 경기도 많이 하였다.
4세기말에 그려진 고구려의 씨름무덤벽화에서 씨름장면을 볼수 있는데 름름한 체구를 가진 두 씨름군이 웃동을 벗고 서로 승부를 겨루는데 옆에서는 심판인듯 한 늙은이가 지팽이를 짚고 지켜보고있는 그림이 생동하게 형상되여있다.
수박희는 손으로 상대방을 쳐서 넘어뜨리는 경기였다. 고국원왕릉과 춤무덤의 무덤벽화에는 두사람이 마주서서 손을 들어 서로 상대방을 치려는 재미있는 장면이 생동하게 묘사되여있다. 그 모습은 18세기에 우리 나라에서 출판된 《무예도보통지》에 있는 수박-권법을 설명한 그림들과 서로 비슷하다.
고구려시기의 수박은 전투적이고 실용적이였기때문에 오래동안 존재하였고 그 이후시기에도 중요한 무술훈련종목의 하나로 되여있었다.
고구려시기에는 국가적으로 무술을 적극 장려하였다고 말할수 있다. 고구려에서는 사람을 평가하고 등용하는데서 무술에 능하고 지혜와 용맹성이 있는가를 중요하게 보았다. 미천한 온달이 사냥경기에서 우승하고 높은 벼슬자리에 올랐으며 외적을 반대하는 싸움에서 용맹을 떨치였다는 이야기가 그것을 잘 보여주고있다. 고구려사람들은 어떤 강적과 맞다들어도 두려움을 몰랐으며 언제나 신심에 넘쳐 용감하게 싸워 물리치군 하였다.
력사적사실은 고구려사람들이 의지와 신체를 단련하고 무술을 배워 고구려를 강대한 나라로 만드는데 적극 이바지하였다는것을 확증해주고있다. 고구려사람들은 어려서부터 조국을 사랑하는 정신으로 교양되고 무술을 숭상하였기때문에 높은 민족적긍지와 자부심을 가지고 외래침략자들의 거듭되는 침입을 물리치고 나라의 영예와 민족의 존엄을 지킬수 있었다.
이처럼 고구려에서는 사람들이 활쏘기를 비롯한 무술을 일상적으로 배우고 익히였으며 이러한 상무의 기풍은 고구려가 동방의 강국으로 이름떨칠수 있었던 중요한 요인의 하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