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임진조국전쟁시기의 한산도, 부산, 명량, 로량해전 같은것은 중세해전사를 빛나게 장식한 이름난 해전들이였습니다. 임진조국전쟁시기에 리순신장군이 지휘한 우리 나라 수군은 바다싸움에서 련속 큰 승리를 이룩하였습니다.》(
임진조국전쟁시기 우리 인민들은 7년간에 걸치는 일본놈들의 침략을 물리치고 큰 승리를 이룩하여 민족의 자주권을 수호하였다. 이 전쟁승리에 우리 나라 수군도 크게 기여하였다.
임진조국전쟁시기 우리 나라 수군이 이룩한 전투승리가운데서 대표적인것은 한산대첩, 명량대첩, 로량대첩 등이였다.
한산대첩은 1592년 7월 8일에 리순신의 지휘밑에 진행되였다. 한산도해전은 유인, 포위, 총공격전술이 가장 빛나게 실현된 전투였다.
당시 적들은 전쟁초기부터 리순신이 지휘하는 조선수군에 의해 련속 패전하자 수군을 증강하여 강력한 함대를 편성해가지고 기어이 《수륙병진》작전을 실현해보려고 하였다.
우리 수군은 적들의 기도를 미리 포착하고 적함선을 격파하기 위하여 경상도방면으로 진출하다가 견내량에서 맞다들게 되였다.
견내량에는 이때 적의 제1함대인 와끼사까가 이끄는 70여척의 함대가 진을 치고있었다.그런데 견내량은 해협의 너비가 500m밖에 안되였고 암초가 많으므로 거북선과 판옥선 같은 큰 배들이 마음대로 움직일수 없었으며 또 정황이 불리해지면 적들이 륙지로 도망칠수 있었다.
리순신장군은 이 모든것을 타산하여 적들을 한산도앞바다로 끌어내여 족칠 작전계획을 세웠다.
적을 유인할 임무를 받은 우리의 함선 5~6척으로 적을 공격할 기세를 보이다가 뒤로 물러나자 적들은 조선함대가 퇴각하는줄 알고 쫓아오기 시작하였다.
적들이 우리의 유인전술에 걸려 견내량을 벗어나 넓은 바다에 나왔을 때 만단의 전투준비를 갖추고 한산도 북쪽기슭에 은페해있던 조선함대의 주력이 학익진(鶴翼陣)을 치면서 일시에 공격으로 넘어갔다.
조선함대는 거북선을 선두로 적선을 향해 돌진해들어갔다. 우리 함대의 포화력에 얻어맞아 한산도해전에서 적선 73척가운데서 59척을 완전히 격침시키고 수천명의 적들을 살상하였다.살아남은 14척의 배는 싸움에 참가하지 않고 먼데서 형편을 보다가 도망친 배들이였다.
우리 인민은 한산도바다싸움에서 거둔 승리를 한산대승리(한산대첩)(閑山大捷)라고 하였다.
한산대첩과 함께 임진조국전쟁시기 수군의 력사에는 명량대첩도 있었다. 명량대첩은 세계해전사에서 특기할 싸움이였다.
1597년 9월 16일 아침 구로시마 등이 지휘하는 330여척의 함선이 최대만조기의 순류를 따라 우수영앞바다로 침입해왔다.
리순신장군은 밀물과 썰물을 리용하여 적의 주력함대를 쳐부시려고 하였다.
적들은 우리 수군이 적은것을 보고 곧 함대를 포위한 다음 맹렬한 공격을 시작하였다.
그때 우리 함선은 12척밖에 안되였지만 리순신의 지휘밑에 수군병사들은 결사전을 각오하고 싸움에 떨쳐나섰다.
싸움을 시작할 때는 밀물때가 되여 바다물이 잔잔하였으므로 적함대에는 유리하였다. 그러나 오후에 들어서면서 썰물이 시작되자 바다물은 서쪽으로부터 동쪽으로 밀리면서 급류를 이루었으므로 적들에게 매우 불리하였다.
수백척의 적선들은 불과 수백m밖에 안되는 좁은 해협에서 세찬 썰물에 밀리여 균형을 잃고 서로 부딪치면서 혼란에 빠지게 되였다.이때 해류에 익숙한 우리 수군은 기민하게 적함들에 바싹 다가가서 포탄, 총탄, 화살로 불벼락을 들씌우고 적의 선체들을 들이받아 물속에 처박았다.
이날 싸움에서 우리 수군은 12척의 함선을 가지고 적함선 330여척과 싸워 적선 30여척을 격파하고 4 000여명의 적병들을 살상하였다.
이 전투의 승리를 명량대승리(명량대첩)라고 한다.
명량전투에 이어 진행된 로량해전은 임진조국전쟁을 승리적으로 결속한 전투승리였다.
1598년 가을에 들어서면서 적들은 저들의 소굴로 도망치기 시작하였다.11월 19일 경상도 사천과 고성앞바다에 머물러있던 500여척의 적함선이 전라도 순천의 고니시부대를 구출하기 위하여 로량으로 공격해왔다.
리순신의 지휘밑에 우리 수군은 적들의 침공을 앞질러 분쇄하기 위하여 로량앞바다로 진격하였다.
우리 수군은 좌우군으로 편성되여 적선들을 량쪽에서 공격하였다.
적들은 여기에서도 우리 수군의 포위작전에 의하여 퇴로가 끊기였다.우리 수군의 포위진을 뚫어보려고 발악하는 적함대에 불벼락을 안기면서 패주하는 적선들을 추격하여 격파하였다.온종일 계속된 격렬한 싸움에서 조선함대는 적선 200척을 격침, 격파하고 근 2만명의 적병을 소멸하였다.이것이 임진조국전쟁의 마감을 장식한 로량대승리(로량대첩)였다.
임진조국전쟁시기 수군이 거둔 승리는 우리 인민의 반침략투쟁사의 한페지를 장식하고있는 의의있는 승리였다.
의의는 우선 일본침략자들의 《수륙병진》계획을 파탄시키는데 이바지하였다는것이다.
일본놈들은 전쟁초기부터 우리 나라 전 령토를 점령하려고 《수륙병진》계획을 기도하였다.
전쟁 첫 시기 나라의 형편은 매우 위태로웠다. 전쟁을 지휘해야 할 봉건정부는 북으로 피난갔고 관군은 지휘관들의 무능성으로 하여 무너졌으며 이로 하여 부산에 상륙한 놈들은 전쟁개시 불과 20일만에 수도 한성까지 강점하였다.
불리해진 전쟁정세를 전환시킨것이 리순신이 지휘한 우리 수군이였다.
우리 수군은 리순신의 지휘밑에 한산대첩을 비롯하여 련속 승리를 거두어 제해권을 완전히 장악하고 일본수군으로 하여금 부산일대의 수역을 벗어나지 못하게 하였다.
1597년에 거둔 명량대첩 역시 적수군의 침공을 좌절시키고 제해권을 장악하였을뿐아니라 놈들의 《수륙병진》계획을 종국적으로 파탄시킨 승리였다.
이처럼 놈들의 《수륙병전》계획은 우리 수군에 의하여 파탄되였다.
의의는 또한 나라의 자주권과 민족의 존엄을 영예롭게 지켜내는데 이바지하였다는것이다.
우리 수군이 거둔 승리는 임진전쟁시기 거둔 첫 승리로서 그것은 전국의 인민들을 크게 고무하였으며 그들이 왜적격멸에 떨쳐나서도록 하였다.
그리하여 전국적으로 의병부대가 조직되였으며 여기에는 봉건유생들, 중들까지도 참가하였다. 심지어 녀성들과 아이들, 로인들, 노비들도 조국방위에 떨쳐나섰다.
그리고 전쟁의 마지막시기에 우리 수군이 이룩한 로량대첩은 우리 조국강토에서 일본침략자들을 완전히 몰아내고 임진조국전쟁을 빛나게 장식한 승리였다.
이처럼 임진전쟁시기 우리 수군은 놈들의 《수륙병진》계획을 파탄시키고 민족의 자주권을 굳건히 고수하는데 큰 기여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