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연구

탄전에서 맞으신 예순다섯돐생신날

 2019.7.10.

우리 인민들은 오늘도 어버이수령님께서 석탄생산을 위해 그토록 마음쓰시며 65돐생신날도 탄전에서 보내신 가슴뜨거운 날들을 돌이켜보군 한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수령님께서는 언제 한번 편히 쉬지 못하시고 팔순이 넘은 고령에도 공장과 농촌을 찾아 끊임없는 현지지도의 길에 계시였다. 세상에우리 수령님처럼 혁명을 위하여, 인민을 위하여 헌신하며 생애의 마지막시기까지 초인간적인 정력으로 모든 사업을 깨끗이 마무리하고 집무실에서 순직한 위대한 혁명가는 없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석탄생산을 위해 개천, 안주지구탄광들에 대한 현지지도의 길을 떠나신것은 주체66(1977)년 4월 생신날을 며칠 앞둔 때였다.

이해에 우리 나라에서는 례년에 없는 왕가물이 시작되여 4월에 들어서서도 전국적으로 강수량이 전혀 기록되지 않고있었다.

가물로 인하여 수력발전소들에서 전력생산이 지장을 받아 전력사정이 긴장해지는것을 제일 걱정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최상의 방도를 화력발전소들을 만가동시키는것으로 보시고 석탄생산을 늘이기 위하여 개천, 안주를 비롯한 탄광지구들을 찾으실것을 결심하시였다.

그리하여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생신날을 며칠앞두고 개천, 안주지구에 대한 현지지도의 길에 오르시게 되시였다.

현지에 도착하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잠시의 휴식도 없이 몸소 탄부들과 무릎을 마주하시고 그들의 집안살림도 헤아려주시고 더 많은 석탄을 캐기 위해서는 무엇을 더 해결해주면 되겠는가, 후방공급은 어떠한가를 세세히 알아보시였으며 밤이면 일군들로부터 탄광들의 실태를 구체적으로 보고받으시고 걸린 문제들에 대하여서는 다음날 협의회를 소집하시여 제기되는 문제들을 하나하나 풀어주시였다. 탄광뿐아니라 주변의 여러 협동농장들을 찾으시여 농사형편도 알아보시고 현지에서 가물피해를 미리막기 위한 회의도 소집하시였으며 그처럼 바쁘신 속에서도 친히 연풍고등중학교(당시)에 나가시여 4월의 명절을 맞으며 한날한시에 새옷을 받아안은 학생들의 사진을 찍어주시기도 하시였다. 이처럼 시간은 흘러 어느덧 명절을 하루 앞두게 되였다.

4월 14일 저녁 일군들이 위대한 수령님께서 계시는 곳으로 찾아와 평양으로 떠나실 시간이 되였다고 간절히 아뢰이자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사람마다 다 생일이 있는 법인데 이 바쁜 때에 내라고 어떻게 생일을 쇠겠는가, 모두들 올라가지 말고 여기서 휴식하면서 나와 같이 일을 하자고 말씀하시는것이였다. 그러시면서 나에게는 석탄이 많이 생산되면 그보다 더 큰 휴식이 없다고 하시며 다시금 석탄생산과 관련한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그날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휴식하실것을 간절히 아뢰는 일군들에게 석탄걱정때문에 잠을 잘수가 없다고, 아무래도 자신께서 막장에 들어가 석탄을 좀 캐보아야 할것 같다고 하시였다.

당황한 일군들이 지금 수령님 년세가 얼마이시기에 그런 말씀을 하시는가고 어쩔바를 몰라하며 말씀올리자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깊은 생각에 잠기시였다가 내 나이 한 10년만 젊었어도 막장에 들어가 탄을 꽝꽝 캐보겠다고 준절히 말씀하시였다.

얼마나 석탄때문에 걱정하셨으면 탄생 65돐을 눈앞에 두신 우리 수령님께서 막장에 들어가 탄을 캐보시겠다고 하셨으랴.

그 순간 일군들은 우리 수령님을 우러르며 쏟아져나오는 눈물을 걷잡을수 없었다.

이렇게 밤이 새고 드디여 민족최대의 경사의 날인 어버이수령님의 탄생 65돐이 되는 4월 15일 아침이 밝아왔다.

그런데 생신날 이른새벽 위대한 장군님께서 어버이수령님께 축원의 인사를 드리시러 기별도 없이 찾아오실줄 어이 알았으랴.

뜻밖에 나타나신 위대한 장군님을 보시고 몹시 놀라와하시는 어버이수령님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계획한 일들이 많아 몸을 뺄 사이가 없어서 이렇게 새벽에 찾아와 인사를 올리고 가려고 했다고 말씀올리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과 함께 새벽안개가 감도는 산촌의 길을 나란히 걸으시며 따뜻한 대화를 나누시던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문득 걸음을 멈추시며 이제는 돌아가야 되겠다고 하시면서 어버이수령님과 아침식사도 함께 하시지 못하신채 또다시 길을 떠나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으시는듯 몇걸음 옮기시다가 되돌아서시여 일군들에게 오늘만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쉬실수 있게 최선을 다해 일과조직을 해야 하겠다고 당부하시고서야 차에 오르시였다.

생신날을 맞으시는 우리 수령님을 축하해드리려 이른새벽 먼길을 달려오시고서도 생신날도 쉬지 못하시고 현지지도의 길에 계시는 어버이수령님의 로고를 덜어드리기 위하여 서둘러 되돌아서시는 우리 장군님이시였다.

위대한 장군님의 그 충정의 모습을 지켜보시던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못내 감동되시는듯 김정일동지가 나의 부담을 덜어주고 인민의 행복을 위해서 저렇게 불철주야로 사업하고있는데 내가 어떻게 가만히 앉아 휴식할수 있겠는가고 하시며 우리도 빨리 아침식사를 간단히 하고 김정일동지처럼 일을 하러 떠나자고 하시는것이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예순다섯번째 생신날은 이렇게 탄전에서 흘러갔다.

어찌 이날뿐이랴.

소박한 생일상마저도 마다하신 생신날은 얼마이며 조국의 번영과 인민의 행복을 위해 현지지도의 길에서 맞으신 생신날은 그 얼마였던가.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개천과 안주지구탄광들에 대한 지도사업을 끝내시고 4월 18일 현지에서 당중앙위원회 정치위원회 확대회의를 소집하시여 개천, 안주지구 탄광들에서 석탄생산을 결정적으로 늘일데 대한 문제를 토의하시고서야 평양으로 올라가시였다.

참으로 인민을 위해 모든것을 깡그리 바쳐가시는 위인들의 숭고한 풍모와 헌신속에 너무도 평범하게, 너무도 가슴아프게 맞이한 어버이수령님의 생신날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