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종합대학 외국어문학부 박사 부교수 한영남
2019.10.7.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한없이 폭넓고 웅심깊은 인정미를 지니신 수령님께서는 자주성을 지향하는 세계 여러 나라 당, 국가수반들과 정계, 사회계, 학계의 수많은 저명한 인사들과도 두터운 우의를 맺으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는 주체사상을 창시하시여 자주시대의 새 력사를 펼쳐주신 희세의 정치가, 세계 진보적인류가 나아갈 앞길을 환히 밝혀주신 세계혁명의 탁월한 수령이실뿐아니라 한없이 고결한 인간애를 지니시고 진보적인류를 따뜻이 품어주신 만민의 자애로운 어버이, 인간사랑의 참다운 귀감이시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수많은 외국의 벗들에게 베풀어주신 수많은 인간사랑의 력사의 갈피갈피에는 숭고한 사랑과 의리로 시대와 력사를 수놓으신 가슴뜨거운 이야기들이 수없이 아로새겨져있다.
그 수많은 가슴뜨거운 이야기들가운데에는 주체73(1984)년 5월 21일, 위대한 수령님께서 외국방문의 장정을 이어가시던 길에 노보씨비르스크에서 노비첸꼬와 감격적인 상봉을 하시는 감동적인 화폭이 펼쳐졌던 이야기가 있다.
노비첸꼬는 1945년 우리 나라가 일제의 식민지통치에서 해방된 이후시기 위대한 수령님의 안녕을 지켜 자기 한몸을 서슴없이 내댄 국제주의전사였다.
수십년세월이 흐르도록 그를 잊지 않으시고 심중에 새겨두고계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광활한 씨비리대지를 횡단하시는 길에 노보씨비르스크의 농촌마을에서 조용히 여생을 보내고있던 그를 만나주시였던것이다.
수십년이라는 세월의 흐름속에 씨비리의 평범한 늙은이로 변한 노비첸꼬, 하지만 혈기에 넘치던 젊은 시절의 붉은군대 군관을 대번에 알아보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너무도 반가우시여 노비첸꼬를 넓은 품에 한껏 그러안으시였다.
20세기를 대표하는 걸출한 위인과 씨비리벽촌에 후반생을 묻은 평범한 전쟁로병과의 상봉은 그야말로 사변적인것이였다.
위대한 수령님을 우러러 열광적으로 환호하던 군중들은 그 광경앞에서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가 살아온 경위와 가정형편에 대해 일일이 알아보시고 세월의 이끼속에 파묻혀있던 그의 위훈을 하나하나 회고해주시였다.
노보씨비르스크에서 노비첸꼬와 헤여지신 후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에게 자신의 명의로 된 선물을 전달하도록 하시고 그의 위훈을 내용으로 하는 영화도 하나 잘 만들어야 하겠다고 교시하시였다.
모스크바에 체류하시는 기간에도 노비첸꼬에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로력영웅칭호를 수여하도록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사랑과 은정은 이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외국방문을 마치신지 얼마 안되여 노비첸꼬와 그의 가족을 평양으로 불러주시였다.
머나먼 지방현지지도의 길에서 노비첸꼬를 만나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수류탄을 몸으로 막아나섰던 대담무쌍한 영웅전사라고 하시면서 그에게 자신의 존함이 새겨진 금시계를 선물로 안겨주시였다.
그후에도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노비첸꼬를 자주 우리 나라로 불러주시고 주실수 있는 사랑과 은정을 다 돌려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수많은 외국의 벗들에게 베풀어주신 인간사랑의 가슴뜨거운 이야기들가운데에는 또한 에꽈도르국회 의원이며 과야낄종합대학 부총장이며 주체사상국제연구소 리사였던 알바 챠베스에게 베풀어주신 뜨거운 사랑의 이야기도 있다.
알바 챠베스는 녀성의 몸이였지만 대학시절부터 사회주의사상을 지향하여 이 운동에 나서서 투쟁하여왔는데 그것은 그의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아온데 있었다. 그의 할아버지는 에꽈도르사회당 창건자의 한 사람으로서 수십년동안 사회주의리념의 실현을 위하여 적극 활동하였으며 아버지도 사회주의리념을 자기 나라에 구현하기 위한 정치활동에 한생을 바치였었다.
알바 챠베스는 아버지의 뜻을 이어 사회주의운동에 몸을 잠구었지만 사회주의를 건설하기 위한 옳바른 진로를 찾지 못하고있었다. 더우기 1980년대 중엽에 들어서면서 동유럽사회주의나라들에서 떠돌기 시작한 《이상기류》는 더욱 그를 난감하게 만들었다.
그러던 그가 어느날 한 외국기자가 쓴 조선방문기를 읽게 되였는데 그 기사에서 조선이 세계사회주의의 본보기라고 한 내용을 보고 큰 충격을 받게 되였다.
그리하여 그는 조선의 사회주의제도에 대해 자기 눈으로 직접 확인하기 위하여 여러차례에 걸쳐 우리 나라를 방문하게 되였으며 방문과정에 그는 근로인민대중을 가장 귀중한 존재로, 력사의 주인으로 내세우고 모든것이 인민대중을 위하여 복무하는 조선의 사회주의야말로 인류의 오아시스, 만민의 등대라는것을 확신하게 되였다.
그는 인간중심의 주체사상을 창시하시고 사회주의본보기를 마련하시여 진보적인류에게 신심을 안겨주신 위대한 수령님이시야말로 위인중의 위인이시라는것을 가슴깊이 절감하였다.
그럴수록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를 꼭 만나뵙고 그이의 가르치심을 받고싶은 충동을 금할수 없었다.
주체79(1990)년 5월 알바 챠베스는 마침내 위대한 수령님을 만나뵙는 영광을 지니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결론을 주셔야 할 국가적인 문제들이 수많이 제기되였지만 모든 사업을 뒤로 미루시고 라틴아메리카에서 온 알바 챠베스의 가족일행을 만나주시였다.
격동된 마음을 안고 위대한 수령님께서 계시는 곳에 도착한 알바 챠베스와 가족일행은 놀라움을 금할수 없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환한 미소를 지으시고 그의 가족일행을 기다리고계시였던것이다.
집을 떠나 멀리 갔던 친자식들을 맞아주시듯 알바 챠베스와 남편의 손을 따뜻이 잡아주시고 그의 자식들을 뜨겁게 포옹해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들을 방으로 친절히 안내해주시였다. 그들과 자리를 같이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건강이며 가정생활에 대하여 다심한 어버이의 심정으로 하나하나 물어도 보시고 그들이 무랍없이 제기하는 문제들에 대하여 차근차근 해설도 해주시였다.
이윽하여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들에게 점심식사나 함께 나누자고 따뜻이 말씀하시고 식사가 마련된 옆방으로 이끄시였다. 그러시고는 그들의 자리까지 일일이 정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들에게 음식을 권하기도 하시고 불편한 점은 없는가 다정히 물어보기도 하시며 조선을 자기 집처럼 생각하고 온 가족이 어느때든지 다시 와서 금강산, 묘향산구경도 하면서 즐겁게 휴식하라고 은정넘친 말씀을 해주시였다. 그리고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힘있는 존재이기때문에 하늘에서 별을 따오자고 결심하면 별도 따올수 있다고 하시며 조선의 사회주의사회는 인민을 가장 귀중히 여기고 높이 내세우는 사회라고, 때문에 조선인민은 자기의 사회주의를 더없이 좋아한다고 교시하시였다.
시간이 한초한초 흐르는 속에 막내아들이 자기 가족이 조선방문의 나날에 며칠밤을 지새우며 쓴 시《위대한 김일성주석께 드리는 헌시》를 정중히 읊어드리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누구보다 먼저 박수를 쳐주시며 감사하다고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헤여지기 아쉬워하는 그들의 심정을 헤아리시고 사랑의 기념사진도 찍어주시였다.
후날 알바 챠베스는 그때의 감정을 이렇게 피력하였다.
《원래 나는 김일성주석의 로작을 탐독하면서 그이는 탁월한 철학가, 위대한 사상리론가, 군사적천재, 세련된 령도예술가이시라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정작 몸가까이 만나뵈옵고보니 그이는 탁월한 철학가, 위대한 사상리론가, 천재적인 군사전략가, 세련된 령도자이시기 전에 인간에 대한 끝없는 사랑, 인민에 대한 뜨거운 사랑을 천품으로 체현하고계시는 위대한 인간이시였다.
정녕 김일성주석님은 그 누구도 따를수 없는 숭고한 덕망을 지니신 절세의 위인, 인류의 자애로운 어버이이시며 인간에 대한 은혜로운 사랑의 전설적상징이시다. 바로 그러한분이시기에 인간중심의 사회주의리론을 창시하실수 있었고 인민이 주인된 참다운 사회주의사회를 건설하실수 있었다.
나는 국경도 민족도 정견도 초월하여 풍기는 대성인의 독특한 위인적향기에 완전히 매혹되였다.》
이 말은 그 폭과 깊이를 헤아릴수 없는 위대한 수령님의 인덕과 사랑의 세계에 대한 례찬이였다.
직업의 귀천과 인종, 사상과 신앙의 차이를 초월하여 각계각층 사람들을 사랑과 정을 다해 뜨겁게 대해주신 인간중의 인간, 한번 만나 정을 주고 믿음을 주시면 세월의 끝까지 품어주고 보살펴주시는 인간사랑의 최고화신이 바로 우리 수령님이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