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에서 사람의 기원문제는 철저히 우리 나라에서 발굴한 고고학적자료에 기초하여 과학적으로 해명되여야 합니다.》 (
조선사람은 인류력사의 려명기부터 이 땅에서 하나의 피줄을 이어받으며 유구한 력사와 찬란한 문화를 창조하여왔다.
우리 나라의 유구한 력사와 찬란한 문화전통을 전하여주는 력사유적과 유물들은 우리 선조들이 어떤 문화를 창조하고 어떻게 살며 발전하여왔는가 하는것을 보여주는 귀중한 실물자료들이다.
우리 나라에서 발굴된 가치있는 인류화석들은 우리 민족의 유구한 력사와 발전된 문화를 길이 전해주는 귀중한 유산으로서 매우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
황해북도 황주군 읍 청파대마을에서는 조선사람의 기원의 유구성과 혈연적공통성을 확증하는데서 중요한 의의를 가지는 원시유적이 발굴되였다.
이 유적은 대동강류역에서 알려진 또 하나의 대표적인 원시유적으로서 우리 나라 구석기시대문화를 풍부하고 심도있게 연구하는데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이 유적은 평양으로부터 남쪽으로 약 40km 떨어진 황해북도 황주군 읍 청파대마을 뒤산(북위 38°40′54″, 동경 125° 47′30″)에 위치하고있다.
이 유적에 대한 발굴은 주체88(1999)년 5월부터 주체93(2004)년 10월까지 진행되였다.
유적에서는 신인화석과 구석기시대 중기와 후기의 석기, 짐승뼈화석, 포분화석이 나왔다.
동굴은 입구의 너비가 6m정도, 입구로부터 안쪽끝까지의 길이가 32m, 입구에서 천정높이가 대략 13.7m정도이다.(그림-1.)
또한 입구로부터 약 12m들어간 위치에서 동굴의 너비는 16~18m이며 여기서부터 안쪽으로 들어가면서 좁아지는데 제일 좁은 곳이 4~5m이다.
발굴전 동굴퇴적의 웃면은 입구로부터 안쪽으로 들어가면서 점차 높아지는데 입구와 안의 높이차이는 약 12m이다.
동굴퇴적층은 15개의 층으로 되여있으며 문화층은 2개로 되여있다.
유적의 2문화층에서는 5개체의 인류화석이 발견되였으며 8층에서 나온 왼쪽 웃턱뼈를 황주사람 1호라고 하였다.
황주사람 1호의 웃이발잰값은 다음과 같다.
웃첫째큰어금이의 이머리지수는 108.0으로서 이머리씹는 면의 형태가 방형에 가깝다. 황주사람 1호는 웃턱뼈의 크기와 주름발달상태, 이머리씹는면의 마모정도를 관찰하여 보면 35~40살정도되는 남자의것으로 인정된다.
황주사람 1호의 첫째작은어금이를 보면 이머리의 길이와 너비가 각각 8.4mm, 10.5mm로서 룡곡사람 7호(이머리길이 6.4mm, 이머리너비 9.4mm)는 물론 룡곡사람 3호(이머리길이 6.2mm, 이머리너비 9.2mm)에 비해 크며 황주사람 1호의 첫째큰어금이는 이머리의 길이와 너비가 각각 12.4mm, 13.4mm로서 룡곡사람 7호의 경우(이머리길이 10.5mm, 이머리너비 12.0mm)는 물론 룡곡사람 3호(이머리길이 10.4mm, 이머리너비 12.1mm)에 비해 크다.
또한 황주사람 1호는 첫째작은어금이와 첫째큰어금이의 이머리크기곁수가 각각 9.5, 12.9로서 룡곡사람 7호, 룡곡사람 3호를 포함하여 우리 나라에서 알려진 신인단계 인류화석들가운데서 가장 크며 이머리면적도 첫째작은어금이와 첫째큰어금이에서 각각 88.2mm2, 166.1mm2로서 가장 넓다.
첫째 큰어금이의 이머리지수는 108.0으로서 이머리씹는면의 형태가 방형에 가까운데 이러한 특징은 신인단계의 인류화석뿐아니라 현대사람에게서도 나타났다.
이것은 황주사람 1호가 룡곡사람 7호와 마찬가지로 이른 시기의 신인으로서 룡곡사람 7호와 같거나 좀 더 이른 시기에 해당된다는것을 말하여준다.
유적의 제8층 열형광년대는 69,000±11,000년, 핵분렬흔적년대는 74,200±10,800년, 우라니움계렬년대는 61,500±9,800년이다.
결과적으로 황주사람 1호는 인류학적으로 이른 신인단계에 속하며 시기를 보면 구석기시대 후기에 해당된다고 말할수 있다.
황주사람 1호가 발견된것은 조선사람기원의 유구성과 구석기시대 후기문화연구에서 매우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며 우리 나라에서 이루어진 인류진화발전과정의 일단을 보여주는 귀중한 실물자료로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