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종합대학 경제학부 부교수 리은경
2024.11.4.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마동희동무의 어머니는 정말 혁명가의 훌륭한 어머니였으며 열렬한 애국자였습니다. 어머니는 아들, 딸, 며느리, 남편을 다 혁명투쟁에 바쳤습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탄생 60돐이 하루하루 다가오고있던 어느날이였다.
항일혁명투사인 아들 마동희동지의 옛 전우를 찾아간 장길부어머니는 위대한 수령님의 탄생 60돐은 인민의 소망대로 민족의 대축전으로 되여야 한다고 거듭 간곡히 이야기하면서 소중히 싸고 또 싼 작은 함을 내놓았는데 거기에는 뜻밖에도 돈 천원이 들어있었다. 어머니는 너무도 약소한것이지만 성의로 받아서 탄생 60돐을 맞으시는 위대한 수령님께 뜻깊은 기념품을 삼가 올릴수 있게 도와달라고 하였다.
그때 당시 돈 천원이면 적지 않은 돈이였다.
이 큰 돈이 자식도 없이 홀로 사는 장길부어머니에게 생긴 사연은 이러하였다.
항일무장투쟁시기는 물론 해방후에도 여러곳에 사람들을 띄우시여 장길부어머니를 찾도록 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1946년 6월 평양에서 어머니를 만나게 되시였다.
장길부어머니를 만나신 자리에서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동안 혼자서 얼마나 고생을 하셨겠는가, 이제부터는 자신께서 아들대신 어머니를 모시겠으니 평양에 올라와 함께 살자고 절절히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간절하신 그 권고에 못이겨 장길부어머니는 위대한 수령님댁에서 한집안식구가 되여 머물렀는데 그렇게 근 석달이 흘렀다. 그러나 그 나날 장길부어머니는 조국과 인민의 운명을 한몸에 안으신 수령님의 중하가 얼마나 무거운것인가를 잘 알게 되였으며 더구나 자기를 보실 때마다 희생된 전우들생각으로 가슴아파하시는 수령님께 자기가 더 있으면 오히려 걱정을 끼쳐드릴수 있다는 생각으로 고향에 다시 내려가겠다고 말씀올리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런 생각은 아예 하지 말라고 몹시 서운해하시며 어머니를 달래시였는데 다음날 보짐까지 들고온 어머니를 보시고는 정 그러시다면 어머니마음대로 하시라고, 그러나 고향에 내려갔다가도 다시 생각해보고 오고싶은 때면 아무때나 올라오라고, 그래서 한집안식솔이 되여 지내자고 하시며 자신의 사진 한장과 로자로 쓸 돈을 어머니앞에 내놓으시였다.
장길부어머니는 위대한 수령님의 은정이 어린 그 돈을 몸에 깊이 간수하고 고향으로 돌아오는 로상에서 절대로 거기에만은 손을 대지 않았다. 어머니는 평양에서의 생활이 그립고 위대한 수령님의 사랑이 간절할 때면 소중히 간직한 사진과 돈을 꺼내보군 하였다.
그후 위대한 수령님께서 혁명가유가족들에게 보내주시는 은정어린 보조금을 매달 받게 되였을 때에도 어머니는 그 돈도 아껴서 로자돈에 보태였다. 달마다 보탠 돈이 천원이 되였던것이다.
어머니는 탄생 60돐을 맞으시는 위대한 수령님께 사연많은 그 돈으로 그이의 만수축원을 절절히 바라는 자기의 마음을 담은 지성품을 만들어올릴 생각을 하게 된것이였다.
장길부어머니가 내놓은 돈 천원, 거기에는 혁명의 길에 아들, 딸, 며느리를 모두 바친 장길부어머니를 혁명가의 어머니로 조국과 인민앞에 높이 내세워주시고 몸소 친아들이 되시여 육친의 정을 다해 보살펴주신 위대한 수령님의 뜨거운 인정의 세계와 오로지 수령님의 건강과 안녕만을 바라며 더 오래오래 받들어모실것을 간절히 소망한 장길부어머니의 고결한 충성심이 그대로 비껴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