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연구

절세위인의 한없는 도량앞에서

 2019.10.28.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사상과 정견이 다른 사람들도 누구든지 우리 수령님을 한번 만나뵈오면 그 고결한 인품에 매혹되여 수령님을 끝없이 흠모하고 존경하였다.》

한없이 폭넓고 웅심깊은 인정미를 지니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자주성을 지향하는 세계 여러 나라 당, 국가수반들과 정계, 사회계, 학계의 수많은 저명한 인사들과도 두터운 우의를 맺으시였다. 사상과 정견이 다른 사람들도 누구든지 위대한 수령님을 한번 만나뵈오면 그 고결한 인품에 매혹되여 수령님을 끝없이 흠모하고 존경하였다.

지난날 일본제국주의자들이 우리 나라를 강점하고 악독한 식민지통치를 한데로부터 일본사람들속에는 우리 인민에게 죄지은 사람들이 많았다.

그들속에는 우리 인민에 대한 친선의 정을 품고 우리 나라를 방문하는 일본의 정계를 비롯한 각계인사들도 있었다.

1970년대 어느해 일본사회당 위원장 나리다 도모미를 단장으로 하는 일본사회당대표단이 우리 나라를 방문하여 여러곳을 참관하였다.

대표단성원인 일본사회당 서기장이 우리 일군들과 함께 일본사회당대표단의 우리 나라 방문에 관한 공동보도문건초안을 작성할 때였다.

문건초안에는 일본군국주의의 재생이 아시아에 주는 위험성과 일본군국주의의 침략적본성을 폭로규탄하는 문장이 있었다. 이 문장에서 눈길을 떼지 못하던 일본사회당 서기장 세끼는 우리 일군들에게 문장을 좀 두리뭉실하게 하여 론조를 약화시켰으면 좋겠다고 하였다.

우리 일군들이 그의 말에 이 문장의 사상은 아시아에서 일본군국주의를 반대하고 반제, 친선, 평화를 이룩하자는것인데 왜 그러는가고 하였다.

일본사회당 서기장은 우리 일군들의 말을 듣고 심중한 기색으로 자기가 조선에 대한 일본의 식민지통치시기 일본제국주의의 군대인 관동군에 복무하였다고 하면서 지금 그 문장을 그대로 두면 자기도 타도대상으로 되기때문이라고 하는것이였다.

그의 말에 우리 일군들이 그럼 지금 우리가 제국주의군대에 복무한 사람과 제국주의를 타도하자는 문건을 만드는가고 하면서 웃자 서기장은 웃을 일이 아니라고 하였다.

그의 말은 일본사람치고 조선인민앞에 자기처럼 죄를 짓지 않은 사람이 얼마 없다고 하면서 지금처럼 강하게 나가면 일본사회당이 대중을 쟁취하고 조선과의 관계를 강화하기 위한 각계각층 인사들과의 사업에 지장을 줄수 있다는것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일본사회당의 우리 나라 방문에 관한 공동보도문건초안작성에서 제기된 이 의견을 보고받으시고 웃으시며 일본사회당 서기장의 의견대로 문장을 고쳐주라고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일본사회당대표단을 접견하신 석상에서 자기는 일본관동군에 복무하면서 조선인민앞에 죄를 많이 지은 사람이라고 하는 서기장의 말을 들으시고 당신이 그 죄를 씻기 위하여 이렇게 우리와 친선하자고 오지 않았는가고 하시며 잘못은 당신에게 있는것이 아니라 조선과 중국을 침략하라고 당신들을 내몬 일본반동정부에 있다고 말씀하시였다.

머리속에서 늘 떠나지 않던 조선인민에 대한 죄의식을 말끔히 가셔주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너그러우신 말씀에 감동된 일본사회당 서기장은 조일 두 나라 인민사이의 친선과 협조를 위하여 적극 투쟁하겠다고 말씀드리였다.

위대한 수령님을 만나뵈온 자리에서 수령님의 대해같은 도량에 감복하여 자기의 지난날을 말씀드린 일본인사들속에는 《요미우리신붕》론설위원회 고문이였던 다까기 다께오도 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72(1983)년 6월 30일 재일본조선민주녀성동맹 축하단성원들을 만나 담화하시면서 다까기 다께오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그전에 《요미우리신붕》론설위원회 고문이였던 다까기 다께오는 우리 나라에 와서 취재를 끝낸 다음 나에게 자기가 일본군대에 복무할 때 김일성장군님은 백두산의 호랑이라는 말을 들었고 이름만 들어도 벌벌 떨었는데 정작 만나뵙고보니 아주 인자하신분이라고 하였다. 그에게 일본군대에 복무한 일이 있는가고 물어보니 그는 일본군대 소위로 복무하였다고 하면서 홍두산전투때 혼쌀났다고 하였다. 그는 그때 일본군 보병 한개 대대에 포병까지 하여 모두 500여명이 홍두산에 들어갔댔는데 두사람만이 살아남고 다 총에 맞아죽거나 얼어죽었다고 하였다. 그때 다른 사람들은 신발을 벗고 자다 유격대의 습격을 받고 맨발로 달아나다가 눈속에서 얼어죽었지만 자기는 보초근무를 검열하고 천막에 들어서는 순간에 유격대의 습격을 받았기때문에 신발을 신고 뛸수 있었다고 하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너그러우신 인품에 이끌려 오래동안 가슴속에 품었던 우리 인민에 대한 죄의식을 수령님께 말씀드렸던 일본의 각계인사들과 그 후손들은 오늘도 우리 수령님을 만민의 태양으로 우러르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