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에서 사람의 기원문제는 철저히 우리 나라에서 발굴한 고고학적자료에 기초하여 과학적으로 해명되여야 합니다.》 (
우리 나라에서는 인류의 발생발전력사를 보여주는 가치있는 구석기시대의 유적들이 적지 않게 발굴되였다. 그 가운데서 구석기시대 중기의 동굴유적인 대현동유적은 고인단계의 인류화석이 발굴된것으로 하여 유명한 유적이다.
대현동유적은 주체66(1977)년 평양시 력포구역 대현동에서 룡산리방향으로 1㎞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있다. 유적은 일정한 구간이 채석과정에 이미 떨어져나간 다음에 드러난 자연동굴에서 발견되였다.
발굴당시 동굴입구의 높이는 1.4m, 너비는 0.55m정도였다.
동굴입구의 방향은 동남쪽으로 놓여있으므로 하루동안 해빛을 받는 시간이 길다. 석회암으로 이루어진 야산중턱에 위치하고있는 동굴가까이에는 무진천이라는 크지 않은 하천이 흐른다. 무진천은 중화군에 있는 령주산기슭에서 시작하여 력포구역을 지나 곤양강을 거쳐 대동강으로 흘러들며 그 길이는 약 40.5㎞이고 류역넓이는 167.81km2이다. 동굴은 무진천바닥으로부터 2.5m높이에 있으며 그 주변은 야산이나 언덕 및 벌판으로 이루어져있다.
따라서 이 일대는 원시시대에 사람들이 자연동굴에 거처지를 정하고 식물채집과 짐승사냥 및 물고기잡이를 하면서 살기에 알맞춤한 곳이였다.
대현동유적에 대한 발굴은 주체66(1977)년 4월‐10월까지의 기간에 진행되였다.
동굴퇴적층은 3개층으로 구분되며 그 두께는 1.4m이다.
그 가운데서 둘째퇴적층에서는 인류화석이 발견되였는데 발견된 고장이름에 따라 력포사람이라고 부른다. 인류화석으로서는 앞머리뼈 1점, 웃머리뼈 1점, 옆머리뼈 1점이 알려졌다. 여기서 앞머리뼈는 왼쪽것인데 비늘, 눈확, 코부위가 보존되여있고 광대뼈도드리와 이마의 불룩이부위는 떨어져나갔다. 웃머리뼈의 왼쪽은 거의 온전하며 오른쪽의 경우에 뒤머리뼈와 물리는 부분만 남아있다. 왼쪽웃머리뼈는 4개의 가장자리가운데서 앞머리가장자리, 앞뒤가장자리, 뒤머리가장자리가 보존되여있고 옆머리가장자리는 약간 떨어져나갔다. 옆머리뼈는 오른쪽의것인데 광대뼈활이 떨어져나가고 나머지부분은 거의 온전하게 보존되여있다. 머리뼈쪼각들은 모두 20㎝범위안에 널려있었는데 개별적인 뼈들의 상대적크기가 같고 그 빛갈, 윤기가 도는 상태와 화석화정도, 닳은 상태 등이 비슷한것으로 보아 한개체의 것으로 볼수 있다. 머리뼈는 크기가 작고 연약하다. 웃머리뼈에 남아있는 화골방사선들은 아이때에 생겼던것들이 아직 완전히 없어지지 않고 남아있는 흔적으로 볼수 있다. 웃머리뼈의 곧은 길이는 102.5㎜이며 굽은 길이는 112㎜이다.
머리뼈의 일반상태와 크기에 의하면 이 인류화석은 약 7~8살정도 되는 어린이의것이라고 볼수 있다.
력포사람은 일련의 원시적인 특징을 가지고있다. 우선 앞머리뼈에는 눈두덩불룩이가 발달하였는데 그의 눈확바깥삼각부분은 퇴화되는 경향성이 있고 눈섭사이의 두드러진 상태를 보여주는 눈섭사이지수도 고인의 변이한계에 해당된다. 또한 이마가 뒤로 제껴졌다. 이로부터 머리뼈의 형태는 앞머리잎이 아주 낮고 앞부분이 좁은 원시적인 요소를 가졌다고 볼수 있다. 또한 코마루와 코부위가 아주 넓다. 그것은 원인이나 고인의 얼굴부위가 골뼈부위보다 큰것과 관련된다. 특히 고인의 경우에는 눈확과 코부위가 크고 코는 넓은것이 특징적이다. 웃머리뼈는 적게 굽었고 아주 넙적하다. 웃머리뼈굽은지수는 93.2로서 고인가운데서도 아주 높은축에 속한다. 웃머리뼈불룩이부위에서의 머리뼈두께가 앞숫구멍점부위에서의 두께보다 두꺼운것은 원인이나 고인에게서 특징적이다. 현대인의 경우에는 앞숫구멍점부위에서의 머리뼈두께가 웃머리뼈불룩이부위에서의 두께에 비해 두껍다. 옆머리뼈에서 아래턱뼈마디우묵이는 얕고 비교적 둥글다. 그러나 현대인의 경우에는 이 우묵이가 깊고 긴축이 안팎으로 가로 놓여있다. 아래턱뼈마디바닥면의 높이는 귀구멍의 높이에 비해 얼마간 높다. 그러나 현대인의 경우에는 이 높이가 귀구멍과 같은 높이에 있거나 그에 비해 약간 낮다. 한편 력포사람은 일부 진보적인 특징들도 가지고있다. 례를 들면 웃머리뼈불룩이가 발달되였으며 옆머리비늘 변두리가 높고 둥근것이다. 이러한 특징과 머리뼈의 다른 특징들을 고려하여볼 때 뇌용적이 일정한 정도로 큰 진보적인 특징도 나타난다. 그리고 머리뼈들의 크기와 형태를 보면 모두 고인의 변이한계에 들어간다. 따라서 력포사람은 고인에 속한다.
발굴된 유물들을 보아도 대현동유적은 고인들이 활동하던 구석기시대 중기에 해당된다.
대현동유적에서는 4목 12과 21속 22종의 동물화석들이 나왔다. 동물화석들을 보면 해리, 대현땅쥐, 족제비, 오소리, 동굴사자, 삵, 동굴히에나, 박쥐, 여우, 큰곰, 대현말, 큰쌍코뿔이, 털코뿔이, 메돼지, 노루, 사슴, 누렁이, 넙적큰뿔사슴, 물소, 옛소, 들소, 산양 등으로서 해당 동물화석들이 드러난 지층의 상대적지질년대가 제4기 중갱신세의 비교적 이른 시기에 해당된다는것을 보여준다.
이 동물들의 종구성을 보면 아열대-온대기후의 산림초원환경에 적응된 종들로 특징지어진다.
이로부터 대현동유적을 남긴 력포사람은 무진천을 끼고 수림이 무성한 구릉성지대에서 자연동굴을 거처지로 삼고 식물채집과 짐승사냥 및 물고기잡이를 하면서 살았다는것을 알수 있다.
참으로 대현동유적은 평양을 중심으로 하는 대동강류역에서 알려진 원인 다음단계의 인류화석인 력포사람이 발견된 구석기시대 중기의 오랜 유적으로서 우리 나라의 인류진화발전사문제를 더 깊이 해명하는데서 매우 가치있는 실물자료로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