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연구

국수값이 전하는 위인의 인민적풍모

 2023.5.15.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수령님은 우리 인민과 세계 진보적인민들의 다함없는 존경과 흠모를 받으시였지만 자신에 대한 그 어떤 특혜와 특전도 허용하지 않으시고 언제나 인민들과 같이 겸허하고 소박하게 생활하시였다.》

한평생 근로하는 인민들속에 계시며 자신에 대한 그 어떤 특혜와 특전도 허용하지 않으시고 언제나 소박하게 생활해오신 위대한 수령님의 숭고한 인민적풍모를 보여주는 이야기들중에는 국수값이 전하는 가슴뜨거운 일화들도 있다.

주체34(1945)년 10월 3일 항일혁명투사들과 함께 모란봉에 오르시였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점심이 다 되여 돌아오시는 길에 서문면옥(당시)에 들리시였다.

국수를 잘한다기에 왔다고 하시며 면옥주인과 허물없는 인사를 나누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투사들에게 평양랭면의 유래에 대하여 감회깊게 이야기해주시면서 손수 주인으로부터 랭면을 넘겨받으시여 투사들의 앞에 놓아주시였다.

식사가 끝날무렵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인에게 이제는 나라가 해방되였는데 주인님도 새 조국건설에 나선 인민들을 위하여 한몫해야 한다고 하시며 국수값을 몸소 치르시였다. 항일의 혈전만리를 헤치시며 빼앗긴 나라를 찾아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인민들이 올리는 메밀국수 한그릇도 값을 물고서야 자리를 뜨시였다.

국수값과 관련하여 생긴 일화에는 이런 내용도 있다.

주체35(1946)년 2월 12일 점심에 있은 일이다.

평양쪽에서 신의주로 가는 길가의 수수한 국수집앞에서 차를 멈춰세우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국수집마당에 들어서시며 집주인을 찾으시였다.

국수집주인은 점심참이라 길가던 길손들이 식사를 하러오는줄로 심상히 여기고 집이 어지럽지만 어서 들어오라며 방안으로 안내하였다.

가난이 엿보이는 소박한 방안에 들어서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만면에 환한 미소를 지으시고 집주인에게 어떻게 되여 여기에 국수집을 차려놓게 되였는가고 다정히 물으시였다.

너무도 소탈하게 물어주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물으심에 국수집주인은 어려움도 잊고 생활이 너무도 구차하여 농사를 하면서 겸사하여 돈을 좀 벌가하여 국수집을 차려놓기는 하였지만 별로 나아지는것이 없다고 스스럼없이 대답올렸다.

집주인의 이야기를 들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방안에 와있던 여러명의 농민들과도 아무런 간격도 없이 농사이야기도 나누어주시고 이제는 나라가 해방되였으니 거꾸로 된 세상을 바로잡고 농민들이 제땅을 가지고 농사를 지어 잘살게 하여야 한다고 깨우쳐주기도 하시였다.

난생처음 들어보는 어버이수령님의 해박하고 구수한 이야기에 심취되여 시간가는줄도 모르는데 문득 부엌에서 국수가 다 되였다는 기별이 올라왔다.

농민들은 큰 간부이신것 같은데 방해가 될가보아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서려고 하였다.

그런데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오늘 나에게 좋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는데 같이 국수를 들며 이야기를 마저 나누자고 하시며 허물없이 그들과 식탁을 마주하시고 몸소 수저까지 농민들의 손에 쥐여주시였다.

잠시후 식사를 마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국수맛이 참 좋다고 거듭 치하하시며 수행일군들에게 국수값을 치르라고 이르시였다.

그러자 국수집주인은 펄쩍 뛰며 누구신지는 모르겠으나 절대로 국수값을 받을수 없다고 사양하였다.

주인의 진정어린 말을 들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의 손을 꼭 잡아주시며 국수값을 받아야 한다고, 이 다음에 여기 농민들이 잘 살때 우리들이 다시 와서 돈을 내지 않고 먹겠다고, 그러니 오늘은 돈을 꼭 받아야 한다고 말씀하시였다. 그러시고는 다시 오겠다고 약속하시고 차있는 곳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기시였다.

차가 멀리로 사라진 다음에야 일군들로부터 바로 그분이 김일성장군님이시라는 사실을 알게 된 국수집주인은 감격에 목이 메여 빼앗긴 나라를 찾아주시고 농민들의 소원을 헤아려 땅을 주시려고 헌신하시는 장군님께 산해진미는 못해드릴망정 국수값을 받은 자신을 원망하였다.

정녕 국수값과 관련하여 전해지는 가지가지의 일화들은 자신에 대한 그 어떤 특혜와 특전도 허용하지 않으시고 근로하는 인민과 자그마한 간격도 없이 생활하신 위대한 수령님의 숭고한 인민적풍모를 그대로 보여주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