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조선인민은
기적소리를 높이 울리며 사회주의강국건설을 향하여 내달리는 우리의 전기기관차에는
《우리는 다른 나라 사람들이 조선사람은 절대로 만들수 없다던 전기기관차도 우리자체의 힘으로 만들었습니다.》 (
그런데 급속히 증대되는 물동량을 제때에 실어나르는 일을 그전과 같은 철도의 상태를 가지고서는 도저히 감당해낼수 없었다.
우리 나라와 같이 철길의 구배가 심한 형편에서 렬차의 견인력과 통과능력을 결정적으로 높이자면 철도의 전기화를 실현하는것이 절박한 문제로 나서게 되였다.
그리하여 우리 나라에 와있는 어느 한 나라 대사에게 전기기관차를 만들려고 하는데 설계도면을 좀 사자고 하자 조선에서는 기계공업토대가 약하기때문에 전기기관차를 생산할수 없다고 하면서 자기 나라에서 사다쓰라고 하였다. 우리가 자체로 만들어쓰겠다고 하자 그는 조선에서 전기기관차를 만들면 자기 손바닥에 장을 지지겠다고 하였다. 이러한 보고를 받으신
현대기계공업과 전기공업발전의 정수라고 할수 있는 전기기관차에는 고도의 정밀성과 견고성을 요하는 1만 4천여종의 부속품이 무려 18만개나 들어가야만 하였다.
그러나 공장에는 그 복잡한 기계의 설계도면은 물론 전기기관차생산에 필요한 공구, 지구들도 변변히 없었다.
당시 조건에서 조선의 힘으로 전기기관차를 만든다는것은 사실 아무것도 없는데서 새로운것을 만들어내는것과 같은 어려운 일이였다.
일부 사람들은 다른것은 다 만들어도 고속도차단기와 견인전동기만은 외국에서 수입해야지 자체로 만들지 못한다고 하였다. 고속도차단기는 전기기관차에 대한 전력공급과 중단을 보장하는 설비로서 운전의 믿음성과 사고방지를 위하여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것이였다.
고도의 정밀도와 정결도를 요하는 부속품이 3천여개가 들어가는 고속도차단기는 전기기관차의 심장이라고 할수 있다.
세계에는 수많은 나라가 있지만 실지 전기기관차를 자기손으로 완전히 만드는 나라는 당시 불과 열손가락을 꼽을수 있는 정도밖에 안되였는데 그중에서도 고속도차단기를 자체로 만들어쓰는 나라는 극히 적다는 사실만 놓고보아도 그것이 얼마나 정밀하고 복잡한것이라는것을 잘 알수 있었다.
그러나 우리 로동계급은 작은 부속품부터 하나하나씩 만들기 시작하였다. 정밀도와 정결도를 요하는 부분품, 부속품들은 연마반, 광마반이 없어 로동자들은 새끼오리와 스프링을 찢어 쓸고 닦고 하면서 하나하나 완성하여나갔으며 드디여 조립단계에 들어섰다.
우리 로동계급은
처음 시운전할 때 3천여개의 부속품이 들어있는 고속도차단기가 첫 시험에서 그만 불타버리고말았다.
수십차례의 실패끝에도 성공을 보지 못하게 되였을 때 보수주의, 기술신비주의자들은 기다리고있었다는듯이 머리를 쳐들고 날치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콩을 먹자면 이발이 있어야 한다.》고까지 하면서 고속도차단기만은 수입해야 한다고 제기해나섰다.
그러나 전기기관차의 뇌수라고 말할수 있는 고속도차단기를 수입하고서는 우리 로동계급이 자기 손으로 전기기관차를 만들었다고 말할수 없었다. 실패에 실패를 거듭하고 35번이나 실패하였을 때에도 우리 로동계급은 주저하지 않고 자력갱생, 간고분투의 혁명정신으로 36번째의 제작에 들어갔으며 끝끝내 36번째만에 성공의 결말을 보게 되였다. 전기기관차의 심장인 고속도차단기는 바로 우리 로동계급의 이러한 충성과 자력갱생, 간고분투의 산물이였다.
그후 김종태전기기관차련합기업소에서는 그 경험과 기술에 기초하여 전기기관차가 련이어 생산되여 나오게 되였으며 《쌍둥이전기기관차》와 디젤기관차도 만들어냈다.
우리 나라에서 철도가 전기화됨으로써 철도수송능력은 거의 2배로 높아졌고 연료소비는 5분의 1로 줄어들었으며 많은 로력을 절약하게 되였고 철도의 문화성이 현저히 높아졌다.
이처럼 조선의 로동계급은 설계도면은 물론 부속품생산에 필요한 공구, 지구도 변변히 없는 조건에서 자력갱생, 간고분투의 혁명정신으로 우리 힘, 우리 기술, 우리의 설계로 끝끝내 1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조선에서는 만들수 없다던 전기기관차를 만들어냈던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