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인민은 반만년의 오랜 력사를 가진 인민이며 찬란한 문화를 가진 슬기로운 인민입니다.》 (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평양을 중심으로 하는 대동강류역에서 자기의 우수한 문화를 창조하면서 인류문화발전에서 선도자적역할을 한 지혜로운 민족이다.
우리 나라 원시 및 고대문화의 중심지였던 평양을 중심으로 하는 대동강류역에서는 우리 선조들이 창조하고 발전시킨 청동기, 철기를 비롯한 금속유물들이 수많이 발굴되였다.
평양을 중심으로 하는 대동강류역에서는 B. C. 4 000년기 후반기에 로동도구의 획기적인 개선과 발전으로 이루어지는 청동기시대문화가 창조되였고 이곳에서 다른 지역들보다 일찌기 청동기, 철기들이 많이 생산되였다.
아시아대륙의 동쪽에서 일찍부터 다방면적인 생산활동을 통하여 신석기시대문화를 창조해온 우리 선조들은 B. C. 4 000년기 후반기에 평양을 중심으로 하는 대동강류역에서 먼저 새로운 청동기문화를 창조하는 력사적시기에 들어서게 되였다.
청동기시대 초기의 청동유물로는 신흥동유적의 청동단추와 광성동고인돌무덤의 청동장식품과 청동쪼각이 있다. 청동단추는 황해북도 봉산군 신흥동유적의 7호집자리에서 발굴되였다. 이 청동단추는 몹시 산화되였는데 직경은 2.5㎝정도이다. 사리원시 광성동에서 청동기시대에 널리 쓰인 침촌형고인돌무덤이 알려졌는데 이 유적에서도 청동유물이 발굴되였다. 광성동 1지점 4호무덤에서 알려진 청동유물은 장식품과 청동쪼각이다. 청동장식품은 타원형에 가까운 생김새를 가지고있으며 청동쪼각은 용도를 잘 알수 없으며 길이가 2.2㎝, 너비 1.2㎝정도의 쪼각이다. 단군조선초기의 무덤으로 알려진 평안남도 성천군 룡산리 순장무덤에서도 가운데에 있는 큰 무덤칸에서 청동쪼각이 나왔다.
청동기시대 초기의 청동유물들은 우리 선조들이 일찍부터 평양을 중심으로 하는 대동강류역에서 청동기문화를 창조하고 발전시켜왔음을 뚜렷이 실증해주고있다.
청동기시대에 이어 철기시대 초기에도 우리 선조들은 뛰여난 창조적지혜와 재능으로 비파형단검과 비파형창끝, 좁은놋단검과 좁은놋창끝을 비롯한 우수한 청동제품들을 계속 만들어냈을뿐아니라 철로 여러가지 로동도구들과 장식품들을 제작하였다. 황해북도 황주군 고연리에서 알려진 쇠슬라크, 쇠쪼각들은 고조선후기문화 제4기에 해당하는 B.C. 2 000년기말에 벌써 철을 생산하기 시작하였다는것을 보여준다. B.C. 1 000년기 후반기의 고조선유적들에서는 주로 긴칼, 단검, 창과 같은 무기류, 삽, 괭이, 호미, 낫, 반달칼과 같은 농기구류, 도끼, 자귀, 끌, 칼, 송곳과 같은 공구류 등을 철로 만든 금속제품들이 발굴되였다.
평양을 중심으로 하는 대동강류역에서 청동기시대 초기부터 많은 청동유물들이 알려지고 동아시아에서 가장 일찌기 철기가 만들어진것은 이곳에서 살며 발전하던 우리 선조들의 뛰여난 슬기와 창조적재능의 산물이며 동시에 대동강류역에 예로부터 청동기, 철기문화를 발전시키는데 매우 유리한 자연지리적조건들이 충분히 마련되여있었던것과도 중요하게 관련된다.
평양을 중심으로 하는 대동강류역에는 청동기와 철기들을 생산할수 있는 금속생산원료들인 동, 연-아연, 석, 철을 비롯한 유용광물들이 풍부하게 매장되여있었다.
평양을 중심으로 하는 대동강류역에서는 청동생산의 기본원료인 동광석이 만경대, 강남, 강동, 평성, 남포, 송림, 황주, 은천, 연산 등 지역에서 무려 30여개소나 알려졌다.
우리 선조들은 한 금속에 다른 금속을 합금하면 기계적성질이 뚜렷하게 개선된다는것을 인식하고 B.C. 4 000년기 후반기부터 동에 석을 합금한 청동으로 여러가지 로동도구들과 생활용품들을 만들어 리용하기 시작하였다.
당시 청동수공업자들이 청동제품의 질을 높이기 위하여 넣군하던 석은 양덕, 박천, 과일 등 지역에서 채굴되였다. 그리고 합금을 생산할 때 제품의 연신성을 높이는 동시에 주물을 보다 쉽게 하고 제품의 질을 높여주는 원료인 연-아연은 승호, 평성, 은률, 연산, 연탄, 은산, 성천, 강동 등 지역들에서 채굴되였다.
우리 선조들은 청동생산기술에 대한 풍부한 지식에 기초하여 새로운 금속광물인 철광석도 널리 개발리용하였다.
평양을 중심으로 하는 대동강류역에는 형제산, 순안, 상원, 강동, 강남, 재령, 평성, 대동, 은산, 은천, 은률, 남포, 송림, 황주 등 지역에서 철광상이 무려 50여개소나 알려졌다. 그가운데서 일부는 이미 고갈되였고 매장량이 풍부한 철광상들은 지금도 개발리용되고있다.
평양을 중심으로 하는 대동강류역의 유용광물분포에서 류달리 주목되는것은 여러가지 유용광물들이 일정한 지역에 집중되여있을뿐아니라 다른 지역들과도 호상 밀접히 련관되여있는것이다. 강동, 평성, 연산, 황주 등 지역에는 동이 포함되여있는 동광석과 석이 포함되여있는 석광석이 함께 매장되여있었으므로 이런 원료들을 다른 지역에서 실어오지 않고서도 얼마든지 자기 고장의 원료로 청동과 청동제품을 생산할수 있었다. 철광상들도 일정한 지역에 국한되여있는것이 아니라 대동강류역에 골고루 분포되여있었기때문에 철제품을 생산하기에 아주 유리하였다.
다음으로 평양을 중심으로 하는 대동강류역의 유용광물분포에서 주목되는것은 주요광상들이 교통상 유리한 지역들에 분포되여있는것이다.
대동강과 그 지류인 황주천, 남강, 비류강, 보통강을 비롯한 주요 하천류역들에 광상들이 분포되여있어 지역들사이에 수상운수를 비롯한 교통조건이 호상 원료나 제품들을 팔고 사는데 매우 편리하였다. 례컨대 대동강하류의 강남, 송림, 남포, 황주, 재령, 은률, 은천 등 지역에서 생산된 동, 석, 연-아연,철광석들과 제품들을 대동강의 배길을 리용하여 북부와 동부지역에 얼마든지 실어나를수 있었으며 연‐아연광석이 있는 성천, 승호, 삼석, 은산 등 지역에서는 연-아연광석 또는 그 제련물을 가지고 다른 지역의 금속제품과 물물교환할수 있었다. 양덕, 박천 등 대동강의 상류지역에서 생산된 석도 배길을 리용하여 실어다가 금속제품들을 생산하는데 리용할수 있게 수상운수를 비롯한 교통조건이 유리하였다.
이와 같이 평양을 중심으로 하는 대동강류역에는 청동기, 철기문화발전에 필요한 유용광물자원이 풍부하게 매장되여있었을뿐아니라 수상운수를 비롯한 교통조건도 매우 유리하였으므로 바로 이 지역에서 원시시대부터 청동기, 철기문화가 독자적으로 창조되여 높은 수준으로 발전할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