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최초의 금속활자를 발명한것은 우리 민족의 자랑으로 되고있습니다.》 (
슬기롭고 문명한 조선민족은 유구한 력사와 찬란한 문화를 빛내이며 이 땅에서 세상에 자랑높은 귀중한 문화유산들을 수많이 창조하였다. 지난날 우리 선조들이 이룩한 창조물들가운데는 고려시기에 발명한 세계최초의 금속활자도 있다.
고려시기에 창조된 세계최초의 금속활자는 우리 선조들의 지혜와 재능이 깃들어있고 첫 통일국가 고려의 력사와 문화가 그대로 함축되여있는 조선민족의 고귀한 창조물이며 세계적인 자랑이다.
주체104(2015)년 11월과 주체105(2016)년 4월 우리 력사학자들은 개성의 옛 왕궁터-만월대에서 고려시기 금속활자를 여러개나 새로 찾아내여 전체 조선민족에게 커다란 기쁨을 안겨주었으며 세계문화의 보물고를 풍부히 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고려금속활자는 주체104(2015)년 11월이전까지 2개가 전해져오고있었다.
그중 하나는 주체47(1958)년 고려의 왕궁터인 개성 만월대의 신봉문터에서 서쪽으로 약 300m 떨어진 지점에서 발견되였다. 현재 조선중앙력사박물관에 전시되여있다.
이 금속활자에는 《이마 전》이라는 글자가 새겨져있다. 금속활자의 높이는 8㎜이고 글자를 새긴 면의 크기는 가로 12㎜, 세로 10㎜이다. 활자의 주성분은 동과 석, 연이다. 글자가 새겨지지 않은 뒤면에는 반구형의 둥근 홈이 패워져있는데 금속활자를 판에 고정시키기 위한것이다.
다른 하나의 금속활자도 역시 개성의 어느 한 귀족무덤에서 알려졌다고 전해지는것인데 여기에 새겨진 글자는 《산이름 복》자이다. 이 금속활자의 크기는 가로 11㎜, 세로 10㎜라고 한다. 《산이름 복》자의 글씨체는 고려 25대왕 경효왕(충렬왕)이후에 류행되기 시작하였다고 하는 송설체계통으로서 14세기이후의것으로 인정되고있다.
주체104(2015)년 11월에 고려왕궁터 만월대의 중심건축터 서남쪽에 위치한 림천각터으로부터 서쪽으로 250~300m정도 떨어진 지점에서 유적발굴과정에 금속활자를 새로 찾아냈다. 11월에 발견한 금속활자에는 어여쁘다, 사랑스럽다는 뜻을 가진 《전》이라는 글자가 새겨져있다. 이 금속활자는 높이가 6㎜이고 글자를 새긴 면은 가로 13.5㎜, 세로 14㎜이다. 여기에도 뒤면 중심에 반구형의 둥근 홈이 파져있다. 활자의 주성분은 동, 석, 연인데
주체 105(2016)년 4월 중순에 개성의 만월대 서부건축터에서 또다시 4개의 금속활자가 새로 발견되여 큰 파문을 일으켰다.
4월에 찾아낸 금속활자들은 《이름 명 (名)》, 《지게미 조(糟)》, 《눈밝을 명》,《물흐르는모양 칙》의 글자들이 새겨져있는것들이다.
《눈밝을 명》자가 새겨진 금속활자의 크기가 조금 작고 나머지 3개의 글자들은 크기가 이전에 발견된 금속활자들과 거의 같다. 글씨체는 《지게미 조(糟)》, 《물흐르는모양 칙()》, 《이름 명 (名)》 금속활자들이 앞서 발견되였던 《어여쁠 전》자의 글씨체와 거의 같으며 상당히 정교하고 원활하게 그리고 세련되여있다. 《눈밝을 명()》자의 글씨체도 비교적 원만하지만 《지게미 조(糟)》자의 글씨처럼 정교하지는 못하다.
우리 선조들이 고려시기에 세계에서 처음으로 금속활자를 발명하고 대를 이어가며 발전시킨것은 우리 민족의 커다란 자랑으로 되고있다.
주체61(1972)년 프랑스의 빠리에서는 유네스코(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의 주최밑에 《국제도서의 해》행사의 일환으로 《책의 력사》종합전람회가 열리였다. 이 전람회에서 우리 나라 책인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이하 간략하여 《직지심경》이라고 함)의 하권이 전시되여 세계최초의 금속활자인쇄본으로 인정되였다. 이 전람회를 통하여 바로 우리 나라가 세계최초의 금속활자발명국이라는것이 실물로 확인되였으며 조선민족은 세계에서 처음으로 금속활자를 발명한 뛰여난 재능을 가진 민족이라는것을 온 세상에 과시할수 있게 되였다.
우리 선조들은 고려시기인 11세기말~12세기초에 벌써 세계에서 제일 처음으로 금속활자를 발명하였다.
옛 문헌기록들에 고려시기의 책인 《상정고금례》(50권)를 1234년부터 1241년사이에 금속활자로 28부 인쇄하였다는 사실이 명백히 기록되여있고 고려봉건정부가 1047~1083년사이에 주자인쇄(금속활자에 의한 인쇄)를 전문으로 맡아보는 서적점을 설치하였다는 기록, 금속화페의 주조와 통용을 전문으로 맡은 주전도감이 설치되고 1102년에 《해동통보》라는 글자가 새겨진 금속화페가 주조되였다는 《고려사》의 기록에 비추어 11세기말~12세기초에 우리 선조들이 금속활자를 발명하여 사용하였다고 말할수 있다.
고려에서 금속활자가 발명되고 그것을 인쇄에 널리 리용한 시기를 늦잡아서 《고금상정례》를 출판한 시기 즉 1230년대초로 본다고 해도 그것은 우리 선조들이 다른 나라, 다른 민족들보다 훨씬 이른 시기에 금속활자를 창안제작한것으로 된다.
도이췰란드의 요한 구텐베르그가 금속활자를 발명하여 그것으로 처음 책을 인쇄한것이 대체로 1450년대 즉 15세기 중엽이였고 네데를란드의 고스타(본명은 라우렌스 얀스죤)가 금속활자인쇄를 시작하였다고 하는것이 1433년이였다. 이러한 사실들은 우리 나라가 금속활자를 비교적 일찌기 사용하였다고 하는 서유럽의 여러 나라들보다 적어도 200년이상 앞서서 금속활자를 창안제작하여 인쇄에 리용하였다는것을 뚜렷이 보여준다.
이처럼 우리 민족은 세계에서 제일 처음으로 금속활자를 발명하여 출판업을 크게 발전시킨 슬기롭고 지혜로운 문명한 민족이며 고려시기의 금속활자들은 세계에 당당히 자랑할수 있는 바로 조선민족의 귀중한 창조물이다.
고려시기 우리 선조들이 창조한 세계최초의 금속활자들은 우리 인민의 슬기와 재능이 깃들어있고 첫 통일국가 고려의 력사와 문화가 그대로 함축되여있는 조선민족의 고귀한 창조물이며 세계적인 자랑이다.