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선조들은 그림을 아주 잘 그렸습니다. 옛날 우리 나라 화가들이 그린 그림들가운데는 걸작이 많습니다.》 (
조선민족의 회화사의 갈피를 더듬어보면 그림을 잘 그려 민족미술을 꽃피우는데 이바지한 유명무명의 화가들이 적지 않다. 그러한 화가들가운데는 세계의 명산 금강산을 생동한 사실주의적화폭으로 그려낸 18세기 중엽에 활동한 화가 관허자도 있다.
《금강산전도》(금강산전경도)를 그린 관허자(이름은 기록된것이 없고 호만 관허자로 되여있음)의 창작활동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알려져있지 않다. 다만 조선봉건왕조 후반기에 활동한 실학자 리긍익이 쓴 《연려실기술》에 그가 1725년에 출생한 사람이며 《금강산전도》를 그린 뛰여난 화가였다고만 기록되여있을뿐이다. 그러면서 그가 그림을 그리기 위해 금강산을 수차례에 걸쳐 오르내렸다고 하였다.
예로부터 금강산은 온갖 꽃이 만발하여 그윽한 향기를 풍기고 그 모양이 아름다운 보석과 같다고 하여《천하제일명산》이라고 불리워왔으며 옛사람들은 금강산을 노래나 시에 담아 많이 자랑하였다.
조선의 옛문헌인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금강산은 오랜 력사를 거쳐 내려오면서 <풍악>, <개골>, <상악>, <선산>, <봉래>, <기달>, <널반>, <중향성> 등 여러가지 이름으로 불리워왔다. 이 가운데서도 온갖 꽃이 만발하여 그윽한 향기를 풍기는 봄날의 명산을 가장 빛나고 아름다운 보석에 비기여 봄에는 <금강산>, 봉우리와 층암절벽을 감도는 흰 구름과 울창한 록음, 갖가지 아름다운 새소리와 폭포소리 요란한 여름에는 <봉래산>, 온 산에 울긋불긋 단풍이 불타고 벽계수 흐르는 가을에는 <풍악산>, 바람이 불고 온 산이 눈꽃과 얼음기둥으로 덮이여 특이한 경치를 이루는 겨울에는 <개골산>이라고 불렀다.》라고 기록되여있다.
가는곳마다 사향노루며 꿩, 산양, 후리새, 종달새, 꾀꼬리, 뻐꾸기 등 온갖 새들이 반겨 맞아주고 발을 담그는 곳마다에서 잉어, 붕어, 금강모치, 열묵어를 비롯한 여러가지 물고기들이 꼬리를 치며 감돌아 노는 모습은 예로부터 내려오는 금강산의 특이한 자연풍경이였다고 볼수 있다. 하기에 예로부터 각이한 사람들이 금강산을 찾아 그림도 그리고 여러가지 문학작품들도 창작하였다.
관허자도 그러한 사람들중의 한 사람이였다.
관허자는18세기 중엽에 금강산을 여러차례 답사한 끝에 자기의 모든 재능을 다 발휘하여 《금강산전도》를 그려냈다.
《금강산전도》(93.8×307.6㎝ 종이, 먹)는 산수가 수려하고 천태만상의 경치를 이룬 금강산의 장엄한 전경을 하나의 화폭에 담은 그림이다.
그림은 내금강에 중심을 두고 그리면서 외금강과 해금강에 이르기까지의 넓은 지역의 경치를 함축하여 다 그려넣었다.
내금강에서는 웃부분에 금강산의 최고봉인 비로봉이 있고 그 아래로 백운대와 혈망봉, 망군대, 일출봉, 월출봉 등의 봉우리들이 보이며 물안개를 일쿠며 떨어지는 폭포와 맑은 물이 흘러내리면서 곳곳에 이루어놓은 담, 소들도 생동하게 그려져있다. 또한 장안사, 표훈사, 정양사 등 우리 선조들의 발전된 건축술을 보여주는 옛절들과 보덕암을 비롯한 암자들이 있는데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미제의 야만적인 폭격에 의하여 다 파괴되고 터만 남아있는 장안사의 웅장한 옛모습을 그대로 볼수 있어 감회에 잠기게 하고있다.
화가는 내금강을 집중적으로 다루면서 만물상을 비롯한 외금강의 아름다운 풍치를 실감있게 그렸다. 특히 골짜기의 여기저기에 자리잡은 초가집들가운데서 꼭 닫긴 방문, 뜰안의 장독과 농기구들, 집주위를 두른 울타리들까지 세밀하고 진실하게 그려져있어 짙은 향토색을 띠고있으며 그것은 그대로 민족을 사랑한 화가의 아름다운 정신세계와 진보적인 창작태도를 보여주고있다.
해금강에서는 삼일포와 총석정, 월송정을 비롯한 아름다운 호수경치와 바다가경치를 펼쳐보이면서 큰 돛을 단 고기배와 사람을 가득 태운 나루배도 그려넣었다.
화가는 중심적인것은 살리고 부차적인것은 생략하는 수법을 써서 이렇듯 방대한 내용을 하나의 화면에 담으면서도 섬세하고 간결하고 힘있는 필치로 모든 자연지물과 건축물들을 정확하고 생동하게 묘사하였다.
참으로 이 작품은 담고있는 내용이 비할바없이 방대하며 표현의 세밀도에 있어서 놀라울 정도로 구체적인것으로 하여 자랑스러운 민족회화유산의 하나로 되고있다.
20세기 전반기에 나온 옛화가들의 생존년대를 기록한《근역서화징》에도 관허자는 기록되여있지 않다.
관허자는 인민들이 사랑하는 조선의 천하절승 금강산을 생동하게 재현시키고 전문미술창작기관인 도화서 화원들 못지 않는 세련되고 활달한 필치를 발휘함으로써 민족회화사의 갈피에 뚜렷한 자욱을 새겨놓을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