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고한 조국애와 민족애를 지니시고 유구한 력사와 찬란한 문화전통을 빛내여주시기 위해 끝없는 로고와 심혈을 바쳐오신
《우리는 하나의 력사유적이나 유물을 보아도 거기에 깃들어있는 우리 나라의 유구한 력사와 찬란한 문화전통, 우리 인민의 슬기와 애국정신을 먼저 볼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민족적긍지와 자부심을 높일수 있습니다.》 (
대성산성과 안학궁을 포함한 대성산일대는 고구려가 427년에 국내성(집안)으로부터 평양으로 수도를 옮기면서 정한 당시의 수도자리였다. B.C.277년에 건국한 고구려는 그후 A.D.3년에 첫수도 졸본(환인)에서 국내성(집안)으로 수도를 옮기였으며 427년에 다시 평양의 대성산일대에로 나라의 수도를 옮기였다. 대성산성과 안학궁은 바로 강대한 고구려의 수도변천과정을 비롯한 당시의 력사적사실들을 전해주는 매우 귀중한 력사유적이다.
대성산남쪽기슭의 안학궁성은 고구려의 왕궁자리였고 대성산성은 이 왕궁을 보위하는 수도방위성이였다. 고구려왕들은 평시에는 안학궁에서 살다가 전쟁이 일어나면 대성산성으로 들어가게 되여있었다. 이렇게 놓고보면 대성산성은 안학궁과 함께 당시 고구려수도의 중요한 구성부분을 이루고있었다고 말할수 있다. 고구려시기 나라의 수도를 건설하면서 왕궁성과 함께 그를 방어하기 위한 산성을 가까이에 배치하는 독특한 수도구성방식은 백제, 신라, 가야 등 동족의 나라들과 이웃한 나라들에서는 찾아볼수 없는것으로서 수도구성의 측면에서 볼 때 고구려인민들의 창조적재능을 보여주는것이다.
대성산성은 둘레가 근 20리나 되는 규모가 큰 산성이다. 력사기록에 의하면 옛날에 성벽 한자를 쌓는데 보통 30공수의 로력이 들었다고 한다. 그러니 대성산성을 쌓는데만도 헤아릴수 없이 많은 로력이 들었을것이다. 수많은 공수를 들여 대규모의 산성을 쌓은것은 나라를 사랑하고 굳건히 지키려는 고구려인민들의 애국정신과 떼여놓고 생각할수 없다. 대성산성을 통하여 당시 고구려사람들이 수도의 방위력을 높이기 위해 얼마나 힘썼는가 하는것을 잘 알수 있다.
산성안에 못을 많이 판것은 중요하게 성을 방어하기 위해서였다. 성싸움은 성문을 굳게 닫고 하기때문에 오래동안 산성을 지키자면 성안에 군사와 무기, 군량도 많아야 하지만 물이 많이 있어야 한다. 물은 산성의 방어력을 보여주는 중요한 요소의 하나이다. 산성안에 있는 못과 샘들은 음료수로만 리용되는것이 아니라 적들을 요정내기 위한 수단으로도 쓰이였다. 옛날 사람들은 성벽가까이에 큰 가마를 걸어놓고 물을 끓이다가 외적이 성벽으로 기여오르면 펄펄 끓는 물을 적의 머리우에 쏟아붓군하였다. 고구려사람들은 대성산성안에 더 많은 물을 저축해두기 위하여 물줄기가 있는 곳에는 못을 만들어 물을 잡아두고 물이 없는데서는 땅을 깊이 파서 인공적으로 물주머니를 만들어놓았다. 대성산성에 대한 전면적인 조사발굴과정에 170개소의 못자리들을 찾아내게 되였다. 수많은 못들을 비롯한 대성산성의 풍부한 물자원은 성의 방어력을 높이기 위한 고구려인민들의 높은 애국심과 창조적재능을 실물그대로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