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종합대학 력사학부 부교수 박철
2020.10.25.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는 영생불멸의 주체사상에 기초하여 사회주의농촌문제해결에 관한 독창적인 사상리론을 제시하시고 그것을 빛나게 구현하시여 사회주의농촌건설의 전인미답의 길을 승리적으로 개척하시고 우리 나라 농촌의 세기적전변을 안아오신 걸출한 사상리론가이시며 혁명의 탁월한 영재이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사회주의농촌건설에서 이룩하신 불멸의 업적가운데는 농촌경리의 종합적기계화를 농업의 공업화, 현대화를 실현하기 위한 중요한 과업으로 내세우시고 그 관철을 위한 투쟁을 현명하게 조직령도하시는 과정에 뜨락또르리용권을 협동농장에 넘겨주는 새로운 뜨락또르리용체계를 세워주신 불멸의 로고도 뜨겁게 아로새겨져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뜨락또르를 비롯한 농기계를 잘 관리하고 효과적으로 리용하는것은 농촌경리의 발전을 위하여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김일성전집》 제36권 69페지)
농촌경리의 기계화를 다그치는것은 농촌에서 긴장한 로력문제를 풀고 농민들의 로동을 헐하게 하여주며 생산을 늘이고 농업생산물의 원가를 낮추기 위한 필수적요구였으며 특히 사회주의협동경리제도의 우월성을 높이 발양시키고 농업근로자들에게 자주적이며 창조적인 로동생활을 보장하기 위한 확고한 담보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현명한 령도밑에 사회주의기초건설시기 농촌기술혁명이 추진되는데 따라 농촌에서 뜨락또르와 련결농기계를 비롯한 여러가지 농기계들이 많이 늘어났다.
그러나 뜨락또르의 리용률은 높지 못하였으며 농촌에서 기계화작업범위를 늘이고 그 질을 높일데 대한 요구도 제대로 관철되지 않고있었다. 그 주되는 원인은 뜨락또르의 소유권과 함께 리용권을 농기계작업소(당시)가 다 가지고있었기때문이였다.
농기계작업소에서 뜨락또르작업계획을 세워 내려보내다나니 그것이 협동농장의 작업계획과 맞을리 없었다.
이러한 현상은 농촌경리의 종합적기계화의 실현을 저애하는 요인으로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농기계리용에서 나타나고있는 이러한 페단을 제때에 헤아려보시고 주체54(1965)년 11월 당중앙위원회 제4기 제12차전원회의에서 뜨락또르리용체계를 개선하며 뜨락또르작업료를 낮출데 대한 혁명적방침을 제시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전원회의가 있은 며칠후인 주체54(1965)년 11월 20일 청산협동농장을 찾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안팎의 정세가 복잡하고 나라의 경제형편이 어려웠던 제1차 5개년계획의 첫시기에 우리 당이 모든 곤난을 무릅쓰면서 로동계급을 뜨락또르생산에로 불러일으킨 목적이 어디에 있는가, 농사일을 기계화하여 농민들을 힘든 로동에서 해방하며 농업생산을 늘이려고 우리가 악전고투하면서 뜨락또르를 만들어내지 않았는가, 그런데 뜨락또르가 마사질가봐 걱정부터 앞세우거나 작업료때문에 뜨락또르를 잘 쓰려고 하지 않아서야 농민들이 언제 허리를 펴보겠는가고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계속하시여 자신께서는 뜨락또르가 좀 마사지고 국가가 좀 밑지는 한이 있더라도 우리 농민들이 기계를 실컷 써보았다는 말을 들었으면 소원이 풀리겠다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순간 방안에는 감동의 물결이 세차게 굽이쳤다.
이윽하여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 농민들을 힘든 일에서 벗어나게 할수만 있다면 무엇을 아끼겠는가고 하시면서 로동계급이 좀더 수고하더라도 농민들에게 더 많은 농기계들을 만들어주자고 교시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청산리를 다녀가신 후 협동농장들에서 현물세와 관개사용료, 뜨락또르작업료로 국가에 바치는 현물은 얼마나 되며 농장원들의 평균수입은 얼마나 되는가, 작업료를 낮추는 경우 국가가 어느만큼 밑지며 농민들은 어느만큼 리득을 보게 되는가 하는것들을 구체적으로 알아보시고 일군들과 여러차례의 협의도 하시였다.
이처럼 깊은 연구와 협의를 통하여 결심을 내리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영농작업을 직접 맡아하는 일군들의 의견을 들어보시려고 또다시 이 농장에 나오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먼저 군안의 협동농장들과 농기계작업소 일군들로부터 뜨락또르의 작업실태와 관리운영정형을 료해하시였다.
그러신 다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뜨락또르를 협동농장소유로 넘겨주면 값도 물어야 하고 관리도 자체로 해야 하므로 농장이 오히려 더 큰 부담을 걸머지게 될것이라고 하시면서 아직은 국가소유인 뜨락또르를 협동적소유로 넘길 필요가 없다고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뜨락또르가 농업생산에 더 잘 복무하게 하자면 운전수들에 대한 교양을 강화하는 한편 그 관리운영체계를 고쳐야 한다고, 다시말하여 뜨락또르에 대한 소유권은 국가에 있고 그 리용에 대한 권한은 협동농장에 주어야 한다고 교시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계속하여 뜨락또르를 관리운영하는데서 제기되는 실무적인 문제들을 일일이 가르쳐주신 다음 우리 농민들을 위한 일인데 국가가 손해를 좀 보면 뭐라는가고 하시면서 뜨락또르작업료를 거의 절반이나 낮추어주도록 하시였다.
이것은 우리 농민들을 힘든 일에서 해방하기 위해서라면 그 무엇도 아끼지 않으시는 어버이수령님께서만이 베푸실수 있는 위대한 사랑, 크나큰 배려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며칠후에는 뜨락또르를 협동농장에 배속시키는것은 강서군만이 아니라 전국적으로 다 그렇게 할데 대하여 조치를 취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새롭게 세워주신 뜨락또르관리운영체계는 농촌경리의 종합적기계화를 다그쳐 힘든 농업로동을 헐하게 하고 농업생산을 늘이는데서 획기적인 계기로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취해주신 조치에 따라 우리 나라에서는 주체54(1965)년말에 뜨락또르리용체계를 개편하는 사업이 조직진행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새로운 뜨락또르리용체계를 세워주심으로써 농촌경리의 종합적기계화를 다그치고 협동농장의 계획화, 조직화수준이 더욱 높아지게 되였으며 전인민적소유와 협동적소유의 직접적인 생산적련계를 강화하여 두 소유를 더욱 유기적으로 결합시킬수 있게 되였다.
또한 우리 나라에서는 협동경리에 대한 국가적방조를 강화하여 농촌기계화를 적극 추진시키며 사회주의농촌경리제도를 더욱 공고발전시켜나갈수 있는 중요한 사회경제적조건이 마련되게 되였다.
참으로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는 나라의 농업발전과 우리 농업근로자들을 어렵고 힘든 로동에서 해방시키기 위하여 자신의 모든것을 다 바치신 혁명의 영재, 인민의 자애로운 어버이이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