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조선말은 표현이 매우 풍부하여 어떤 복잡하고 다양한 사상감정이든지 능히 섬세하게 나타낼수 있다.》 (
조선말은 어휘가 풍부할뿐만아니라 문법적의미를 나타내는 표현수단들이 아주 치밀하게 발달되여있기때문에 그 어떤 복잡하고 다양한 사상감정도 구체적으로 섬세하게 나타낼수 있다.
여기서 부정의 의미를 나타내는 표현들도 례외로 되지 않는다.
사람들사이의 교제내용의 목적과 폭은 다양하지만 론리적측면에서 보면 긍정과 부정의 측면으로 볼수 있다.
긍정은 사람들이 어떤 사실에 대해서 그것이 그렇다는것을 인정하거나 그것이 옳다고 찬성하는 태도라면 부정은 어떤 사실에 대해 그렇지 않다는것을 인정하거나 옳지 않다고 반대하는 태도이다.
조선말의 많은 어휘들과 문법적의미의 표현수단들로는 긍정과 부정의 완전한 의미는 물론이고 양태적의미의 미세한 정도적차이까지도 구체적으로 나타낼수 있다. 그러므로 부정의 표현형태들은 긍정에 비해 그리 많지는 않지만 소홀히 할수 없는것이다.
일부 문장들에서 보면 부정의 의미로 표현은 되였지만 문맥상 긍정의 뜻으로 리해될 때도 있고 또 이와 반대로 리해되는 경우도 있기때문에 긍정에 대한 리해와 함께 부정에 대한 정확한 리해는 우리 말의 고유한 특성의 측면에서 보나 실천적견지에서 보나 중요한 문제이다.
문법적의미의 표현수단에서 기본은 토이다. 그것은 토가 다양한 문법적형태를 이루면서 풍부한 문법적의미를 나타내기때문이다.
부정의 의미는 토에 의해서도 나타나고 어휘적표현들에 의해서도 나타난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이러한 언어적요소들을 다 포함하여 보기로 한다.
부정의 의미를 나타내는 언어적요소에는 첫째로, 문법적의미의 표현수단인 토 《지》가 있다.
문법책들에서 토《지》를 서술적형태와 결합하여 부정의 의미를 나타내는 접속토 혹은 부정의 의미를 나타내는 단어와 맞물려 부정의 뜻을 가지고 수식어적역할을 하는 상황토라고 명명하고있다. 여기서 접속토나 상황토나 그 명명은 서로 다르지만 의미적측면에서는 부정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있다.
조선말에서 부정의 의미를 나타내는 《지》는 언제나 뒤에 《아니하다, 말다, 못하다》를 요구하면서 부정의 뜻을 나타낸다.
우선 부정의 의미를 나타내는 토《지》는 《아니하다》, 《못하다》와 결합하여 부정의 뜻을 나타낸다.
《아니하다》, 《못하다》는 각각 부사 《아니》와 《못》이 동사《하다》와 결합한것이다.
※ 아니하다 – 안하다-않다
토《지》와 결합할 때 《아니》와 《못》은 《하다》와만 결합하여 쓰인다. 이때 부사 《아니》, 《못》은 수식적기능을 상실하고 하나의 굳어진 부정형태로만 쓰인다.
《아니하다》, 《못하다》는 결합형식은 같지만 의미표현에서는 서로 차이를 가지고있다.
《아니하다》는 이야기하는 사람이 그 어떤 행동을 의도적으로 그만두었을 경우에 쓴다면 《못하다》는 이야기내용의 실현이 그 어떤 객관적조건에 의하여 실현되지 못했을 경우에 쓴다.
① 그는 봉숙이에게서 책을 받지 않았다.
② 철영이는 이미 마음속의 동요가 생겨 몇걸음 옮기지 못하였다.
③ 철영이의 말에 두 사람은 아무런 대꾸도 못하였다.
실례 ③에서처럼 토 《지》가 일부 생략되여 쓰일수도 있으나 문법적의미의 실현에서는 실례 ②의 문장과 차이가 없다.
또한 부정의 의미를 나타내는 토 《지》는 단어 《말다》와 결합하여 부정의 뜻을 나타낸다.
단어《말다》는 토《지》와 결합하여 부정, 반대, 금지의 뜻을 나타내지만 여기서 단어 《말다》의 기본의미는 금지이다.
부정의 한 측면인 금지는 그 무엇을 못하게 한다는 뜻으로 앞단어에 토 《지》가 오는 경우에 명령문, 권유문의 형식으로 쓰인다.
∘ 잔디밭에 들어가지 마시오.
∘ 잔디밭으로 다니지 맙시다.
서술문의 경우에는 《지 말다》가 의무성의 표현과 함께 부정의 의미로 쓰인다.
∘ 잔디밭에 들어가지 말아야 합니다.
우의 문장들에서 《금지》의 의미는 단순히 단어 《말다》자체에 있는것이 아니라 토 《지》와 함께 나타나고있다.
단어《말다》는 토 《지》와 결합하여 부정의 의미를 나타내지만 토 《지》가 없이도 체언에 붙어 부정의 의미를 나타내기도 한다.
∘ 나에게 이 책말고 저 책을 주십시오.
체언을 부정할 때 단어 《말다》는 《말고》형으로 쓰인다. 이때 체언단어는 같은 계렬의 단어들로 쓰이면서 앞단어를 부정하고 뒤단어를 긍정한다.
이외에도 《말다》는 토 《지》와 결합하지 않고도 아주 다양하고 풍부한 뜻을 나타내는 단어이다.
부정의 의미를 나타내는 언어적요소에는 둘째로, 《아니다》가 있다.
《아니다》는 문장형식에 구애됨이 없이 체언술어뒤에서 부정의 뜻을 나타내는 전형적인 단어이다.
《아니다》는 《아니+이다》로서 부사 《아니》와 《이다》가 결합된것이다. 여기서 《이다》는 체언술어를 만드는 형태로서 대상에 서술적기능을 부여할뿐 뜻은 없다.
《아니다》는 《이다》와 상반되는 관계속에 있으면서 주로 《이다》로 끝나는 단어를 부정한다.
∘ 이것은 책이 아니다. (대상부정)
∘ 이것은 보는것이 아니다.
《아니다》는 특수하게 종결토 《라》와 결합하여 《…이 아니라》라는 하나의 공고한 부정형태로도 쓰인다.
∘ 이것은 책이 아니고 사전이다. (일반부정)
이것은 책이 아니라 사전이다. (강조부정)
우의 문장에서는 토 《고》와 《라》에 따라 문장의 양태적의미가 달라지고있다.
그런데 《…가/이 아니라》의 형태는 문장의 임의의 단위에 붙어서 그 하나만을 부정한다. 이때 문장에는 부정하는 단어와 함께 긍정하는 같은 계렬의 단어가 동시에 나타난다.
∘ 철남동무가 아니라 영수동무가 왔다.
∘ 그는 어제가 아니라 그제 왔다.
∘ 그는 교실에서가 아니라 도서관에서 공부한다.
∘ 그는 로력영웅이 아니라 공화국영웅이다.
이외에도
∘ 그것은 푸르게가 아니라 검게 보인다.
∘ 그는 놀러가 아니라 공부하러 갔다.
∘ 그 단어는 《가다》가 아니라 《오다》이다.
부정의 의미를 나타내는 언어적요소에는 셋째로, 《커녕, 고사하고, 둘째치고》가 있다.
우선 《커녕》은 부정의 의미를 나타내는 문법적표현수단으로서 일반적으로 《는/은》과 함께 어울려 쓰인다. 《커녕》과 결합하면 그 단어는 물론 뒤에 오는 동종의 단어까지도 부정의 빛갈을 나타낸다.
단어에 토 《커녕》이 붙으면 두 단위중 앞단위의 실현도 불가능하고 뒤단위의 실현도 불가능하다는 뜻을 나타낸다. 그러나 일부 경우에는 기준보다 낮은 정도를 나타낼수도 있다.
① 그는 무술경기에 참가하였지만 이름을 떨치기는커녕 꼬리등수에도 들지 못하였다. (앞뒤단위부정)
② 로인은 죽어도 동정은커녕 더러운 소문만 남기게 될것이라는 생각에 맹랑했다. (낮은정도부정)
③ 경숙이가 오금을 박아주자 쌍둥이형제는 움추러들기는커녕 반가와라 입을 모아 되물었다. (반대)
토 《커녕》은 단어에 직접 붙어서도 쓰이지만 실례 ②에서와 같이 규정토와 결합하여서도 자연스럽게 쓰인다. 토 《커녕》이 체언과 결합하는 경우에는 《커녕, 는/은커녕》으로 쓰이고 용언과 결합하는 경우에는 《기는커녕》으로 쓰인다.
실례 ③에서 보면 서로 반대되는 현상에 대한 강조의 뜻으로 쓰이였다. 즉 어떤 어휘적단위와 결합하는가에 따라 순수 부정의 뜻만이 아닌 각이한 뜻을 나타낼수도 있다.
또한 부정의 의미는 《고사하고, 둘째치고》에 의해서도 나타난다.
일부 어휘들이 본래의 어휘적의미보다 문법적의미의 측면으로 전의되여 쓰이고있는것은 어휘들이 점차 문법화과정을 거쳐 토처럼 되여가고있는 과도적측면이라고 볼수 있다.
단어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어떤 형태로 문법화되는가를 밝히는것은 우리 말의 민족적특성을 옳게 살리고 언어생활을 시대적요구에 맞게 더욱 다양하게 해나가는데서 나서는 중요한 문제이다.
공시태적관점에서 보면 《고사하다》는 현재 원형으로는 쓰이지 않고 《…는/은 고사하고》형으로 쓰이면서 그 뜻은 《더 말할것도 없다》이다.
《…는/은 고사하고》는 명사나 명사화된 단어에 붙어 그 단어에 대한 부정은 물론 뒤단어에도 부정의 뜻을 부여한다.
∘ 뭇짐승들도 이 계절에는 어디에 가 숨어있는지 자취는 고사하고 울음소리 한마디도 들을수 없었다.
《둘째치고》는 단어《둘째》의 《근본이 아니다》라는 뜻과 《치다》가 나타내는 《여기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부차적인것으로 돌리거나 《대수롭지 않다》라는 부정의 뜻을 나타내면서 《…는/은 둘째치고》형으로 쓰인다.
∘ 그러고보니 잔치는 둘째치고 금년봄에도 허구장한테 장리를 내여가야 할 형편이였다.
《…는/은 고사하고》와 《…는/은 둘째치고》는 부정의 빛갈은 같으나 미세한 양태적의미의 차이를 가지고있다. 《…는/은 고사하고》는 기본적인것은 아니고 부차적인것이라는 뜻으로서 부정의 빛갈은 전자보다 약하다. 《…는/은 고사하고》와 《…는/은 둘째치고》는 동종의 개념에서 상하의 폭으로 쓰인다.
이 두 표현은 아직은 완전히 문법적의미의 표현수단으로 전환되지는 않았지만 어휘적의미의 측면보다 문법적의미의 측면으로 많이 쓰이고있는것으로 보아 점차적으로 문법적의미의 표현수단으로 전환될수 있는 가능성이 엿보인다.
부정의 의미를 나타내는 언어적요소에는 넷째로, 부정부사들인 《아니》와 《못》이 있다.
이 부정부사들은 언제나 문장에서 뒤에 오는 동사와 결합하여 부정의 의미를 나타내지만 쓰임에서는 일정한 차이가 있다.
부정부사《아니》가 이야기하는 사람이 객관적현실에 대한 의도적인 부정의 뜻을 나타낸다면 《못》은 어떤 행동이 객관적요인에 의하여 실현되지 못했음을 나타낸다.
부정부사 《아니》와 《못》은 동사와 결합하여 부정의 의미를 나타내지만 구체적인 의미는 다르다.
행동이나 상태가 어떠한 조건에 의하여 실현되지 못한 부정의 의미를 나타내는 부정부사 《못》은 동사와 결합하고 사람의 주관적인 의도나 생각과는 관계없이 객관적인 성질이나 상태를 나타내는 형용사와 결합하여서는 부정의 의미를 나타내지 않는다.
의도적인 부정의 의미를 나타내는 부정부사 《아니》도 형용사와 결합하지 않고 동사와 결합하여 부정의 의미를 나타낸다.
① 김동무는 오늘도 도서관에 아니(안) 갔다.
② 김동무는 오늘도 도서관에 못 갔다.
실례 ①은 의도적부정의 뜻을 나타내고 실례 ②는 조건적인 부정의 뜻을 나타내고있다.
부정부사 《아니》와 《못》은 형용사와 결합하여 쓰이지 않는다.
∘ 그 꽃은 아니(안)/못 붉다. ×
∘ 오늘은 마음이 아니(안)/못 좋다. ×
우의 실례에서 쓰인 부정부사 《아니》와 《못》이 형용사앞에서 부정의 의미로 쓰인것은 잘못된 표현이다.
부정부사 《못》은 일반적으로 행동에 대한 부정의 의미를 나타내므로 형용사앞에서 쓸수 없고 부정부사 《아니》는 의도적인 부정의 의미를 나타내므로 형용사앞에서 쓸수 없다.
우의 실례에서 객관적인 상태에 대한 평가를 나타내는 형용사들인 《붉다》나 《좋다》의 앞에는 의도적인 부정의 뜻으로 쓰이는 부정부사 《아니》가 올수 없다. 즉 우리 말에서는 형용사앞에 부정부사 《못》은 물론 《아니》도 쓸수 없다.
이로부터 형용사에 대한 의도적인 부정의 의미를 나타낼 때에는 부정부사《아니》와 동사《하다》로 결합된 《않다》가 토 《지》와 결합된 형태로 표현할수 있다.
∘ 그 꽃은 붉지 않다.
∘ 오늘은 마음이 좋지 않다.
그러므로 실지 언어실천에서 부정부사들인 《아니》와 《못》이 나타내는 이러한 구체적인 차이를 정확히 구별하여 쓰지 않으면 이야기하는 사람이 말하려는 실지 의도와 다른 뜻으로 리해하게 된다.
우에서 본 부정의 의미를 나타내는 언어적요소들은 다 부정의 의미를 나타낸다는 공통점은 가지고있지만 구체적으로는 자기의 고유한 어휘-문법적의미를 가지고 문장에서 다양한 부정의 의미적색채를 섬세하게 나타낸다는것을 알수 있다.
이와 같이 우리 말에는 부정의 의미를 나타내는 언어적요소들이 비록 적지만 그 쓰임은 다양하다는것을 알수 있다.
우리는 앞으로 사회언어생활을 고상하고 문명하게 발전시켜나갈데 대하여 주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