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종합대학 법학부 박사 부교수 리성일
2022.6.10.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 수령님께서는 생전에 가금업을 발전시키시려고 끊임없는 현지지도의 길을 걸으시며 많은 로고와 심혈을 바치시였습니다.》 (《김정일선집》 증보판 제21권 28페지)
이민위천을 천품으로 지니신 위대한 수령님은 조선인민모두가 백미밥에 고기국을 먹으며 비단옷을 입고 기와집에서 사는것을 평생의 소원으로 여기시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하여 온갖 심혈과 로고를 다 바치신 인민의 자애로운 어버이이시였다.
인민에 대한 위대한 수령님의 뜨거운 사랑과 헌신을 전하는 많고많은 이야기들중에는 인민들에게 닭고기와 닭알을 풍족하게 먹이시려고 어느 한 군을 찾으시여 공짜나 다름없는 《닭공장》들이 나라의 곳곳에 솟아날수 있는 방도를 다심히 가르쳐주신 이야기도 있다.
주체59(1970)년 3월 27일 한낮이 기울무렵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중화군량정사업소의 정미공장을 찾으시였다.
공장일군들과 인사를 나누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웃으시며 공장뒤골목을 좀 보자고 왔다고 하시며 참새떼가 무리를 지어 날아내리는 공장뒤로 향하시였다.
예상치 않던 일이라 일군들은 당황해하며 벼겨와 북데기가 가득 쌓여있던 그곳은 험한 곳이라고 사실대로 말씀드렸다.
일군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공장뒤에 이르시여 벼겨무지에서 벼겨를 한줌 드시고 손으로 헤쳐보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옷자락이며 신발우에는 먼지가 마구 내려앉았다.
일군들은 송구함을 금치 못하며 일만 일이라고 하면서 생산문화에 무관심했던 자신들을 후회하였다.
그런데 벼겨속에서 무엇인가 계속 찾으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문득 닭이 먹을것이 많다고 하시였다.
그이께서 헤쳐보시던 벼겨속에는 벼겨와 함께 정미기에서 불려나온 쌀겨, 풀씨와 쭉정벼가 많이 섞여있었다.
그때 벼겨무지뒤에서 먹이를 쫒던 수십마리의 참새떼가 인기척에 놀라 후르륵 날아올랐다.
허리를 펴시고 날아가는 참새떼를 이윽히 바라보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가 세간살이를 할줄 모른다고, 이런 형편이면 닭 2 000마리를 넉넉히 기를수 있다고 조용히 말씀하시였다.
그때에야 영문을 깨닫게 된 일군들은 자신들을 자책하였다. 낟알찧는 정미소에 참새떼가 찾아들기마련이라는 굳어진 관념과 자신들이 인민생활을 책임진 호주라는 자각이 없었던것으로 하여 벼겨무지를 닭먹이로 볼수가 없었던 그들이였다.
하지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참새떼가 모여드는 벼겨무지에서 수천마리의 닭을 기를수 있고 인민들에게 더 많은 닭고기와 닭알을 공급해줄수 있다는것을 순간에 헤아려 보신것이였다.
이날의 위대한 수령님의 말씀은 옆에 있는 숱한 닭먹이원천을 스쳐보냈던 일군들의 그릇된 사고와 일본새를 깨우쳐주었다.
그후 온 나라의 정미공장들에서 많은 닭을 치게 되였다. 그야말로 공짜로 얻은 《닭공장》들이였다.
정녕 위대한 수령님처럼 인민을 끝없이 아끼고 사랑하시며 인민을 위하여 한평생을 바쳐오신 수령은 이 세상에 없다.
오늘 조선인민은 위대한 수령님의 이민위천의 사상과 천품을 그대로 이어받으시고 인민을 운명의 하늘로 여기시며 인민의 충복으로서 위민헌신의 길을 끊임없이 이어가시는 경애하는 총비서동지를 혁명의 수위에 높이 모신 크나큰 영광과 긍지를 안고 경제강국건설과 인민생활향상을 위한 투쟁을 힘있게 벌려나가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