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자기 민족의 슬기로운 력사와 찬란한 문화가 깃든 력사유적들을 원상대로 복구해놓아야 합니다.》
고구려벽화무덤은 우리 나라 력사에 존재한 첫 봉건국가였던 고구려때에 창조된 세계적인 문화유산이다.
귀중한 고구려벽화무덤들에 대한 발굴은
온 나라가 전쟁의 불길속에 잠겨있던 1953년 3월 평안남도 순천시 룡봉리에서 진행된 료동성무덤발굴이 그 대표적인 실례로 된다.
료동성무덤은 1934년경에 일제에 의하여 1차적으로 도굴당하였다. 당시 일제의 총독부소속 영림서가 대동강의 홍수에 떠내려온 원목을 찾기 위하여 순천군 북창면 룡하리(당시)근방을 조사하다가 강변에서 약간 불룩한 곳이 있는것을 보고는 그것이 혹시 땅속에 원목을 감춘것이 아닌가하고 파보다가 발견하고는 도굴하였다.
미제의 야수적인 폭격이 강화되던 1953년 봄 주변의 농민들은 방공호를 파다가 무덤을 발견하게 되였다.
이 사실을 보고받은 문화유물보존조사위원회(당시)는 1953년 3월 학술원을 현지에 파견하여 과학적인 발굴을 진행하고 보존대책을 세웠다.
이 무덤은 2개의 안길과 안칸, 안칸뒤에 4개의 주검칸이 달려있어 짜임새가 독특한 무덤이다. 벽들(그림 1, 2)에는 성곽도와 사신도가 그려져있고 《료동성》이라는 글자까지 씌여져있다.
료동성무덤은 4세기 고구려의 력사와 문화를 밝히는데 가치있는 자료이다.
벽화에 그려진 성곽도는 료동성이며 거기에 그려진 3층짜리 건물(그림 3)이 《삼국유사》에 기록된 료동성 육왕탑이라는것이 밝혀졌다.
무덤의 주인공은 고구려가 료동성을 점령하기 위하여 진행한 전투에서 희생된 사람들이라는 사실도 해명되였다.
전쟁의 불길속에서 발굴된 료동성무덤은 2004년 중국 소주에서 열린 유네스코(UNESCO) 세계유산위원회 제28차회의에서 등록된 63기의 고구려벽화무덤중의 하나로 되였다.
해방후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