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종합대학 력사학부 박사 부교수 박금순
2019.11.25.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동지께서는 해방후 여러 계기를 통하여 위대한 수령님의 위대성과 업적, 새 조국건설로선을 적극 선전하시였다.
그 가운데서 함경북도에서 새길신문사(당시) 기자들과의 회견은 광범한 인민들속에 위대한 수령님의 위대성과 업적, 새 조국건설로선을 출판물을 통하여 해설선전하는데서 중요한 계기로 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김정숙동무는 조국의 광복과 우리 혁명의 승리를 위하여 자기의 모든것을 다 바쳐 싸운 열렬한 혁명가였습니다.》 (《김일성전집》 제10권 199페지)
인민대중속에 어버이수령님의 위대성과 혁명업적, 건국로선을 인식시키는것은 새 조국건설에 대한 위대한 수령님의 령도를 확고히 보장하기 위한 중요한 요구로 나섰다.
인민대중속에 조국해방의 력사적위업을 이룩하신 어버이수령님의 위대성과 혁명업적을 똑똑히 인식시켜야 그들이 수령님을 끝없이 흠모하고 따르며 수령님의 건국로선을 적극 지지하게 할수 있었다.
해방후 나라의 복잡한 정치정세는 이 사업을 한시도 미룰수 없는 절박한 문제로 제기하고있었다.
해방후 종파분자들과 지방할거주의자들은 저마다 자기들의 《투쟁경력》을 자랑하면서 대중을 자기 주위에 끌어당기려 하고있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인민들에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 민족의 구원자이시며 진정한 령도자이시라는것을 똑똑히 알려주어야 한다고 하시면서 기자회견과 환영모임, 담화들에서 수령님의 위대성과 업적, 새조국건설로선을 적극 선전하시였다.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동지께서 청진에 오셨다는 소식을 듣고 선참으로 찾아온것은 기자들이였다.
주체34(1945)년 11월 28일 아침 쏟아져내리는 눈을 맞으며 새길신문사 기자들이 김정숙동지께서 계시던 숙소를 찾아왔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찾아온 그들에게 편히 앉으라고 자리를 권하시며 기자생활을 한지는 얼마나 되며 가정생활형편은 어떤가에 대하여 상냥하게 물으시였다.
그러시고는 해방된 조국에서 처음으로 신문기자동무들을 만나고보니 정말 기쁘다고 하시면서 힘을 합쳐 일을 잘해보자고 말씀하시였다.
기자들은 김정숙동지의 소탈한 풍모앞에 어려움도 잊고 찾아온 취지와 평소에 자기들이 알고싶던 문제들을 두서없이 제기하였다.
먼저 한 기자가 김정숙동지께서 함경북도를 선참 찾아주신것은 이 지방인민들의 기쁨이고 경사라고 말하면서 자기들은 위대한 장군님을 모시고 싸우신 김정숙동지의 위훈담을 인민들에게 알려주고싶어 찾아왔다고 말씀드리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밝은 미소를 지으시고 그들을 정겹게 바라보시며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여러분들이 저에게 지난날의 투쟁경력을 들려달라고 하는데 저자신에 대하여서는 별로 할 말이 없습니다. 다만 장군님께서 강도일제를 때려부시던 이야기는 얼마든지 말씀드릴수 있습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기자들의 무랍없는 제기를 너그럽게 대해주시며 그들에게 위대한 수령님께서 승리에로 이끌어주신 항일무장투쟁에 대하여 구체적인 실례를 들어가며 감명깊게 이야기해주시였다.
기자들은 김정숙동지의 이야기를 통하여 준엄하고도 영광에 찬 항일혁명투쟁에 대하여 명확한 인식을 가지게 되였으며 특히 전설적영웅이신 김일성장군님이시야말로 진정한 민족의 구원자이시며 항일혁명투쟁을 승리에로 이끄신 위대한 수령이시라는것을 더욱 깊이 알게 되였다.
그이의 이야기에 심취되여 시간가는줄 모르고있던 기자들이 김정숙녀사의 투쟁내용을 듣고싶다고 다시 말씀드리였다.
그러자 김정숙동지께서는 가볍게 웃으시며 위대한 수령님께서 강도 일제를 때려부시던 이야기는 얼마든지 해줄수 있다고 하시며 이렇게 말씀을 이으시였다.
《신문에는 마땅히 위대한 장군님에 대하여 써야 합니다.
김일성장군님은 대대로 가난하게 살아온 애국적이며 혁명적인 가정에서 탄생하시여 어린시절부터 일가분들의 극진한 사랑과 애국적인 교양을 받으며 성장하시였습니다.
장군님께서는 조국인민들과 혁명일가의 파란많은 생활을 체험하시면서 조국의 광복을 이룩할 큰뜻을 품으시고 일찍부터 혁명의 길에 나서시였습니다. 장군님께서는 벌써 20대의 젊으신 나이에 2천만겨레의 소원을 풀어주시기 위하여 반일인민유격대를 창건하시고 조국을 광복할 성스러운 항일대전의 총포성을 높이 울리시였습니다.》라고 말씀하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전사들의 이야기는 수령의 력사속에 있다고 하시면서 자신에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사양하시였다.
기자들은 하는수없이 김정숙동지께 몇살때 혁명의 길에 나서시였는가, 조선인민혁명군에는 언제 입대하셨는가, 어떤 전투에 참가하셨는가 하는것을 연방 질문하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기자들의 질문에 짤막한 대답을 주실뿐 자신의 공적에 대해서는 조금도 이야기하지 않으시고 산에서 싸울 때와 마찬가지로 위대한 수령님을 높이 받들어 새 조국건설에 힘쓸 결심에 대하여 말씀하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기자들의 손을 잡아주시며 앞으로 신문에 장군님의 로선과 방침을 잘 해설하여 대중을 새 조국건설에 적극 떨쳐나서게 하여달라고 말씀하시였다.
기자회견후 《새길신문》은 1면에 《열혈 14세 소녀의 몸으로 혁명운동에 투신》이라는 제목밑에 《김녀사의 반생》이라는 부제목을 달고 다음과 같은 글을 실었다.
《조선의 혁명가 김일성장군 부인 김정숙녀사는 … 간도 연길현 부암에서 14세 소녀의 몸으로 불붙는 혁명열을 못이겨 원대한 포부를 품고 가정을 뛰여나와 만주에서 일본군벌의 맹렬한 백색테로밑에서 독립을 위하야 혈투하는 김일성유격부대에 감연 참가하였다 한다.
직접 무기를 들고 선두에서 유격전에 출동하여 싸워 생명의 위험이 한두번이 아니였다고 한다. … 김녀사의 말을 들은즉 놀라지 말라. 김일성장군은 30세의 혈기왕성한 청년장군이라 한다. 조선해방의 대지를 품고 만주광야를 활무대로 맹호같이 활약하여 일본군벌의 가슴을 서늘하게 하였으며 세계적으로 그 용맹을 떨친 김일성장군은 과연 조선이 낳은 혁명가이다.
…조선의 혁명동지는 물론 우방 중국의 혁명운동자까지 이끌고 오직 조선해방을 위하야 일본군벌과 맹렬한 혈투를 하여온것은 우리가 자랑할수 있는 위대한 존재이다.
김일성장군은 현재 평양에 건재하여 활약하고있다.》
또한 신문은 《독립과 해방을 위해 녀성의 몸으로 반생을 투쟁, 따르자! 이 희생정신을》이라는 기사도 실었으며 김정숙동지께서 기자회견때 하신 말씀도 실었다.
《려로의 피로에도 불구하고 왕성한 의기로 왕방한 기자에게 김정숙녀사는 여러 동무를 대표하야 손을 잡으며 〈자매동포들은 얼마나 고생하였습니까.〉하면서… 아래와 같이 말하였다.
〈여러분도 아다싶이 조선해방이 아직 완전해결이 되지 않았으니 조선인민대중은 더욱 희생적노력이 절대로 필요합니다.
우선 전민족적대중단결을 하여야 하며 동시에 건설사업을 적극적으로 전개하여야 하겠습니다.
우리 조선녀성은 각성하여 조선의 현실을 정당히 리해하고 위대한 국가건설사업에 똑같이 힘써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주권이 하루바삐 확립되여 조선완전독립이 실현되여 우리 녀성이 리상하는 녀성해방문제를 해결하여야 하겠습니다.
앞으로 조선사정을 연구하고 알아서 힘있는데까지 조선건설사업에 적극적으로 노력하겠습니다.〉 …》
기자회견내용이 실린 신문은 함경북도만이 아니라 평양과 전국각지에 배포되여 인민들속에서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
며칠후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기자회견내용이 실린 새길신문의 기사를 읽으시고 못내 만족해하시면서 정숙동무가 말을 잘하였다고, 산에서 단련되고 군중정치사업을 많이 한 동무가 다르다고, 내가 생각하고 내가 하고싶던 말을 그대로 하였다고, 요즘 보고올라오는것을 들어봐도 인민들속에 들어가 내가 풀자고 생각하는 문제를 풀기 위해 무척 애쓰고있다고 높이 평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교시는 해방된 조국에서 함경북도인민들속에서 벌리신 김정숙동지의 눈부신 활동에 대한 높은 평가였다.
참으로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동지께서 해방된 조국땅 곳곳에서 벌리신 정력적이고 헌신적인 활동은 위대한 수령님의 사상과 뜻으로 인민들을 무장시키고 새 조국건설에로 힘있게 불러일으키는 투쟁로정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