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연구

한분만 웃으시고 전세계가 울다

 2019.9.21.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김정일동지께서는 위대한 수령님을 우리 당과 인민의 영원한 수령으로 높이 모시고 수령님의 사상과 위업을 대를 이어 변함없이 고수하고 빛내이시였으며 수령영생위업의 기원을 열어놓으시였습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어버이수령님께서 서거하신 후 크나큰 상실의 아픔을 불굴의 의지로 이겨내시며 수령영생위업을 실현하기 위한 사업에 모든 사색과 심혈을 기울이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이 나날에 환히 웃으시는 어버이수령님의 태양상을 최상의 수준에서 형상하도록 하시여 우리 인민의 마음속에 수령님은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불변의 신념을 안겨주시였다.

어버이수령님을 뜻밖에 잃은 크나큰 슬픔으로 하여 산천초목도 비분에 몸부림치고 온 나라 전체 인민이 너무도 절통하여 땅을 치고 오열을 터뜨리던 주체83(1994)년 7월 10일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금수산의사당(당시)에 나오시여 영결식에 모시고 나갈 수령님의 초상화준비정형을 료해하시였다.

당시 일군들은 영결식에 모시고 나갈 위대한 수령님의 초상화를 그전에 행사들에서 모셨던 초상화를 성의껏 수복하여 모시되 초상화의 액틀에 검은 띠를 두르기로 하였다.

그것은 지난 시기 어느 나라에서나 영결식날에는 이미있던 고인의 초상그림이나 사진을 들고 나가는것이 하나의 관례로 되여있었고 웃는 모습의 사진을 들고 나간적은 전혀 없었기때문이였다. 국가수반들인 경우에도 생의 말기에 찍은 공식초상화를 그대로 들고 영결식을 하는것이 보편적인 례로 되였다.

일군들로부터 이 사실을 료해하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몸소 가지고 오신 여러권의 사진첩들을 내놓으시며 영결식에 모시고 나갈 초상화는 환히 웃으시는 수령님의 영상으로 선정해야 할것 같다고 하시면서 완공된 서해갑문을 부감하시며 더없이 만족하게 웃으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사진을 원본으로 하여 환히 웃으시는 수령님의 초상화를 잘 형상하여 모시도록 하시고 그 과업을 만수대창작사에 맡겨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영결식에 환하게 웃으시는 어버이수령님의 태양상을 모시도록 하신데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인민들과 영결하시면서도 웃으며 가시도록 하여 인민들의 심장마다에 수령님은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신념을 깊이 새겨주시려는 숭고한 뜻이 담겨져있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그후 영결식에 모시고나갈 위대한 수령님의 초상화를 최상의 수준에서 형상하도록 세심히 보살펴주시였다.

만수대창작사 창작가들이 위대한 장군님께서 선정하여주신 사진원화대로 위대한 수령님의 초상화를 형상하기 시작한 때로부터 이틀이 지난 7월 13일 수령님의 령구가 안치된 금수산의사당에 나오시여 수령님과 영결하는 행사를 철저히 우리 식으로 할데 대한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그 자리에 참가한 만수대창작사의 한 책임일군에게 영결식에 모실 초상화가 어떻게 되였는가고 물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선정하여주신 사진원화대로 창작가들이 위대한 수령님의 초상화를 형상하고있다는 책임일군의 보고를 받으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수령님과 영결하는 행사를 할 때 환하게 웃으시는 수령님의 모습을 형상한 초상화를 모시려고 그 사진원화를 자신께서 직접 선정하여주었다고 하시면서 우리 인민들이 환히 웃으시는 모습을 형상한 초상화를 보면 놀랄것이며 수령님께서 생존해계신다고 생각할것이라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장군님의 한없이 숭고한 뜻을 뜨겁게 받아안은 창작가들은 어떻게 하면 그이의 크나큰 믿음과 기대에 보답하겠는가 하는 충정의 일념으로 가슴을 불태우며 온갖 재능과 심혈을 깡그리 바쳐 창작전투를 벌린지 3일만에 환하게 웃으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초상화를 훌륭히 완성하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환하게 웃으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초상화를 다 형상하였다는 보고를 받으시고 주체83(1994)년 7월 14일 만수대창작사를 찾으시였다.

옷깃을 여미시며 정중하신 자세로 위대한 수령님의 초상화앞에 이르시여 가까이 다가서기도 하시고 몇걸음 물러서기도 하시며 시간가는줄 모르시고 수령님의 영상을 새기고 또 새기시던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수령님의 초상화를 잘 형상하였다고 하시면서 수령님의 초상화는 보면 볼수록 수령님께서 생존해계실 때의 모습 그대로 환하게 웃으시는 인상이 강하게 안겨온다고, 우리가 수령님께서 생존해계실 때에 이렇게 환하게 웃으시는 초상화를 모시였더라면 얼마나 좋았겠는가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시간이 퍼그나 흘렀으나 자리를 뜨실 념을 않으시고 위대한 수령님의 초상화를 바라보시던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수령님의 옷색갈과 넥타이를 더 잘 형상하여야 하겠다고 하시면서 수령님께서 제일 좋아하시던 양복과 넥타이의 색갈이며 무늬, 그 특징에 대하여 하나하나 구체적으로 가르쳐주시였다. 그러시고도 마음이 놓이지 않으시여 위대한 수령님께서 생전에 애용하시던 넥타이를 가져오게 하시고는 그것을 친히 창작가에게 넘겨주시며 초상화를 더 높은 수준에서 완성하도록 하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이에만 그치지 않으시고 위대한 수령님의 초상화액틀도 세계적인 전례를 깨뜨려 수령님께서 사랑하신 우리 나라의 국화인 목란꽃형태의 흰꽃으로 소담하게 장식할데 대하여 가르쳐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초상화에서 좀처럼 눈길을 떼지 못하시는 위대한 장군님께 한 일군이 력사에는 기억에 남는 위인들의 초상이 적지 않지만 우리 수령님과 같이 자애롭고 인자하시고 거룩하신 영상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수 없다고 말씀드렸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그의 말에 수긍하시며 영결식때에 환하게 웃으시는 수령님의 초상화를 텔레비죤방송으로 공개하면 세계에 큰 파문을 일으킬것이라고, 새로 형상한 위대한 수령님의 초상화는 대단한 걸작이며 명작이라고 거듭 만족을 표시하시고나서 우리는 수령님께서 환하게 웃으시는 초상화를 영구보존하며 후세에 길이 전하여야 한다고 하시며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는 우리 인민들의 심장속에 영원히 살아계실것이라고 확신에 찬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장군님의 가르치심을 받아안은 창작가들은 위대한 수령님의 초상화를 최상의 수준에서 완성하기 위하여 장군님께서 가르쳐주신대로 옷색갈과 넥타이를 다시 형상하였으며 온 창작사성원들이 지성을 담아 수천송이의 흰꽃을 만들어 초상화의 액틀둘레를 장식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과의 영결식을 하루 앞둔 7월 18일 완성된 위대한 수령님의 초상화를 또다시 보아주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수령님의 초상화옷색갈이 아주 좋다고, 수령님께서 애용하시던 넥타이도 자신께서 골라준대로 형상하였는데 아주 잘되였다고 하시면서 수령님의 초상화가 확실히 잘되였다고 커다란 만족을 표시하시였다.

위대한 장군님의 숭고한 뜻과 세심한 지도에 의해 환하게 웃으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태양상이 최상의 수준에서 형상되여 주체83(1994)년 7월 19일 영결식날 수령님의 령구차행렬앞에 정중히 모셔지게 되였다.

영결식날 100여리 연도에서 환하게 웃으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태양상을 뵈온 평양시민들은 물론 TV를 통해 이것을 목격한 온 나라 전체 인민들과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은 뜻밖의 충격에 눈물의 바다를 펼쳐놓았다.

불원천리 평양에 와서 수령님의 령전에 조의를 표시한 《세계평화련합》공동의장인 《세계일보》사장은 영결식때 수령님께서 환하게 웃으시는 초상화를 보면서 이것이야말로 천재적인 감각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생각해낼수 없는것이라는것을 느꼈다고 하면서 《위대한 주석님께서 환하게 웃으시는 초상화를 보는 순간 왈칵 울음이 터져나오는것을 어찌할수 없었다. 한분만 웃으시고 전세계가 울게 한 이것이야말로 극치의 극치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고 하였다.

참으로 한분만 웃으시고 전세계를 울게 한 위대한 수령님의 태양상은 인민의 심장속에 어버이수령님의 모습이 영생하게 하시려는 위대한 장군님의 열화와 같은 충실성과 천재적인 예지, 정력적인 령도에 의하여 마련된 화폭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