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연구

고구려무덤벽화의 제작기술

 2019.4.6.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고구려의 무덤벽화들은 여러가지 채색으로 그린것들인데 천수백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그 색이 변하지 않고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김정일전집》 제2권 417페지)

고구려무덤벽화가 천 수백년이 지나도록 벽면에서 떨어지거나 변색되지 않고 그대로 보존되고있는것은 당시의 무덤벽화제작기술이 얼마나 높은 수준에 이르고있었는가를 실물로 잘 보여주고있다.

고구려사람들은 우선 무덤벽화를 그릴 화면을 견고하게 제작하였다.

화면을 견고하게 만드는것은 무덤벽화를 오래동안 보존하는데서 선차적인 문제로 나선다.

고구려무덤벽화는 례외없이 회벽이나 돌벽에 그려졌다.

대부분의 고구려벽화무덤들에서는 막돌이나 다듬은 큰돌로 벽체를 쌓고 그우에 회죽미장을 하여 벽화의 화면으로 리용하였다.

회벽을 벽화화면으로 하는 경우 고구려사람들은 먼저 석회를 잘 가공하여 회반죽을 질적으로 하였다.

일반적으로 석회는 원료인 석회석[CaCO3]을 일정한 크기로 분쇄하고 900℃정도의 온도에서 소성하여 얻은 생석회[CaO]와 생석회에 적당한 량의 물을 부어 일정한 기간 수화시킨 소석회[Ca(OH)2]의 두가지 종류로 나눈다. 생석회는 보통 막돌이나 모래, 석비레 등과 섞어 건물기초, 도로 등의 지반강화용으로 쓰이고 소석회는 회벽미장과 같은 로출된 건축물의 마감재로 리용된다. 순도높은 석회를 얻기 위해서는 질좋은 석회석을 원료로 사용하는것과 함께 소성온도를 일정한 온도로 유지하는것이 중요하다. 그것은 소성온도가 너무 높거나 낮으면 불순물이 많이 생기기때문이다.

고구려무덤벽화의 화면제작에 리용된 소석회는 그 질이 매우 높다. 벽화무덤에서 나온 석회덩어리에 대한 염산용해실험결과 불순물이나 분해되지 않은 석회석덩어리를 전혀 찾아볼수 없었다. 이것은 고구려시기 석회제작이 철저한 소성 및 수화단계를 거치였음을 보여준다.

이렇게 얻어진 질좋은 소석회로 고구려사람들은 벽화무덤의 벽면을 여러 층으로 미장하였다.

고구려벽화무덤의 회벽은 그것이 몇개의 층으로 되였는가에 따라 크게 두가지로 나누어볼수 있다.

우선 회벽이 2개층으로 구성된것이다. 이러한 화면제작기술은 주로 고구려벽화무덤발생초기부터 5세기초까지 쓰이였다.

이 시기 고구려사람들은 무덤벽면의 초벌층을 석회, 점토, 굵은 모래, 식물성섬유를 잘 섞어 한번 혹은 여러번 미장하였다. 그 다음 석회와 가는모래를 섞어 마감미장을 하였다. 미장면의 두께는 약 15~30㎜정도이다.

또한 회벽이 3개층으로 구성된것이다. 이러한 화면제작기술은 5세기 전반기부터 고구려 말기까지 사용되였다.

이 시기의 벽화무덤회벽은 초벌층, 중간층, 마감층의 3개층으로 구성되여 앞선 시기보다 발전된 구조를 가지고있다.

초벌층제작에서는 석회와 점토, 모래, 식물성섬유를 1:3의 비률로 섞어 약 15~50㎜의 두께로 미장하였다. 중간층제작에서는 석회와 가는 모래를 1:1의 비률로 섞어 10~20㎜ 두께로 미장하였다. 마감층제작에서는 석회를 1~7.5㎜의 두께로 얇게 미장한 다음 물연마하여 매끈한 화면을 만들었다.

3개층으로 구성된 고구려벽화무덤의 화면제작기술은 현재까지도 리상적인 석회면제작기술로 알려져있으며 같은 시기의 다른 나라 벽화제작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이렇듯 고구려무덤벽화화면은 매우 견고한 특성을 가지고있는것으로 하여 천수백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화면제작당시의 상태를 거의 그대로 보존하고있는것이다.

무덤벽화에는 돌벽을 직접 화면으로 하여 그린것도 적지 않다. 안악3호무덤, 동명왕릉, 호남리사신무덤, 집안사신무덤, 집안다섯무덤의 4호, 5호무덤, 강서중무덤, 강서큰무덤 등은 그 대표적인것들이다.

돌벽을 직접 화면으로 리용하는 경우 동명왕릉에서는 석회암을, 호남리사신무덤에서는 대리암을 그리고 집안사신무덤, 집안다섯무덤의 4호, 5호무덤, 강서큰무덤 등에서는 잘 가공한 화강암을 여러 층으로 쌓아 벽면을 만들었으며 고국원왕무덤, 강서중무덤에서와 같이 한 벽면을 화강암판석 한장으로 만든것도 있다. 그리고 동명왕릉처럼 돌벽우에 연보라색의 바탕색을 칠한것도 있으나 대부분은 돌벽을 그대로 리용하였다.

고구려사람들은 돌벽을 화면으로 직접 리용하는 경우에도 대리석보다 화강석판돌을 많이 리용하였다. 그것은 화강석이 대리석보다 굳고 매끈거리지 않을뿐아니라 무수한 까만 점들이 있어 그림의 효과를 잘 나타낼수 있었던것과 관련된다. 그리고 표면을 매끈하게 하는것보다 오돌토돌하게 함으로써 벽화의 설레임과 우아함, 립체감을 잘 나타낼수 있었다.

그들은 벽화가 어두운 땅속에 그려지는것만큼 화면이 전반적인 주제내용을 밝고 선명하게 전달하는데 가장 적합하면서도 진실성과 생동성을 높은 경지에서 나타내야 한다는것을 잘 알고있었다. 때문에 그들은 건축과 벽화와의 관계를 잘 타산하여 색감에 못지 않게 화면에 주의를 돌렸다. 이와 함께 습기가 찬 무덤안에서 벽화의 손상을 막으면서도 오히려 물기를 머금었을 때 나타날수 있는 오묘한 립체감과 생동감을 표현하였다.

이것은 당시 벽화제작자들의 기발한 착상과 예술적기교, 뛰여난 재능을 그대로 말해주며 고구려무덤벽화의 높은 조형미를 낳게 한 중요한 전제의 하나로 되였다.

고구려사람들은 다음으로 안료제조에서도 자기들의 창조적재능을 높이 발휘하였다.

일반적으로 벽화창조과정은 안료를 리용하여 사물의 형태를 표현하는 과정이라고 말할수 있다. 벽화에서 안료와 형상수법은 불가분리의 관계에 있다. 그것은 더운색과 찬색, 흥분색과 진정색, 무거운 색과 가벼운 색을 비롯하여 색의 특이한 느낌은 화폭전반에서 정서적색갈을 나타내고 색의 감성적기능을 살려주는 고리이며 이러한 색갈은 안료에 의해 보장되기때문이다.

고구려사람들이 사용한 안료는 대부분 광물질안료로서 초기에는 흰색, 누런색, 붉은색, 푸른색, 검은색 등으로 제한되였다. 그러나 4세기 중엽부터는 주홍색, 풀색, 금색, 은색 등 다양한 색채가 사용되면서 앞선 시기에 비해 더 다양하고 밝은 색채가 많이 나타나고있다.

연구결과에 의하면 천연성광물질재료들을 리용하여 만든 고구려무덤벽화안료들은 흰색은 탄산염광물인 백악(CaCO3)과 염기성탄산연으로 된 연백[2PbCO3·Pb(OH)2], 검은색은 탄소계통의 먹(C), 누런색은 갈철광(Fe2O3·nH2O), 붉은색은 적철광(Fe2O3)과 진사(HgS) 그리고 광명단(Pb3O4), 푸른색은 동의 염기성탄산염광물인 람동광[Cu3(C03)2(OH)2 또는 2CuCO3·Cu(OH)2], 풀색은 동의 탄산염광물인 공작석[Cu2(CO3)(OH)2], 금은색은 금분(Au)과 은분(Ag)으로 제조되였다고 인정된다.

이것은 고구려사람들이 천연성광물질안료들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있었으며 오랜 기간 부단한 관찰과 연구끝에 질좋은 안료를 만들어내게 되였다는것을 말하여준다.

고구려사람들의 창조적지혜와 노력의 산물인 벽화안료들은 내구성과 습기견딜성에서 아주 우수한것이였다.

고구려벽화안료는 회미장을 한 벽면에 그린것이나 돌벽에 그린것이나 할것없이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본래의 모습을 잘 유지하고있으며 습기가 심하여 물이 줄줄 흐르는 벽면에서도 본래의 색을 잃지 않고 선명도와 밝음도를 원만히 보장하고있다.

고구려화가들은 아름답고 고상한 색채적미감을 가지고있었으며 색에 대한 조예가 깊었다. 그들은 민족적미감과 정서에 맞게 다양한 배색방법으로 벽화를 예술적으로 형상하였으며 그것을 기념비화, 장식화하면서 더 한층 풍부한 색갈의 세계를 창조하였다.

중세동방회화미술의 극치를 이루는 고구려무덤벽화는 다양하고 질 좋은 안료와 그것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풍만한 색의 세계를 창조한 고구려사람들의 높은 창조적능력을 떠나서 생각할수 없다.

고구려사람들은 다음으로 벽화안료들이 화면에서 떨어지거나 부식되지 않도록 당대 최고의 접착기법을 창안하여 훌륭히 구현하였다.

그림이 회벽이나 돌벽에 그려지는 경우 안료가 본래의 모습을 유지하자면 높은 접착기법이 동반되여야 한다.

고구려사람들은 안료의 접착에서도 자기들의 재능을 남김없이 과시하였다.

고구려무덤벽화는 회를 바르고 그것이 채 마르기 전에 그린것과 완전히 마른 다음에 그린것, 평면으로 다듬은 돌벽우에 직접 그린것이 있다.

회벽이 마르기 전에 그리는 기법은 오늘날의 후레스코법과 같은것으로서 회벽의 누기가 적절할 때 일정한 시간안에 빨리 그려야 하며 일단 그리면 고치기 어려운 점은 있으나 색감이 회벽면에 스며들어 그림이 견고하고 회벽이 마르면서 이루어지는 특유한 빛갈로 하여 좋은 그림을 얻을수 있다. 이 기법은 그림이 마르면서 색채가 변하기때문에 화가는 여기에 대비하고있어야 한다. 즉 색채의 강도나 밝기 등 다양한 변화에 대비하여 많은 경험을 축적하고 그림을 그려야 한다. 특히 작업량을 정확히 타산하여 그림을 그릴수 있는 량만큼 석회미장작업을 하여야 한다.

안악2호무덤벽화를 보면 회벽이 마르기 전에 딱딱하고 예리한 물체로 선을 그어 구도를 잡고 대상을 그린 흔적이 뚜렷이 남아있다. 이러한 회벽에 벽화를 그릴 때에는 벽화를 빨리 그리고 실수없이 그려야 하였기때문에 사전에 도안을 준비하여 두었다가 회벽이 굳어져가는 일정한 기간내에 선과 채색으로 완성하였다. 회벽이 채 굳기전에 벽화를 그렸다는것은 고구려화가들이 다른 기법에 비해 이 기법이 화면에 그린 벽화가 색이 벽에 스며들어 잘 벗겨지지 않고 색이 변하지 않는다는것, 다른 재료와 기법으로는 나타낼수 없는 투명도와 깊이, 선명도를 나타낼수 있다는것을 잘 알고있었다는것을 보여준다.

건조한 회벽이나 돌벽에는 안료를 동물성아교나 식물성기름, 옻이나 석회수같은 점착제와 섞어 그림을 그린것으로 보인다.

특히 돌벽우에 직접 벽화를 그리는 기법은 당시 그 어느 나라의 벽화에서도 찾아볼수 없는 고구려고유의 독창적인 기법으로서 그 보존성이 좋은것으로 하여 당대 최고의 벽화제작기술이라고 할수 있으며 지금까지도 그 비결이 정확히 알려지지 않고있다.

천수백년이 지났지만 금방 붓을 뗀듯이 선명하게 안겨오는 고구려무덤벽화는 주제내용이 풍부하고 다양하며 묘사 또한 생동하고 진실한데다가 오늘까지도 그 모습을 훌륭하게 보존하고있는것으로 하여 사람들의 한결같은 찬탄을 자아내고있다.

우리 민족의 유구한 력사와 찬란한 문화로 자랑높은 평양을 중심으로 하여 조선사람들에 의하여 창조되고 발전하여온 고구려무덤벽화는 앞으로도 영원히 민족의 재보로, 인류공동의 귀중한 문화유산으로 빛을 뿌릴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