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연구

조선에서 자력갱생의 산물-전기기관차

 2021.2.18.

오늘 조선인민은 경애하는 김정은동지의 현명한 령도밑에 사회주의강국건설을 향하여 힘차게 나아가고있다.

기적소리를 높이 울리며 사회주의강국건설을 향하여 내달리는 우리의 전기기관차에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세심한 지도밑에 기계공업토대가 미약했던 우리 나라에서 오직 자력갱생만이 살길이라는 혁명적신념을 심장에 새기고 투쟁한 영웅적 김일성-김정일로동계급의 빛나는 력사가 깊이 아로새겨져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는 다른 나라 사람들이 조선사람은 절대로 만들수 없다던 전기기관차도 우리자체의 힘으로 만들었습니다.》 (김일성전집》 제83권 87페지)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현명한 령도밑에 온 나라가 기적과 혁신의 나래를 펼치고 세월을 주름잡으며 빠른 속도로 달려나가던 천리마대고조의 시기 5개년인민경제계획(1957-1961)을 2년반동안에 완수한 우리 인민은 새로운 전망계획수행을 위한 진군길에 들어서게 되였다. 새로운 전망계획수행을 위한 우리 인민의 진군길에서 절박하게 제기된 중요한 요구의 하나가 인민경제 모든 부문에 더 많은 물동량을 실어나르는것이였다.

그런데 급속히 증대되는 물동량을 제때에 실어나르는 일을 그전과 같은 철도의 상태를 가지고서는 도저히 감당해낼수 없었다.

우리 나라와 같이 철길의 구배가 심한 형편에서 렬차의 견인력과 통과능력을 결정적으로 높이자면 철도의 전기화를 실현하는것이 절박한 문제로 나서게 되였다.

그리하여 우리 나라에 와있는 어느 한 나라 대사에게 전기기관차를 만들려고 하는데 설계도면을 좀 사자고 하자 조선에서는 기계공업토대가 약하기때문에 전기기관차를 생산할수 없다고 하면서 자기 나라에서 사다쓰라고 하였다. 우리가 자체로 만들어쓰겠다고 하자 그는 조선에서 전기기관차를 만들면 자기 손바닥에 장을 지지겠다고 하였다. 이러한 보고를 받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자체의 힘으로 전기기관차를 무조건 만들도록 과업을 주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서평양철도공장(당시)에 나오시여 전기기관차를 만들데 대한 과업을 주신것은 주체48(1959)년 8월 29일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전기기관차는 구배가 심하고 굴곡이 많은 우리 나라 철도실정을 잘 타산하여 견인력이 세고 든든하면서도 문화성있게 만들어야 한다고 하시면서 한번 대담하게 전기기관차를 만들어보라고 크나큰 믿음과 신임을 안겨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믿음과 신임에 보답하기 위하여 비상한 결의를 다진 서평양철도공장 로동계급은 전기기관차생산에 착수하였다.

현대기계공업과 전기공업발전의 정수라고 할수 있는 전기기관차에는 고도의 정밀성과 견고성을 요하는 1만 4천여종의 부속품이 무려 18만개나 들어가야만 하였다.

그러나 공장에는 그 복잡한 기계의 설계도면은 물론 전기기관차생산에 필요한 공구, 지구들도 변변히 없었다.

당시 조건에서 조선의 힘으로 전기기관차를 만든다는것은 사실 아무것도 없는데서 새로운것을 만들어내는것과 같은 어려운 일이였다.

일부 사람들은 다른것은 다 만들어도 고속도차단기와 견인전동기만은 외국에서 수입해야지 자체로 만들지 못한다고 하였다. 고속도차단기는 전기기관차에 대한 전력공급과 중단을 보장하는 설비로서 운전의 믿음성과 사고방지를 위하여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것이였다.

고도의 정밀도와 정결도를 요하는 부속품이 3천여개가 들어가는 고속도차단기는 전기기관차의 심장이라고 할수 있다.

세계에는 수많은 나라가 있지만 실지 전기기관차를 자기손으로 완전히 만드는 나라는 당시 불과 열손가락을 꼽을수 있는 정도밖에 안되였는데 그중에서도 고속도차단기를 자체로 만들어쓰는 나라는 극히 적다는 사실만 놓고보아도 그것이 얼마나 정밀하고 복잡한것이라는것을 잘 알수 있었다.

그러나 우리 로동계급은 작은 부속품부터 하나하나씩 만들기 시작하였다. 정밀도와 정결도를 요하는 부분품, 부속품들은 연마반, 광마반이 없어 로동자들은 새끼오리와 스프링을 찢어 쓸고 닦고 하면서 하나하나 완성하여나갔으며 드디여 조립단계에 들어섰다.

우리 로동계급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가르쳐주신대로 보기좋고 견고하며 값싼 전기기관차를 자체로 끝끝내 만들어냈다.

처음 시운전할 때 3천여개의 부속품이 들어있는 고속도차단기가 첫 시험에서 그만 불타버리고말았다.

수십차례의 실패끝에도 성공을 보지 못하게 되였을 때 보수주의, 기술신비주의자들은 기다리고있었다는듯이 머리를 쳐들고 날치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콩을 먹자면 이발이 있어야 한다.》고까지 하면서 고속도차단기만은 수입해야 한다고 제기해나섰다.

그러나 전기기관차의 뇌수라고 말할수 있는 고속도차단기를 수입하고서는 우리 로동계급이 자기 손으로 전기기관차를 만들었다고 말할수 없었다. 실패에 실패를 거듭하고 35번이나 실패하였을 때에도 우리 로동계급은 주저하지 않고 자력갱생, 간고분투의 혁명정신으로 36번째의 제작에 들어갔으며 끝끝내 36번째만에 성공의 결말을 보게 되였다. 전기기관차의 심장인 고속도차단기는 바로 우리 로동계급의 이러한 충성과 자력갱생, 간고분투의 산물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전기기관차가 완성되였다는 보고를 받으시고 조선로동당 제4차대회를 앞둔 주체50(1961)년 8월 30일 또다시 공장을 찾아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어마어마하게 크면서도 흠잡을데없이 훌륭하게 만들어진 전기기관차를 매우 만족하게 바라보시면서 이 전기기관차의 견인력은 얼마나 되는가를 알아보시고 증기기관차보다 2배이상 끌수 있는데 대하여 매우 만족해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잘 만들었다고, 대단히 훌륭하다고 하시면서 이름을 지어주었으면 하는 공장일군들과 로동자들의 제의를 들으시고 일군들이 《혁신호》, 《전진호》, 《붉은별》로 하자고 하였지만 《붉은기》호라고 하는것이 좋겠다고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항일무장투쟁시기 기수가 붉은기를 들고 대오의 맨 앞장에서 나아갔다고 하시면서 전기기관차는 사회주의건설의 맨 앞장에서 나아가는 붉은기나 같다고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전기기관차 앞머리에 휘날리는 붉은기를 달라고 하시고 서평양철도공장은 이제부터 전기기관차를 생산하게 되는것만큼 공장이름을 평양전기기관차공장이라고 하여야 한다고 교시하시였다. 그후 주체58(1969)년에 김종태전기기관차공장으로, 그후에는 또 김종태전기기관차련합기업소로 개칭되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교시를 받들고 김종태전기기관차련합기업소 로동계급은 조선로동당 제4차대회를 맞으며 단 며칠동안에 《붉은기》호전기기관차 제2호를 만들어 당대회선물로 올렸다.

그후 김종태전기기관차련합기업소에서는 그 경험과 기술에 기초하여 전기기관차가 련이어 생산되여 나오게 되였으며 《쌍둥이전기기관차》와 디젤기관차도 만들어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 나라에서 철도는 전기화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하시면서 해마다 전기기관차생산량을 체계적으로 높이도록 그 목표까지 몸소 세워주시였다.

우리 나라에서 철도가 전기화됨으로써 철도수송능력은 거의 2배로 높아졌고 연료소비는 5분의 1로 줄어들었으며 많은 로력을 절약하게 되였고 철도의 문화성이 현저히 높아졌다.

이처럼 조선의 로동계급은 설계도면은 물론 부속품생산에 필요한 공구, 지구도 변변히 없는 조건에서 자력갱생, 간고분투의 혁명정신으로 우리 힘, 우리 기술, 우리의 설계로 끝끝내 1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조선에서는 만들수 없다던 전기기관차를 만들어냈던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