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종합대학 력사학부 부교수 유정철
2022.1.26.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참으로 지난 1970년대는 우리의 문학예술이 당의 주체적인 문예로선에 따라 찬란히 개화발전한 주체예술의 대전성기였습니다.》 (《김일성전집》 제72권 269페지)
우리 나라에서 주체예술의 대전성기가 마련된 때로부터 수십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러나 우리 인민은 오늘도 그때를 돌이켜보며 주체적문학예술의 발전에 커다란 공헌을 하신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의 불멸의 업적을 잊지 못하고있다. 그것은 바로 1970년대에 마련된 주체예술의 대전성기는 전적으로 위대한 장군님의 비범한 예지와 크나큰 헌신에 의하여 마련된 고귀한 재보이기때문이다.
주체예술의 대전성기가 마련되던 그 모든 나날이 다 그러했지만 위대한 장군님께서 비범한 예지와 크나큰 헌신으로 불후의 고전적명작 《피바다》를 예술영화로 옮기던 나날에 원작의 주옥같은 세부형상들을 손색없이 재현시켜주신 이야기는 오늘도 만사람의 가슴을 뜨겁게 울려주고있다.
조선예술영화촬영소 실내에 설치된 《을남이의 집》장치물에 대한 세부형상과 무진리벌판에서의 불타는 《간도마을》촬영과정에 대한 지도만 놓고보아도 조선예술영화 《피바다》의 세부형상창조에 깃든 위대한 장군님의 비범한 예지와 크나큰 헌신에 대하여 잘 알수 있다.
주체58(1969)년 11월 26일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창작가들에게 조선예술영화 《피바다》 제2부 실내촬영장에서 창조성원들에게 장치물의 진실성을 보장할데 대한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이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실내촬영장에 설치된 장치물을 보시고 량강도 삼수에서 찍어온 을남의 집은 토방도 좀 높고 나무가지로 엮은 울바자도 있었는데 무엇때문에 그런것을 다 무시하였는지 모르겠다고 하시면서 을남의 집 뒤배경도 야외에서 찍은것과 맞지 않는다고, 야외에서 찍어온 화면들을 보면 을남의 집뒤에 서있는 버드나무가지들이 지금보다 집아래로 내리드리워져있다고, 아무리 화면에서 잘 보이지 않는 배경이라 하여도 되는대로 그려놓고 촬영하여서는 안된다고 하시였다.
사실 창작일군들이 위대한 장군님의 지적을 받고 야외촬영장을 꾸렸던 삼수에 파견하여 알아본데 의하면 《을남이네 집》토방의 높이는 실내촬영장과 야외촬영장의것간에 불과 몇㎝정도의 차이밖에 없었고 실지 나무와 장치물로 된 나무도 가지의 길이와 각도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었을뿐이였다. 그러다보니 창작단성원들은 물론 창작지도일군들도 그 차이를 찾아내지 못하였었다.
오직 예술형상에 대한 비상한 감수력, 진실성을 예술형상의 생명으로 여기시는 위대한 장군님이시였기에 그 장치물의 미세한 차이를 발견하시고 장치물의 진실성을 보장할데 대하여 그토록 강조하시였던것이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주체58(1969)년 9월초 어느날에는 평양시교외의 무진리벌판에서 진행된 조선예술영화 《피바다》의 불타는 《간도마을》에 대한 촬영사업을 정력적으로 지도하시였다.
나라를 잃고 살길을 찾아 이역땅에 간 우리 인민이 왜놈들의 대토벌로 무서운 참상을 당하는 피바다장면을 어떻게 찍는가 하는것은 압박이 있는 곳에는 반항이 있는 법이라는 불후의 고전적명작의 사상을 살려내는가 못살려내는가 하는것과 관련되는 매우 중요한 문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불타는 《간도마을》촬영에 큰 의의를 부여하시고 몸소 촬영현장에까지 나오시여 찌는듯한 무더위와 연막속에서 형상의 진실성을 보장하도록 세심한 지도를 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연화사들이 장군님의 건강을 생각하며 계획대로 불을 지피지 못하고있을 때에는 연막이 약하다고, 자신의 걱정은 하지 말고 연막도 제대로 피우고 불도 더 질러 분위기를 돋구도록 엄하게 지적도 하시였으며 말을 타고 총과 칼을 휘두르며 《간도마을》사람들에게 《폭행》을 《감행》해야 할 왜놈역배우들이 장군님앞으로 달리기 주저하고 그이앞에서 차마 늙은이를 《찌르고》 《아이》들을 불속에 집어던지는 행동을 할수 없어 주춤거리는것을 보시고는 왜 더 가까이 마음놓고 지나가지 못하는가, 조금도 주저하지 말고 대본대로 해야 왜놈들의 야수성이 살아나며 피바다장면이 원작의 요구대로 된다고 말씀하기도 하시며 영화의 세부형상에서 진실성을 보장하도록 정력적으로 이끌어주시였다
이렇듯 위대한 장군님의 빛나는 예지와 크나큰 헌신에 의하여 조선예술영화 《피바다》는 위대한 수령님의 주체적문예사상을 완벽하게 구현한 혁명적대작으로 창작되게 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