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종합대학 력사학부 장경일
2021.4.21.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어린시절부터 백두산의 눈보라를 맞으시며 고생을 많이 하시고 한생토록 순간의 휴식도 없이 혁명의 길을 걸어오신 우리 장군님이십니다. 장군님께서는 늘 인생이란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바치는 한생이라고, 생의 시작이 아름다웠으면 생의 마감도 아름다워야 참된 인생이라고 하시면서 한생을 조국과 인민을 위한 길에 고스란히 바치시였으며 생의 마무리도 조국과 인민을 위한 길에서 하시였습니다.》
해마다 2월이 오면 우리 인민들과 세계의 진보적인민들은 한평생을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세계의 자주화위업을 위하여 자신의 모든것을 다 바쳐오신 위대한 장군님에 대한 다함없는 흠모와 절절한 그리움으로 더욱 가슴불태운다.
조국과 민족의 운명을 한몸에 지니시고 하루를 백날, 천날맞잡이로 사업하시며 초인간적인 불굴의 헌신사를 수놓으신 위대한 장군님의 한평생은 말그대로 타오르는 불길이였다.
우리 장군님께서는 한평생 조국의 부강번영과 인민의 행복을 위해 끊임없는 현지지도로 날과 달을 보내시면서도 오히려 그것을 휴식으로 여기시였다.
인간세상에 태여난 사람이라면 그 누구를 막론하고 일요일이나 명절날과 같은 휴식일에 가족들과 함께 유쾌하게 휴식하면서 하루를 보내는것이 너무나도 응당하고 자연스러운 일로 되고있다. 어쩌다가 중대한 문제가 제기되여 어느 나라의 정치인이 주말휴식을 취소하면 언론에서는 크게 떠들면서 법적 끓는것이 례상사이다. 그만큼 사업과 휴식은 언제나 교차를 이루어야 하는 어길수 없는 생활준칙으로 공인되여있다.
그러나 한평생 인민들의 행복을 위하여 자신의 한몸을 초불처럼 깡그리 불태우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만은 어쩌다 차례지는 일요일과 명절날의 휴식일마저도 고스란히 조국과 인민을 위해 바치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인민들의 먹는 문제를 풀어주시기 위하여 사리원시 미곡협동농장을 찾아주시였던 주체78(1989)년 11월의 그날도, 안변군 천삼협동농장을 찾으시여 모든 힘을 농사에 집중할데 대하여 가르쳐주신 주체88(1999)년 6월의 그날도 일요일이였다.
이날들뿐이 아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우리 인민들을 더 잘살게 하시려고 생애의 마지막시기인 주체100(2011)년 1월 2.8비날론련합기업소와 룡성기계련합기업소를 찾으시였던 그날도 일요일이였고 제2차 평양제1백화점상품전시회장을 찾으시였던 날도 다름아닌 일요일이였다.
우리 장군님께서는 누구나 즐거운 명절의 한때를 보내던 그날들에도 공장과 협동농장들을 찾아 쉬임없는 헌신의 길을 이어가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함흥영예군인수지일용품공장을 찾아주시였던 날도 주체92(2003)년의 태양절이였고 문덕군 룡오협동농장을 찾으시여 농산작업의 기계화를 실현할데 대한 가르치심을 주신 날도, 정방산에서 일군들에게 농사를 잘 짓기 위한 방향과 방도를 밝혀주신 그날도 누구나 휴식을 즐기는 명절날들이였다.
유희장들과 유원지들, 가정들에서 인민들의 행복의 웃음소리 넘치던 그 명절날까지 변함없이 초강도강행군길을 이어가신 위대한 장군님이시였다.
어느해인가 위대한 장군님께서 자신은 책이나 문건도 보고 현지에 나가 인민들을 만나기도 하는것이 휴식이라고 하신적이 있다. 책과 문건을 보는 일과 인민들속에서 제기되는 여러가지 문제들을 처리하여야 하는 일은 고도의 정신력을 집중하는 어려운 일인데 오히려 그것이 휴식이라고 하시였던것이다.
언제인가는 자신의 건강을 걱정하는 일군들에게 지금 우리에게 할 일이 얼마나 많은가, 내가 할 일을 다른 사람이 대신해줄수 없다, 나는 일하는것이 휴식이다, 나는 아직 휴식을 따로 할 시간이 없다고 하시였다.
참으로 우리 혁명의 진두에서, 전진과 투쟁의 맨 앞장에서 불철주야 달리신 위대한 장군님의 무한한 헌신의 열도가 얼마나 강렬한것인가를 새겨주는 뜻깊은 말씀이였다. 1시를 초저녁으로 여기시며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자신의 모든것을 깡그리 바치신 위대한 애국자의 헌신의 한평생이 이 말씀에서 경건히 흐르고있다. 혁명에 대한 그이의 끝없는 열정의 세계가 여기에 깃들어있고 그 어느 위인에게서도 찾아볼수 없는 숭고한 인생관이 그 말씀에서 빛발치고있다.
한평생 인민들의 행복을 위하여 자신의 한몸을 초불처럼 깡그리 불태우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일년에 한번밖에 돌아오지 않는 자신의 생신날까지도 고스란히 조국과 인민을 위해 바치시였다.
해마다 찾아오는 2월의 명절들마다에는 만사람의 심장을 울린 감동깊은 사연들이 수없이 새겨져있다.
김일성종합대학에서 혁명활동을 벌리시던 시기인 주체52(1963)년 2월 16일, 위대한 장군님께 대학생들은 검소하게나마 생일을 함께 쇠주셨으면 하는 청을 드리였었다.
그때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동무들의 성의와 동지적사랑에 대하여 매우 고맙게 생각하지만 자신께서는 생일을 쇨수가 없다고 간곡히 만류하시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한평생을 바쳐오시지만 이날이때까지 아직 한번도 자신의 생일날을 쇠신적이 없으시였다고, 수령님께서 나라의 번영과 인민의 행복을 위하여 로고를 바쳐가고계시는데 내가 어떻게 생일을 쇨수 있겠는가고, 우리는 어떻게 하면 위대한 수령님의 심려와 로고를 덜어드리고 수령님을 잠시라도 편히 모시겠는가, 어떻게 하면 수령님의 은덕과 배려에 더 잘 보답하겠는가 하는 이 한가지만을 생각해야 한다고 하시며 수령님의 심려와 로고를 덜어드리는데 혁명전사의 참된 행복이 있다고 하시던 위대한 장군님이시였다.
이런 인생관, 행복관을 지니시였기에 다음해인 주체53(1964)년의 탄생일을 평양종합인쇄공장을 현지지도하시면서 보내시였고 주체55(1966)년의 탄생일은 우리 음악에 자기 인민을 위하고 자기 나라 혁명에 복무하는 참다운 넋을 심어주시면서 보내시였다.
탄생일만이라도 휴식하실것을 거듭 말씀드리는 일군들에게 원래 자신께서는 생일을 쇠지 않는다고, 전사가 무슨 생일인가고 하시면서 날이 저물 때까지 어버이수령님의 현지지도를 보좌해드리신 주체58(1969)년 2월 16일, 온 하루동안 현지지도의 길에 계시며 평범한 날보다 오히려 더 정력적으로 사업하신 주체71(1982)년의 탄생일이며 력사적인 로작 《인민생활을 더욱 높일데 대하여》가 발표된 주체73(1984)년 2월 16일, 오늘도 자신께서는 군인들과 하루를 보냈다고, 군인들과 인민들을 위해 보내는것이 곧 자신의 기쁨이고 바로 그런 날이 자신의 명절이라고 하시며 선군혁명령도의 길에서 감자음식을 드시면서 보내신 1990년대 마지막해의 2월 16일…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한평생 자신의 탄생일을 이렇게 보내시였다. 우리 인민모두가 즐거움속에 맞고 보낸 명절들과 일요일들, 평범한 생활속에 흐른 하루하루는 위대한 장군님의 이런 불같은 헌신속에 이어졌다. 비오는 새벽에도, 눈보라치는 깊은 밤에도 끊임없이 새겨가신 그 자욱에는 최전연의 인민군부대들도 있고 제강소와 기계공장들, 산골마을의 발전소건설장들도 있다. 사회주의 푸른 전야를 가꿔가는 협동농장도 있고 함남의 불길이 나래쳐오른 련합기업소 구내길도 있으며 새 세기 산업혁명의 불길이 타오른 곳도 있다. 위대한 장군님의 불같은 헌신의 자욱이 수놓아지는 그 열정의 하루하루가 있어 오늘은 우리 조선이 누리에 강용한 빛을 뿌리며 막강한 국력을 세계에 높이 떨칠수 있게 되였다.
동서고금 그 어느 나라력사에도 위대한 장군님처럼 이렇게 조국과 인민을 위해 휴식날, 생신날의 하루마저도 깡그리 바쳐오신 위인은 없었다.
하기에 세계의 진보적인류는 위대한 장군님의 위인적풍모에 완전히 매혹되였고 그이를 가장 걸출한 세기의 위인으로, 위대한 령도자로 높이 칭송하였으며 수많은 훈장과 메달, 명예칭호, 선물들을 삼가 드리였다.
이것은 누가 강요할수도, 지어낼수도 없는 절세의 위인에 대한 진보적인류의 다함없는 칭송과 흠모의 분출인것이다.
해마다 2월이면 그이의 탄생일이 어김없이 찾아오듯이 그이의 한평생도 끝나지 않았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백두의 흰눈과 함께 인민의 품에 오셨던 그날처럼 순결한 모습으로, 불길처럼 한몸을 바쳐오셨던 나날들처럼 열렬한 모습으로 위대한 김정은시대속에, 그 품속에 자라나 승리와 영광만을 련면히 떨쳐가는 우리 인민과 정의와 진리를 지향하는 세계인민들의 마음속에 언제나 함께 계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