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우리 나라의 장공인들, 건축가들, 화가들, 선비들은 일본에 건너가서 글과 기술을 보급하고 문화를 발전시키는데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
고대일본문화는 아스까문화시기(6세기 중엽-7세기 중엽까지)에 이르러 획기적으로 발전하여 새로운 단계에 들어서게 되였다.
이 시기 일본문화의 중심지는 야요이시대이래 문화의 중심지였던 북규슈지방으로부터 야마또지방(나라현)으로 옮겨졌다.
아스까문화의 발상지인 야마또지방에서는 고분시대 전기, 중기에는 볼수 없었던 새로운 문화가 출현하였으며 문화의 전반령역에서 획기적인 전환이 일어나게 되였다. 아스까문화는 야마또의 아스까지방에서 번성하였기때문에 그 지명을 따서 붙인 이름이다.
고대일본문화발전에서 획기적계기를 열어놓은 아스까문화의 발생발전은 전적으로 고구려, 백제, 신라문화의 영향밑에 이룩된것이였다.
고대조선의 우수한 문화전통을 계승한 세나라문화는 고구려를 중심으로 하여 더욱 발전하였다. 오늘까지도 그 색이 변하지 않는 색갈로 하여 세계에 걸작으로 알려진 고구려무덤벽화를 비롯하여 삼국시기에 창조된 화려하고 우수한 회화와 섬세하고 치밀한 조각과 공예, 웅장하고 대담한 건축과 우아하고 멋들어진 음악과 무용 등은 그 높은 예술적수준으로 하여 일찍부터 명성을 떨치였다.
이러한 우수한 문화를 가진 세나라사람들은 이전 시기와 마찬가지로 6~7세기에도 일본렬도에 진출하여 아스까문화의 발생, 발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일본서기》를 비롯한 일본력사책들에는 이 시기 백제를 위주로 하는 세나라계통문벌들이 패권을 쥔 야마또왕정은 세나라의 정치인과 학자, 기술자, 장공인은 물론 건축가, 화가, 조각가, 음악가, 무용가들을 대대적으로 초청하여 선진문화를 보급하게 하였다고 기록되여있다.
오늘까지 남아있는 아스까문화시기의 건축물들과 회화작품들, 조각품들과 공예품들이 모두 조선적성격을 띠고있는것은 이러한 사실을 증명해주고있다.
아스까문화가 조선적색체를 띤데 대해서는 지금 내외학계가 인정하고있다. 《일본사사전》(1984년 출판)에서는 아스까문화에 대하여 서술하면서 고구려, 백제문화가 농후한것이 그 특징의 하나인데 그것은 이 문화형성에서 세나라 사람들이 큰 역할을 하였다는것을 실증해준다고 쓰고있다.
이러한 사실은 아스까문화시기의 대표적인 건축물로 널리 알려진 아스까사에 그대로 반영되여있다.
세나라로부터 일본에 불교가 전파된 후 제일먼저 크게 건설된 절간이 바로 아스까사(법흥사, 원흥사라고도 함)이다.
아스까사는 나라현 다까이찌군 아스까촌에 위치하고있는데 1196년에 불이 나서 금당과 나무탑은 타버리고 지금은 그 터와 아스까대불상 등이 남아있다.
일본의 옛 기록에는 아스까사건설에 대해 백제에서 일본에 간 조사공(사원건축가)들이 금당과 탑을 짓고 와박사(기와제조기술자)가 기와를 만들어 지붕을 올렸으며 로반박사들이 상륜(불탑꼭대기부분)을 만들고 화공(화가)이 벽화를 그린것이라고 전하고있다.
당시 탑준공식은 백제풍습대로 성대히 진행되였는데 그에 대해 일본력사책인 《부상략기》에는 다음과 같이 씌여있다.
《아스까사의 탑주추돌가운데에 불사리를 묻을 때 소가노우마꼬이하 대관들이 모여서 큰 의식을 벌렸는데 여기에 참가한 100여명의 사람들이 모두 백제옷차림을 하니 사람들이 한결같이 기뻐하였다.》고 하였다.
그리고 아스까사의 건물배치는 우수한 고구려건축형식에 기준하였다. 아스까사의 건물배치는 처음 596년 1차완공 때에는 1탑 1금당식으로 되여있었으나 608년 2차완공 때에는 1탑 3금당으로 완성되였다. 1탑 3금당이란 절간의 기본인 탑을 중심에 놓고 3개의 금당을 각각 그 좌, 우, 뒤에 배치한 절간형식을 말한다.
1탑 3금당은 고구려에서 널리 보급된 절간배치형식으로서 시기적으로 보나 당시 고구려‐왜관계로 보나 고구려의 절간배치형식이 일본의 절간건축발전에 영향을 주었다는것을 보여준다.
6세기말 7세기초 일본에 건너간 고구려중 혜자는 당시 야마또왕정의 실권자였던 성덕태자의 스승이 되여 활동하였으며 그의 영향밑에 아스까사는 결국 2차건설 때에 1탑 3금당으로 완성되였다고 인정된다.
아스까사건축에는 이밖에도 중심축설계에서 고구려자를 리용한것 등 고구려적영향이 강하게 반영되여있다.
한마디로 말하여 아스까사는 고구려의 우수한 절간형식을 본받아 백제기술자들이 일떠세운 조선식건축물이다.
아스까사뿐아니라 고려사, 백제사, 법륭사 등 아스까문화시기의 이름난 절간건축물들과 신사건축물들, 궁전과 도성, 그밖의 건축물들도 모두 세나라의 영향밑에 이루어진것들이였다.
이처럼 아스까문화의 대표적인 건축에 미친 고구려를 위주로 한 세나라의 영향은 삼국시기 우리 나라의 건축수준이 매우 높은 수준에 있었고 일본의 고대건축에서 세나라사람들이 큰 역할을 놀았다는것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