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연구

명당자리에 개건된 시조릉

 2024.7.25.

조선의 수도 평양의 강동군 문흥리의 대박산마루에 로동당시대에 민족의 시조릉답게 훌륭히 개건되여 위엄있는 모습으로 웅건한 자태를 드러내고 높이 솟아있는 단군릉.

총부지면적이 45정보나 되고 돌범조각 하나의 무게만도 90여t 그리고 하나의 무게가 25t이나 되는 12개의 석인상, 릉건설에 쓰인 화강석판만 해도 무려 72 000여개나 헤아리는 민족의 시조릉은 참으로 웅장하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오랜 세월 신화로만 전해오던 단군을 우리 민족의 원시조로 찾아주시고 시조릉을 훌륭하게 개건하도록 하시였습니다. 수령님께서는 단군릉개건에 깊은 관심을 돌리시고 몸소 릉자리까지 잡아주시였습니다. 수령님께서 잡아주신 단군릉자리는 명당자리입니다.》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단군릉을 돌아보면서 민족의 시조릉인 단군릉이 참으로 묘한 명당자리에 자리잡고있다고 감탄을 금치 못해하고있지만 그 명당자리가 발굴당시의 단군릉자리가 아니라 위대한 수령님께서 몸소 잡아주신 자리라는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못할것이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단군릉이 발굴되고 단군의 유골이 발견되였다는 보고를 받으시고 단군릉발굴은 우리 고고학의 위대한 승리이며 조선민족의 크나큰 자랑이라고 못내 기뻐하시면서 일군들에게 단군릉을 민족의 시조릉답게 훌륭하게 개건할데 대하여 교시하시였다.

특히 새로 건설할 단군릉의 위치문제를 두고 누구보다 깊이 마음쓰시며 많은 생각을 하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마가을의 차거운 들바람이 불어치던 주체82(1993)년 9월 27일 80고령에도 불구하고 강동군 읍에 있던 본래의 단군릉을 찾으시였다.

시조왕의 무덤으로서는 너무도 초라한 릉을 깊은 관심속에 돌아보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일군들에게 읍에서 7리가량 떨어진 문흥리의 대박산기슭에 단군릉을 건설할만한 좋은 자리가 있다고 가르쳐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교시를 받들고 일군들이 즉시 그곳으로 달려갔으나 그이께서 념두에 두신 자리를 도저히 찾을수가 없었다.

아무래도 일군들에게 직접 개건될 단군릉자리를 잡아주어야 하겠다고 생각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몸소 문흥리로 나오시였다. 벌판한가운데 차를 세우게 하신 그이께서는 단번에 지금의 단군릉자리를 손들어 가리키시며 저기가 명당자리라고, 저기에 앉히는것이 제일 좋다고 단군릉개건위치를 직접 잡아주시였다.

그 일대에는 《대박산》, 《아달산》, 《림경대》, 《단군호》를 비롯하여 단군과 관련된 전설이 깃든 이름들도 많아 여러모로 가장 적합한 자리였다.

한평생 인민들속에 계시며 늘 현지지도의 길을 이어오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여기 문흥리에만도 10차례이상이나 찾아주시였으며 이곳 지형을 손금보듯하고 계시였던것이다.

력사에 도통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강동군에서도 단군과 관련된 전설이 지명에 가장 많이 집중되여있는 이곳 문흥리 대박산기슭의 야산언덕을 단군릉자리로 잡아주시였다.

그 일대야말로 참으로 보기 드문 명당자리였던것이다.

시원하게 탁 트인 앞쪽으로는 멀지도 가깝지도 않게 수정천이 동서로 유유히 흐르는데 릉의 왼쪽으로는 푸르청청한 산발이 릉처럼 길게 놓여있고 오른쪽으로는 흰범이 태평스레 누워있는듯 백화만발한 들이 가없이 펼쳐졌으니 이 얼마나 명당자리인가.

위대한 수령님의 애국애족의 숭고한 뜻을 그대로 이어받으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단군릉개건사업을 중요한 사업으로 틀어쥐시고 대박산의 명당자리에 단군릉이 민족의 시조릉답게 훌륭히 개건되도록 정력적으로 이끌어주시였다.

개천절행사
사진. 단군릉에서 진행되는 개천절행사

위대한 수령님위대한 장군님의 손길아래 로동당시대에 민족의 시조릉으로 웅장하게 일떠선 단군릉은 오늘도 어버이 그 사랑을 전하며 반만년력사의 유구성을 온 세계에 과시하는 민족의 귀중한 문화적재보로 빛을 뿌리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