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연구

《반동작품》이 명작으로

 2022.6.10.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가 미제침략자들과 직접 맞서있는것만큼 문학예술부문에서는 미제가 끊임없이 감행하는 침략책동과 그 략탈적인 본성을 폭로단죄하는 혁명적문학예술작품을 더 많이 창작하여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문학예술이 사람들속에서 숭미사대주의사상을 뿌리빼고 그들을 민족자주의식과 반제반미투쟁정신으로 무장시키는데 이바지할수 있습니다.》 (김정일전집》 제9권 190페지)

반동작품으로 락인되였던 조선예술영화 《최학신의 일가》는 문학예술의 천재이신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의 현명한 손길아래 우리 인민들을 혁명적으로 교양하는데 이바지하는 훌륭한 명작으로 완성된 작품이다.

이 작품은 원래 제국주의침략자들과의 치렬한 판가리싸움이 한창이던 준엄한 조국해방전쟁시기에 연극으로 처음 창작되였다.

전쟁의 중하를 한몸에 지니신 그처럼 분망하신 가운데서도 작가들의 사업과 생활에 깊은 관심을 돌리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작가동맹의 한 책임일군에게 우리 작가들앞에 나서고있는 임무에 대하여 가르쳐주시고나서 평안남도 대동군의 한 목사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시였다. 그러시면서 우리 작가들은 왜 이런 사실을 가지고 세계에 소리높이 침략자들을 폭로하는 작품을 써내지 못하는가고 교시하시였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작가 백인준은 인차 위대한 수령님의 교시를 그대로 종자로, 소재로 하여 희곡을 완성하였다. 그러나 전시하에서 장막희곡을 공연할 조건이 되지 못하여 주체44(1955)년에 와서야 국립연극극장에서 첫 공연의 막을 올리게 되였다.

연극 《최학신의 일가》가 공연되자 관객들과 작가, 예술인들속에서는 반영이 좋았고 당보에도 창작성과에 대한 관평이 실리였다.

하지만 작가동맹의 일부 불순한 사람들은 침략자에게 아부굴종하는 최학신목사의 행동이 조선민족의 수치로 되며 주인공을 적들자체의 내부모순에 의해 멸망하는것으로 형상하였으니 연극이 《자본주의자멸설》을 설교한것으로 된다고 비난하였다. 이러한 비난때문에 연극 《최학신의 일가》는 공연이 중지되고 결국 조선연극사강의에서도 《반동작품》으로 취급되게 되였다.

그러던 주체53(1964)년 12월 8일 조선예술영화촬영소현지에서 열린 당중앙위원회 정치위원회 확대회의를 지도하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혁명교양, 계급교양에 이바지할 혁명적영화를 더 많이 창작할데 대한 강령적교시를 주시면서 또다시 대동군의 목사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시였다.

그러나 당시는 문학예술분야의 웃자리를 차지하고있던 부르죠아, 반당수정주의분자들의 해독적책동이 극심하여 그 누구도 이 작품을 다시 살릴 용단을 내리지 못하고있었다.

바로 이러한 때 문학예술부문을 맡아 지도하고계시던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연극 《최학신의 일가》를 잘 살려서 영화로 만들데 대한 과업을 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몸소 종자와 소재까지 가르쳐주시였던 뜻깊은 작품, 10여년세월 속절없이 파묻혀있던 작품에 재생의 서광을 안겨주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연극 《최학신의 일가》를 영화로 잘 만들기 위한 방도도 구체적으로 가르쳐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연극 《최학신의 일가》를 영화로 만드는데서 중요한것은 제국주의자들이 우리 나라 종교인들을 《교양》하는 《선생》노릇을 한셈이라고 하신 위대한 수령님의 교시를 지침으로 하여 주인공의 운명처리를 잘하여야 한다고 하시면서 영화문학은 최학신목사가 제국주의자들을 《하느님》으로 믿고 섬기다가 망하는것으로 끝나는 연극과는 달리 그가 심각한 비극적체험을 통하여 어떻게 침략자들의 침략적본성을 깨닫고 숭미사대주의사상에서 해방되며 각성되여 새 인간으로 갱생되는가 하는것을 잘 보여주는것으로 되여야 한다고, 그래야 영화가 제국주의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그들을 믿다가는 자신과 온 가족은 물론 나라와 민족을 망친다는 심각한 교훈과 함께 오직 침략자들을 반대하여 견결히 싸워야만 민족의 존엄과 나라의 독립을 지키고 참되게 살아갈수 있다는 생활의 진리를 밝혀낼수 있다고 일깨워주시였다. 이어 최학신목사를 비극의 체험자, 수난자로, 멸망하는 인간으로서가 아니라 새롭게 개조되고 갱생하는 인간으로 형상하면 작품이 《자본주의자멸설》을 설교한다고 비난받을 아무런 근거도 없게 될것이라고 가르쳐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계속하시여 최학신목사를 비극의 체험자로, 갱생하는 인간으로 그리자면 그를 이중적인 성격의 소유자로 옳게 형상하여야 한다고 하시면서 최학신목사를 한편으로는 제국주의에 대한 환상을 가진 숭미사대주의자로, 다른편으로는 《민족의 장래》를 생각하는 제나름의 《신념》을 가진 《우국지사》로 형상하여야 그가 겪는 비극이 제국주의자들을 믿는자에게 차례지는 필연적인 파멸로 되게 할수 있으며 숭미로부터 반미로 전환되는 그의 사상적개변이 타당한 성격적바탕을 전제로 하여 진실하게 그려질수 있다고, 이렇게 주인공 최학신목사의 이중적성격을 깊이 파고들어 그를 숭미사대주의자로부터 반미애국자로 갱생하는 인간으로 잘 형상하면 《조선민족의 수치》라는 비난은 받지 않을것이라고 그 해결방도까지도 하나하나 일깨워주시였다.

재생의 빛을 받아안은 이 작품은 그후 위대한 장군님의 여러 차례의 가르치심을 받으면서 예술영화로 훌륭히 완성되여 위대한 수령님께 커다란 기쁨을 드리게 되였다.

이처럼 위대한 수령님의 교시를 신념의 기둥으로 삼으시고 철저히 관철해나가시는 충신의 귀감이시며 문학예술의 영재이신 위대한 장군님에 의하여 《반동작품》으로 규정되였던 《최학신의 일가》가 명작으로 세상에 다시 태여날수 있게 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