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종합대학 경제학부 부교수 김옥
2022.5.24.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가 대학, 전문학교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기로 한것은 결코 모든것이 풍족하거나 나라가 부자가 되여 그렇게 한것이 아닙니다. 지금 우리에게는 재정적으로 곤난한 점이 많지만 민족간부양성사업이 중요하기때문에 대학과 전문학교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기로 하였습니다.》 (《김일성전집》 제6권 164페지)
후대교육과 민족간부양성사업을 언제나 혁명의 승패와 민족의 장래운명을 좌우하는 근본문제의 하나로 내세우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해방후 건국의 첫날부터 위대한 생애의 마지막시기까지 온 나라 학생청년들의 자애로운 어버이가 되시여 그들의 학습조건과 생활형편에 이르기까지 따뜻이 보살펴주시며 온갖 사랑과 은정을 다 돌려주시였다.
후대들을 위하여, 조국의 미래를 위하여 끊임없이 새겨가신 위대한 수령님의 친어버이의 사랑의 이야기들가운데는 조국이 해방된지 얼마 되지 않은 건국초기의 어려운 형편에서도 대학, 전문학교 학생들에게 우리 나라에서 처음으로 되는 국가장학금을 수여할데 대한 결정을 채택하도록 하여주신 전설같은 사랑의 이야기도 있다.
우리 나라에서 장학금제도는 주체36(1947)년 9월부터 실시되였다. 그러나 국가적으로 정식 실시되기 전에 벌써 김일성종합대학 학생들이 위대한 수령님의 사랑이 깃든 장학금을 받아안았다는 사실을 알고있는 사람들은 아마도 많지 못할것이다.
대학창립초기까지만 하여도 로동자와 농민, 국가기관 사무원들의 자녀들은 학비때문에 대학이나 전문학교에서 공부하기 어려운 형편에 있었다. 그러다나니 재학도중에 퇴학하는 현상들까지 나타나고있었다.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되신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어머님께서는 주체36(1947)년 4월 28일 대학에 찾아오시였다.
뜻밖에 어머님을 만나뵈온 대학일군이 어쩔바를 몰라하자 어머님께서는 수고한다고 인사말을 건네시고는 학생들의 생활형편을 알아보자고 왔다고, 가정사정이 곤난하여 대학을 그만두는 학생들이 있다는데 사실인가고 물으시였다. 일군이 무거운 목소리로 그런 학생들이 한학급에 2~3명정도씩 된다고 말씀올리자 어머님께서는 지금 나라의 경제형편이 넉넉하지 못하다보니 학생들에게 마음놓고 공부할수 있는 충분한 조건을 지어주지 못하고있다고, 그렇지만 지금 형편에서도 얼마든지 참고 공부할수 있다고 하시면서 학생들은 곤난을 이겨내면서 나라의 훌륭한 민족간부가 되기 위하여 애써 공부해야 한다고 신심을 북돋아주시였다.
그때로부터 한달이 되여오던 5월 26일 위대한 수령님께서 대학일군들과 학생대표들을 몸가까이 불러주시였다.
그들의 생활형편을 알아보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는 종합대학을 세울 때 과거 일제식민지통치하에서 가난하게 산 로동자, 농민의 아들딸들을 우선적으로 받아들이는 조치를 취하기는 하였으나 아직 그들에게 마음놓고 공부할수 있는 조건을 충분히 마련해주지 못하였다고, 우리는 나라의 사정이 좀 어렵기는 하지만 앞으로 전문학교와 대학학생수의 50%에 해당하는 학생들에게 국가에서 장학금을 주려고 한다고, 이렇게 되면 생활이 아직 넉넉하지 못한 로동자, 농민의 아들딸들이 나라의 혜택을 받으면서 공부할수 있게 될것이라고 말씀하시였다.
그러시고는 장학금만이 아니라 앞으로 여름옷과 겨울옷도 내주려고 하는데 그렇게 하면 모든 학생들이 안착되여 공부할수 있을것이라고 하시였다.
사실 장학금문제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대학이 창립되기 전부터 마음써오신 문제들중의 하나였다.
종합대학의 학생대렬을 어떻게 꾸리겠는가 하는 문제를 둘러싸고 의견들이 분분하던 때인 주체35(1946)년 6월 하순 어느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종합대학창립준비위원회 위원들을 친히 부르시여 대학안에 예비과를 내올데 대한 조치를 취해주시면서 어렵지만 예비과학생들에게는 한사람도 빠짐없이 장학금과 교과서, 학용품 등을 내주어야 한다고 이르시였었다.
이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담화를 마치시면서 앞으로 과학의 전당인 대학에서 마음껏 공부하여 민주주의자주독립국가건설에 이바지할 훌륭한 인재가 되라고 거듭 당부하시였다.
주체36(1947)년 6월 전문학교 및 대학학생 장학금수여에 관한 결정이 채택발표되였다.
결정이 발표되자마자 온 나라는 크나큰 환희와 격정에 휩싸여 명절처럼 들끓었고 대학공부를 하는 자식들때문에 걱정이 많던 부모들은 목메여 울음을 터뜨렸다.
갓 해방되여 아직은 모든것이 부족한 나라형편에서 대학을 세우고 학생들을 공부시키는것만도 정말로 큰 배려이고 용단이였다. 그런데 대학생들에게 장학금까지 수여해준다니 어찌 그 가치를 다 계산할수 있겠는가.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전문학교 학생들과 대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줄데 대한 결정이 발표된 후 학생들의 학습열의에 대해 알아보시고나서 가정사정이 좀 어렵다고 하여 퇴학한 학생들을 다시 데려다 공부시킬데 대하여, 학교로 되돌아온 학생들과 당장 생활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먼저 장학금을 주도록 할데 대하여 간곡히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이렇듯 뜨거운 사랑과 크나큰 은정속에 대학에 다시 돌아온 수많은 학생들은 국가장학금은 물론 학용품까지 무상으로 공급받으며 배움의 나래를 활짝 펼치게 되였다.
참으로 위대한 수령님은 자라나는 새 세대들을 위하여 모든것을 다 바치신 자애로운 어버이, 스승이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