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연구

백두산출신문필가 - 림춘추

 2016.11.28.

림춘추동지(1912. 3. 8-1988. 4. 27)는 항일혁명투사이며 당 및 국가활동가였다.

주체19(1930)년부터 혁명의 길에 나선 그는 조선인민혁명군에 입대하여 군의사업을 맡아보았으며 1930년대후반기에는 조선인민혁명군 독립려단당위원회 비서, 7련대, 8련대 비서, 동만당공작위원회 비서, 《3.1월간》명예기자로 활동하였고 해방후에는 강원도위원회 위원장으로 사업하였다. 주체46(1957)년 4월부터 알바니아, 벌가리아주재 대사로 사업하였으며 그후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서기장사업을 거쳐 공화국 부주석으로까지 활약하였다. 이렇게 그는 생애의 전기간 문필가, 의사, 당정치일군, 대외일군, 국가활동가로 여러 직무와 직종에서 많은 일을 하였다. 그가운데서 그가 세운 가장 큰 공로는 항일전쟁의 권위있는 증견자, 보증자로서 수령의 혁명력사를 정립하고 우리 인민들을 혁명전통으로 교양하는 사업에 크게 기여한것이다. 본인도 생전에 자기의 한생은 펜대와 함께 흘러온 생이였다고 즐겨 말하군 하였다.

림춘추동지는 중국 연길현의 가난한 조선농민의 집에서 태여났다.

어떻게 하나 자식을 공부시키려는 부모의 노력으로 그는 서당과 소학교를 거쳐 중학까지 다니다가 중퇴하였으나 꾸준한 자습으로 의술까지 소유하였다.

그러나 그는 자기의 지식을 밥줄이나 건사하는데 쓰지 않았다.

그는 수령앞에, 혁명앞에 다진 맹세, 혁명가의 의리를 지켰으며 혁명의 요구에 자기의 모든 지식과 열정을 아낌없이 바치였다.

그는 한생 희생된 전우들의 부탁대로 수령의 력사를 심장으로 한자한자 써나갔으며 수령의 후계자에게 생의 마지막순간까지 붓대로 충정다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나는 우리의 간부들과 당원들이 림춘추의 혁명에 대한 충실성과 의리를 본받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림춘추는 당과 수령에 대한 의리를 높은 경지에서 구현한 투사였다.》 (김일성전집》 제100권 272페지)

그러면 과연 무엇이 림춘추동지가 혁명적의리에 충실한 빨찌산문필가로 한생을 살수 있게 하였는가.

주체19(1930)년 연길현 조양천에서 림춘추동지는 어버이수령님을 처음으로 만나뵈웠다. 인민을 믿고 인민에게 의거하며 인민을 위해 투쟁하자는 그이의 인민에 대한 한없는 믿음의 세계, 그 어느 저서에서도 찾아볼수 없었던 숭고한 인민관에 림춘추동지는 완전히 매혹되였다. 그날밤 림춘추동지는 어버이수령님으로부터 지식청년으로서 선봉투사가 되라는 믿음의 말씀을 받아안았으며 이것은 그의 한생의 좌우명으로 되였다.

이날 수첩에 《나의 비망록》이라는 제목으로 위대한 수령님의 담화내용을 적은것이 바로 빨찌산문필전사의 첫 력사기록으로 되였다.

림춘추동지가 진짜배기 유격대문필가로 성장할수 있은것은 어버이수령님의 사랑과 믿음이 있었기때문이였다.

조국광복회기관지인 《3.1월간》명예기자로서 문필활동을 본격적으로 벌릴데 대한 가르치심을 주시고 필기도구까지 안겨주신 어버이수령님의 크나큰 믿음은 그에게 창작적열정을 안겨주었다.

그는 《쇠소리 쟁쟁나는 원고를 더 빨리!》라는 신조를 가슴깊이 새기고 《만신창이 된 일본경제》를 비롯한 무게있는 글들을 척척 써냈으며 어버이수령님의 혁명활동력사기록이라는 시대와 력사의 요구를 스스로 맡아안았다.

어버이수령님의 연설원고, 교시내용, 회의기록을 비롯한 사적자료들이 들어있는 배낭을 항일무장투쟁전기간 림춘추동지는 생명보다 더 귀중히 여기였다.

이 배낭은 그후 어버이수령님의 혁명력사를 종합체계화한 첫 혁명전통도서 《항일무장투쟁시기를 회상하여》의 귀중한 밑천으로 되였다.

림춘추동지는 항일무장투쟁시기뿐만아니라 해방후에도 빨찌산종군기자의 사명을 잊지 않았으며 첫 도당기관지 《선봉》을 어버이수령님의 의도대로 훌륭히 만들어내였다.

림춘추동지는 숭고하고 진실한 항일유격대식의리란 어떤것인가를 수령의 후계자에게 붓대로 무한히 충정다하는것으로 새 세대들에게 보여주었다.

림춘추동지는 종파의 해독성을 혁명투쟁초시기부터 누구보다 뼈저리게 체험하였다.

하기에 그는 1970년대 초엽 위대한 장군님의 위대성에 대한 선전을 그 누가 시키지 않았지만 스스로 맡아나섰다.

그는 사업상 용무로 도, 시, 군에 출장을 내려갈 때마다 《영명한 지도자 김정일동지는 어떤분이신가》 등의 강연원고를 자체로 써가지고 위대한 장군님의 위대성을 해설선전하였다.

또한 항일투사들과 함께 위대한 장군님의 위대성을 처음으로 장문으로 해설선전한 도서 《주체위업의 위대한 계승자 영명한 김정일동지》를 1년동안에 집필하여 세상에 내놓았다.

림춘추동지는 위대한 장군님의 각별한 관심과 지도속에서 저술활동을 하면서 그이의 인간적풍모에 매혹되였고 그이를 령도자로, 스승으로 따르고 모시였다.

림춘추동지는 주체47(1958)년 봄 위대한 장군님으로부터 혁명전통도서집필의 종자, 핵에 관한 가르치심을 받아안은것을 비롯하여 그이의 세심한 지도와 보살피심속에서 《불굴의 혁명투사 김정숙동지를 회상하여》(1, 2), 《붉은 해발아래 창조와 건설의 40년》(1~7), 《주체위업의 위대한 계승자 김정일동지께 충성다하자》, 장편소설《청년전위》와 같은 수많은 혁명전통교양도서들을 집필하였다.

림춘추동지가 공화국창건 30돐을 맞으며 올린 종합회상실기 《붉은 해발아래 항일혁명 20년》(1~5)을 보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림춘추동무가 빨찌산시절부터 자료배낭을 메고다니더니 끝내 빛을 보았다고 가슴뜨거운 교시를 하시였다.

림춘추동지는 그날 책을 쓰다듬으며 흐느끼였다. 무한한 행복감에 눈물을 흘렸고 걸음걸음 손잡아 이끌어주신 위대한 장군님에 대한 고마움으로 눈굽을 적셨다.

자신을 림춘추동지의 젊은 동지라고 하시며 믿음과 정을 다해주시는 위대한 장군님의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 림춘추동지는 생의 마지막순간까지 혁명도서 《소년혁명가 김기송동지》의 집필에 피타는 노력을 바치였다.

생을 마감지으면서 림춘추동지는 수령에게 충실한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라는 뜻깊은 유언을 남기였다.

의리는 은혜와 사랑을 준데 대하여 잊지 않고 그에 보답하는 인간의 미덕이다.

진실한 사랑과 믿음이 변함없는 의리를 낳는 법이다.

림춘추동지가 저절로 그런 진실한 의리의 인간, 펜과 혁명을 하나로 이어놓는 진짜혁명가가 된것이 아니라 평범하던 청년도 의리의 인간, 충정의 인간으로 키워주는 은혜로운 품이 있었기때문이였다.

림춘추동지는 한생 백두산절세위인들의 위대한 사랑과 믿음, 의리의 세계속에서 살면서 참다운 혁명적의리를 배웠고 그 품에서 충정과 의리의 한생을 보냈다.

백두산출신문필가 림춘추동지의 붓대한생은 이렇게 말해준다.

언제나 의리에 살라고, 붓대로 수령께 충실하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